김홍일 방송통신위원장이 어제 자진 사퇴했다. 국회에서 민주당의 탄핵소추안이 통과될 경우 헌법재판소 결정까지 장기간 직무가 중단되는 것을 사전에 차단하기 위해서다. 윤석열 대통령은 면직안을 즉각 재가했다. 작년 말 민주당의 탄핵소추안 표결 직전 자진 사퇴한 이동관 전 방통위원장과 판박이다. 꼼수에 꼼수로 맞서는 도돌이표 힘겨루기다.
김 위원장 사퇴는 방통위가 MBC 대주주인 방송문화진흥회(방문진) 이사진 교체 작업에 들어간 것과 맞물려 있다. 방통위는 지난달 28일 방문진 등 공영방송 이사진 선임 계획을 의결했다. 역대 정권이 그러했듯, 8월 12일 임기가 끝나는 이사진을 친여(親與) 성향으로 재편해 MBC 사장을 정권 입맛에 맞는 인물로 교체하려는 수순이다.
민주당이 김 위원장 탄핵소추안을 발의한 것도 방문진 이사진 교체에 제동을 걸기 위해서다. 5명 위원으로 구성되는 방통위는 현재 대통령이 지명한 김 위원장과 이상인 부위원장 2명만으로 비정상 운영 중이다. 김 위원장 직무마저 정지되면 의사 정족수(2인)를 채울 수 없어 식물기구로 전락한다. 탄핵소추 효과를 무력화시키려 사퇴로 맞불을 놓은 것이다. 여당은 “습관성 탄핵”이라고, 야당은 “도주 사퇴”라고 서로를 비판한다.
김 위원장 후임으로 이진숙 전 대전MBC 사장이 유력하게 검토되고 있다고 한다. 이명박 정부 시절 김재철 MBC 사장 핵심 측근으로 방송 장악 등에 적극 관여한 인물로 알려져 있다. 야당이 청문회에서 거부권을 행사한다 해도, 김 위원장 때처럼 대통령이 임명을 강행하면 그뿐이다.
이대로면 '탄핵-사퇴-임명'의 무한반복이 불가피하다. 악순환을 끝내려면 독립 합의제 기구의 취지를 살려 제도를 손보는 방법이 유일하다. 야당은 방송4법(공영방송 이사진 대폭 확대 및 방통위 의결정족수 4명 확대)이 대안이라고 하지만 윤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할 것은 자명하다. 결국 여야가 접점을 찾지 않으면 답이 없다. 공영방송과 방통위의 중립성, 독립성을 확보할 수 있는 방안을 치열하게 다투기 바란다. 공영방송은 어느 정부도 사유화해선 안 된다. 정권이 바뀌면 입장 바뀌어 내로남불 공방을 벌이는 이런 황당한 막장 드라마를 언제까지 봐야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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