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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 지켜야만' 분향소 설치할 수 있을까… 참사마다 반복되는 갈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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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향소는 나라를 지키다가 돌아가신 분들을 위해 설치하는 것 아닌가요?"
지난달 27일 경기 안산 단원구 원곡동 '다문화 어울림 공원'에 화성 아리셀 공장 희생자 추모 분향소를 설치하는 과정에서 해당 지역 파출소장의 이 같은 발언이 도마에 올랐다. 안산시에 설치 허가를 받았는지 확인하는 과정에서 나온 말이었다. 논란이 커지자 경기남부경찰청은 "큰 상처를 입었을 이주민 단체 회원들과 유족에게 사과드리며 깊이 반성하고 있다"고 사과했으나 유족들은 이미 큰 상처를 받은 뒤였다.
분향소는 나라를 위해 공헌했거나 희생한 사람들을 위해서만 열 수 있는 걸까. 정답은 '아니오'다. 현행법상 분향소의 추모 대상 등을 규정하는 기준은 없다.
1일 화성 공장 화재 이주민 공동 대책위원회(대책위)에 따르면, 지난달 27일 원곡동 다문화 공원에 차려진 분향소는 같은 달 30일까지 운영된 후 자진 철거됐다.
현행법상 공공장소에 분향소를 설치할 때는 지자체 허가를 받아야 한다. 분향소가 설치된 공원은 지자체 공유재산이라 '공유재산 및 물품 관리법(공유재산법)'이 적용되는데 공유재산 사용은 지자체 허가 대상이다. 허가 없이 공유재산을 점유하면 관련법에 따라 변상금을 내야 한다. 안산시청 관계자는 "분향소 설치 당일 사용 허가 신청이 들어와서 현장에 나갔을 때는 이미 설치가 완료된 상태였다"며 "행정 처리를 할 시간적 여유가 없어 우선 주최 측이 약속한 설치 기한 30일까지는 암묵적으로 허용해준 것"이라고 설명했다.
지자체 허가만 받는다면 설치 목적에 따른 제한은 없다. 공유재산법 20조는 '그 목적 또는 용도에 장애가 되지 아니하는 범위 내라면 사용허가를 낼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결과적으로 해당 파출소장의 발언은 '번지수를 잘못 짚은' 지적이었다.
이처럼 사회적 참사 발생 때마다 분향소 설치를 두고 대립이 이어지는 건 참사를 대하는 지자체들의 경직된 인식 때문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희생자 넋을 달래고 추모하기 위한 공간을 마련하려는 유가족을 돕고 대화에 나서기보다 법 집행만 앞세워 갈등을 증폭시킨다는 것이다. 공익인권법재단 '공감'의 황필규 변호사는 "화성 화재 사상자 상당수가 안산 쪽에 거주하고 있었는데 안산시에서 시민들의 분향소 설치 요구 움직임을 파악했으면 먼저 나설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며 "소극적으로 나선 지자체 대처에도 아쉬움이 남는다"고 말했다.
앞서 10·29 이태원 참사 유족들도 참사 100일째가 되던 지난해 2월 4일 서울광장에 합동분향소를 세웠다가 이를 불법 건축물로 규정한 서울시와 첨예하게 맞섰다. 이태원 분향소는 서울광장 설치 499일 만인 지난달 16일 광장 부림빌딩으로 옮기며 유족과 시가 절충점을 찾긴 했다. 그러나 이곳도 한때 수백 명의 경찰이 투입되고 서울시가 두 차례나 계고장을 보내는 등 양측이 일촉즉발의 상황으로 치달았다.
필요 이상의 경찰력 동원도 사태를 키울 수 있다. 다문화 공원 분향소 마련을 주도한 대책위의 박천응 위원장은 "시청 측에 공문을 보냈다고 경찰에 설명했는데도 사전 승인이 허가가 나지 않았다며 시비를 걸었다"며 "오히려 경찰 측이 절차를 안 지키고 월권 행위를 한 것 아니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안산 단원경찰서 관계자는 "질서 유지 차원에서 현장 확인차 출동한 것"이라고 해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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