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제 밤 서울 중구 시청역 인근에서 역주행 승용차에 치여 9명이 사망하는 참사가 발생했다. 운전자는 급발진 사고를 주장하는 가운데, 고령운전에 따른 사고 가능성도 나온다. 원인을 확정할 수 없는 참사라는 점에서 일상의 공포를 더하고 있다. 이참에 급발진 여부를 가릴 수 있는 장치 부착을 의무화하고, 확실한 고령운전 대책도 내놓아야 할 것이다.
사고를 낸 제네시스 차량 운전자는 “브레이크를 계속 밟았으나 차량이 말을 듣지 않았다”며 “100% 급발진”이라고 주장한 것으로 전해진다. 그러나 목격자는 “사고가 난 뒤에 차량이 정지하는 과정이 급발진으로 볼 수 없다”고 했으며, 운전자의 나이가 68세라는 점 때문에 운전 감각이 떨어져 발생하는 ‘고령운전’ 사고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경찰도 “급발진의 근거는 현재까지는 피의자 측 진술뿐”이라며 “차량을 국립과학수사연구원(국과수)에 감식 의뢰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문제는 국과수 감식으로도 급발진 여부를 명백히 밝히기 어렵다는 점이다. 재작년 발생한 강릉 급발진 의심 사고도 유족들이 소송과정에서 국과수의 감정 결과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다. 현행법상 피해자가 급발진을 입증해야 하는 것도 문제로 꼽힌다. 근본적으로 운전자의 발밑 가속·정지 페달 조작을 촬영하는 블랙박스 도입을 의무화할 필요가 있다.
사건 피의자가 베테랑 버스기사여서 ‘고령운전’을 원인으로 단정하긴 어렵지만, 늘어나는 고령 운전 사고 추세는 대책이 반드시 필요하다. 지난해 65세 이상 운전자가 가해자인 교통사고는 3만9,614건으로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다. 전체 교통사고에서 차지하는 비율도 20.0%로 1년 전(17.6%)보다 늘었다. 연령에 따라 면허적성검사 기간을 단축하곤 있지만 역부족이다.
일본 정부는 ‘고령운전’ 문제를 기술로 풀어가고 있다. 장애물 1~1.5m 앞에서 가속 페달을 강하게 밟아도 시속 8㎞ 미만 속도로 부딪히도록 억제하는 오조작 방지 장치를 자동 변속기 차량에 의무화하기로 했다고 한다. 우리 정부가 배워야 할 부분이다. 사고의 원인을 확정할 수 없다면, 두 가지 문제 모두 대책을 내놓아야 한다. 그게 국민들의 일상을 지키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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