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내는 기사
화성 화재만 그랬을까… 온라인만 봐도 '제조업 불법 파견' 일상화
이미 가입된 회원입니다.
만 14세 이상만 회원으로 가입하실 수 있습니다.
화재 참사 발생 기업인 경기 화성시 일차전지 제조업체 아리셀이 불법 파견 근로자를 활용했다는 의혹이 끊이지 않는다. 아리셀은 "불법 파견은 없었다"고 주장하지만, 인력 공급업체 측에선 "우리는 작업을 지시하지도 않았고, 회사(아리셀) 요청으로 인력을 보냈다"며 책임을 서로 피하고 있다. 현행법에 따르면 제조업체가 직접생산 공정에 파견 인력을 활용하는 것은 금지돼 있다. 그러나 실제 현장에서는 내·외국인을 가리지 않고 제조업의 불법 파견이 비일비재한 것으로 나타났다.
30일 한국일보가 주요 채용 공고 사이트와 인력 파견(아웃소싱) 관련 온라인카페를 살펴봤더니, 제조업 등의 파견 관련 채용 공고를 어렵지 않게 확인할 수 있었다. 한 카페에는 조립·포장·검사 등 인력을 공급할 수 있다며 홍보하는 글이 올라와 있었다. 또 다른 글에는 "각종 조립·도장·도금·검사·포장 등에 인력을 파견 중"이라며 적재적소에 인원을 배치해주겠다는 홍보 문구가 있었다. 유명 채용 사이트에도 파견 업체들이 케이블, 자동차 부품, 반도체 관련 생산이나 조립 인력을 구하고 있었다.
파견법에 따르면, 근로자 파견이 가능한 업무는 컴퓨터·창작·방송·통신·음식 조리·운전 등 32종으로 제한되어 있다. 제조업의 '직접생산 공정'은 원칙적으로 파견이 금지되어 있다. 적정한 임금과 공정한 대우를 보장하기 위해, 파견을 가능한 한 줄이자는 취지다. 원청업체가 파견 근로자에게 업무 지시 등을 하는 것 역시 불법인데, 이를 위반하면 3년 이하 징역이나 3,000만 원 이하 벌금을 부과받을 수 있다.
그러나 여기엔 빠져나갈 구멍이 있다. 출산·질병·부상 등 결원이 생긴 경우 예외적으로 최대 6개월간 파견직을 쓸 수 있다. 이 예외조항을 계속 연장해서 파견 인력을 쓰는 일이 현장에선 반복된다고 한다. 한 인력업체 관계자는 "겉으로는 정상적인 공고처럼 보여도 실제로는 위장 불법파견인 경우가 허다하다"며 "제조업체 인력 파견은 모두가 쉬쉬하던 일"이라고 귀띔했다.
특히 비용 부담이 큰 중소 제조업체들은 파견직을 활용하는 일이 부지기수다. 단순노동력도 인건비가 만만찮게 들고, 4대 보험을 부담스러워하기 때문이다. 김모(34)씨는 "케이블 조립 업체에서 일했는데 4대 보험 가입은 의무 아니냐고 따졌지만, 정규직으로 전환되면 해주겠다는 말뿐이었다"고 말했다.
이번 아리셀 공장에서 불이 난 곳은 리튬 배터리를 검수·포장하는 곳이었는데, 헌법재판소 결정을 보면 이런 경우도 파견이 금지된 분야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다. 2017년 헌재는 휴대폰 케이스 제조에 파견직을 써 처벌을 받았다가 헌법소원을 낸 사건에서 '제품을 검사 및 포장하는 업무'도 직접생산 공정(파견 금지)에 해당한다고 봤다.
다만 경영계는 현행법이 시대 흐름에 뒤떨어진다며 규제 완화를 요구하고 있다. 한국경영자총협회는 지난달 20일 '파견제도의 문제점과 개선방향' 보고서를 통해 "엄격한 파견규제는 노동시장 경직성을 심화시켜 경쟁력 제고와 일자리 확보를 어렵게 한다"고 주장했다. 윤석열 정부도 파견 대상 확대를 검토하고 있다. 고용노동부는 지난해 △동일가치노동 동일임금 원칙 구현 △파견·도급 기준 법제화 △파견 대상 확대 등 계획을 밝혔다.
그러나 이번 아리셀 사고처럼 불법파견 의혹이 끊이지 않는 상황에서, 단속이나 개선 없이 규제 완화만으로 불법파견을 양성화하려는 시도는 부적절하다는 반론이 여전하다. 파견이 합법화하면 제조업 공장에서 같은 일을 하는 정규직과 파견직 사이에 심각한 임금 격차가 그대로 용인되는 결과를 가져온다.
법무법인 원곡 최정규 변호사는 "파견법이 그동안 현장에서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다는 것이 이번 사건에서 드러난 것"이라며 "불법과 편법이 난무하는 현 상황을 방치한 것은 정부의 책임이 크다"고 지적했다. 최 변호사는 "이런 상황에서 섣불리 입법론과 글로벌 스탠더드를 운운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라고 덧붙였다.
신고 사유를 선택해주세요.
작성하신 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
로그인 한 후 이용 가능합니다.
로그인 하시겠습니까?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
구독을 취소하시겠습니까?
해당 컨텐츠를 구독/취소 하실수 없습니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