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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튬엔 스프링클러 못 쓰는데… 한줄기 희망 'D급 소화기' 미인증·성능미달 투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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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쇄 폭발 사고로 23명이 숨진 경기 화성시 아리셀 공장(리튬건전지 생산)에서는 스프링클러(천장이나 벽에서 물을 뿜는 자체 소화장치) 같은 자체 소방시설이 없었다. 리튬은 물을 만나면 폭발적 반응을 일으키기 때문에, 스프링클러를 설치할 수 없었던 것.
이 때문에 직원들은 화재 초반에 일반 분말소화기로 진화를 시도해야 했고, 이게 여의치 않아 공장 내부는 불과 42초 만에 검은 연기로 뒤덮였다. 이번과 같은 금속화재에 스프링클러는 오히려 추가 위험을 확산시킬 수 있는 만큼, 이에 대응할 '금속화재 전용 소화기'에 관한 구체적 기준 마련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높아지고 있다.
26일 한국일보 취재를 종합하면, 소방법상 화재유형은 △A급(일반 생활물질) △B급(유류) △C급(전기) △K급(주방) 등으로 구분된다. 유형별로 사용해야 하는 소화기도 규정돼 있는데, ABC 소화기(분말, 이산화탄소, 할로겐)와 K급 소화기 비치가 의무화돼 있다.
이번 화성 화재는 여기에는 포함되지 않는 D급(금속)으로 분류된다. D급은 리튬, 마그네슘, 칼륨 등 금속물질에 의해 발생하는 화재를 말하는데, 이들 물질은 물과 접촉하면 가연성 가스를 발생시켜 연쇄 폭발을 일으킬 수 있다. 아직 법적 화재유형으로 분류되지 않아, D급 소화기 비치에 대한 의무 규정도 없다. 화학공장에 특수소화기가 아닌 일반소화기를 두더라도 아무런 법적 문제가 없는 것이다.
관련 자료 등을 살펴보면 아리셀 공장에 D급 소화기는 비치돼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아리셀이 화성시청에 제출한 '화학사고 위험 및 응급대응 정보요약서'를 보면, 방제장비 보유 현황에 분말소화기 99개, D급 소화기 5개, 옥내소화전 5개 등이 기재됐다. 그러나 화재 당시 직원들은 일반 ABC 분말소화기를 사용했고 초기 진화에 실패했다. 이 때문에 직원들이 D급 소화기를 사용해야 한다는 제대로 된 교육을 받지 않았을 가능성도 크다.
법적 의무가 없다보니 금속화재에 대응할 D급 소화기 보급은 지지부진하다. 현재 국내에 유통되는 D급 소화기는 대체로 수입산인 탓에 가격이 비싸 현장에서 도입을 꺼려하는 데다, 미인증 제품이 많아 안전성 역시 담보하기 어렵다. 소방청은 지난해 3월 'D급 소화기 형식 기준안'을 만들어 행정예고했지만, 물질에 따른 적합한 소화약제가 달라 통일 기준을 정하는 데 고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소방청 관계자는 "현장 의견 수렴을 통해 D급 소화기에 대한 구체적 안전 기준을 마련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물론 D급 소화기만 갖춘다고 해서 이런 화재에 완벽하게 대응하기 어렵다는 지적도 있다. 이영주 경일대 소방방재학과 교수는 "D급 소화기는 약제나 냉각 효과가 일반소화기보다 강력한 것은 맞다"면서도 "전반적인 소방시설 상태와 리튬 보관 문제도 있는 만큼, D급 소화기 존재 유무와 초동대응을 할 수 있었느냐의 여부는 다른 문제"라고 짚었다. 또 "한국은 보편화된 화재를 중심으로 관리해 왔는데, 금속화재가 생활 속에서 흔히 접하는 유형은 아니었다는 점이 화재를 키운 요인으로 작용했을 수 있다"고 분석했다.
소화기 설치와 별개로, 아리셀이 화재 안전 감시망에서 벗어나 있었다는 점도 곳곳에서 드러나고 있다. 현행 화재예방법에서 연면적 3만 ㎡ 이상 사업장만 화재안전 중점관리대상에 포함한다는 규정 탓에 점검 사각지대에 놓여 있었고, 최근 3년 동안 소방시설 자체 점검에서 별다른 이상이 없다고 보고하기도 했다.
관계당국은 뒤늦게 사태 수습에 나섰다. 소방청은 다음 달 9일까지 전국 전지 관련 213개 시설을 대상으로 화재안전조사를 실시하기로 했다. 공하성 우석대 소방방재학과 교수는 "일차전지(재충전이 안 되는 전지) 등 그동안 주목받지 못했던 화재 유형에 대한 관심이 높아진 만큼, 화재안전조사와 화학물질에 대한 구체적인 안전 기준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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