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일해 10년 만에 다시 유행…지난해보다 120배 증가

[건강이 최고] 1명이 17명까지 감염 유발…영·유아에게 치명적

한국일보 자료사진

백일해(百日咳)가 최근 크게 유행하면서 어린이 건강을 위협하고 있다. 백일해는 ‘100일 동안 기침이 지속된다’는 뜻을 지닌 급성 호흡기 감염병이다. 영·유아처럼 면역력이 약한 사람은 1명이 12~17명을 감염시킬 만큼 전파력이 매우 강하다.

백신 예방접종이 보편화되면서 이전보다 백일해 발생이 줄었다. 하지만 올해 전 세계적으로 환자가 급증하고 있다. 특히 국내는 최근 10년 새 최대치를 기록했다.

질병관리청 ‘감염병 통계’에 따르면, 올해 23주 기준(6월 2일~6월 8일) 국내 누적 백일해 감염자는 1,635명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14명)보다 120배가량 증가했다.

연령대별로는 10~19세 청소년이 전체 환자의 78%로 가장 많다. 건강한 성인에게는 치명적이지 않지만, 면역력이 약한 영·유아들이 감염되면 생명이 위태로울 수 있기에 백일해 증세가 보이면 이른 시일 내 검진을 받아야 한다.

◇영·유아 10대 사망 원인··· 17명까지 감염 유발

백일해는 보르데텔라 균(Bordetella pertussis)에 감염돼 발생하는 제2급 법정 감염병이다. 주요 감염 경로는 호흡기 분비물이나 비말(飛沫)로 전파돼 집단 생활을 하는 공간에서 발생할 가능성이 높고, 유증상 감염자의 침, 콧물 등이 묻은 물건을 통해서도 간접적인 전파가 가능하다.

특히 영·유아와 같이 면역력이 떨어진 집단에서는 1명이 12명에서 17명을 감염시킬 만큼 전파력이 매우 강하다. 실제로 백일해는 영·유아 10대 사망 원인 중 하나로 꼽힐 정도의 치명적인 감염병으로, 자칫하면 생명을 위협할 수 있다.

잠복기는 7~10일(최소한 4일에서 최장 21일까지)이며, 대표적인 증상은 기침·발열·인후통·콧물 등이다.

증상이 심각한 경우에는 발작성 기침으로 이어지기기도 한다. 대체로 감기 증세와 유사하므로 단순히 감기인 줄 알고 방치하기 쉬운데 1주일 넘게 기침이 지속되고 기침 끝에 ‘흡’ 하는 소리가 들린다면 백일해를 의심해 보는 것이 좋다.

증상은 다양하지만 크게 △카타르기(catarrhal stage) △발작기(paroxysmal stage) △회복기(convalescent stage) 등 3단계로 진행된다.

잠복기 이후 처음 증상이 나타나는 감염 초기 카타르기 단계에는 콧물·눈물·경한 기침 등의 상기도 감염 증상이 1~2주간 지속되며, 백일해균 증식이 가장 왕성해 전염력이 매우 강한 시기다.

중반인 발작기에는 발작성 기침·기침 후 구토·무호흡 증상이 일어난다. 하지만 최근 확진자 증세를 살펴보면, 전형적인 백일해 임상 증상 없이 가벼운 기침으로 발견될 때가 많다.

회복기에는 발작성 기침 횟수나 정도가 호전되며 천천히 몸이 나아진다. 보통 2~3주 후 회복되지만 사람에 따라서는 상기도 감염에 의해 발작적인 기침이 나타나기도 한다.

◇무증상 성인이 감염 원인될 수 있어

백일해 증세가 나타나면 치료하면 되지만 대부분의 성인의 경우 백일해에 감염되어도 무증상일 때가 많아 문제다. 일상생활 속에서 나도 모르게 신생아나 영·유아 감염 원인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어린아이와 접촉할 일이 많은 성인이거나 영·유아 자녀를 둔 가족이라면 진단 및 예방접종이 중요하다.

백일해는 특징적인 기침 양상으로 임상 진단할 수 있으며, 환자와 접촉한 병력과 말초혈액 검사, 흉부 방사선 검사, 비인두 분비물에 대한 배양 및 PCR 검사 등으로 검진할 수 있다. 증상이 미비하거나 무증상인 성인인 경우에는 PCR 검사(실시간 중합효소연쇄반응 검사, Real-time PCR)로 간편하게 백일해 감염 여부를 알아낼 수 있다.

백일해 PCR 검사는 환자 객담이나 구인두 혹은 비인두 가검물을 채취한 다음 DNA 또는 RNA를 정제한 후 코로나19 바이러스와 같은 특이 유전자를 증폭하는 방식으로 감염 여부를 판별한다.

해당 검사는 높은 민감도와 특이도로, 백일해를 유발하는 보르데텔라 균의 유전자를 정확하게 검출할 수 있다. 초기 감염 단계에서도 균을 확인할 수 있어 조기 진단이 가능하며, 전통적인 배양법보다 상대적으로 빠른 시간 내 환자의 확진 판단 후 치료가 가능하다.

이 밖에 백일해뿐만 아니라 마이코플라스마 폐렴 등 다양한 호흡기 감염병이 여전히 기승을 부리고 있는 상황으로 주의해야 한다. 호흡기 감염병은 감기와 비슷한 양상을 보이기에 명확한 구분이 어려울 수 있으므로 폐렴 원인 균 또는 호흡기 바이러스 다중 진단 검사를 받는 게 좋다.

송성욱 GC녹십자의료재단 진단검사의학과 전문의는 “최근 10년 만에 백일해 감염자가 급증하는데, 특히 무증상 성인 감염자가 영·유아에게 백일해를 전파할 수 있다”며 “감염자와 접촉했거나 감염이 의심되는 성인이라면 백일해 검사를 권한다”고 했다.

권대익 의학전문기자 dkwon@hankook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