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러 영화 '쏘우'의 고문실은 벽이 초록색이어서 더 역겹다...영화가 색을 쓰는 법

입력
2024.06.15 10:00
1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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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세상]
찰스 브라메스코 '컬러의 세계'

왕가위 감독의 영화 '중경삼림'의 포스터. 한국일보 자료사진

왕가위 감독의 영화 '중경삼림'의 포스터. 한국일보 자료사진

왕가위 감독의 영화 '중경삼림'(1994)은 색이다. 두 남녀의 배경으로 깔린 몽환적인 오렌지 빛깔과 푸른 색채 말이다. 기억을 더듬어 보자. 영화의 배경인 홍콩 롼콰이퐁의 희미한 회색빛은 두 인물이 만나기 시작하면서 밝고 따뜻한 색감으로 바뀐다. 관계가 끝날 때쯤엔 파랑, 보라, 초록이 슬픔처럼 잔잔하게 깔린다. 내용보다 더 강렬하게 잔상을 남긴 영화 속 색채는 인물의 심연을 드러내는 장치에 다름 아니었다.

영화 평론가인 찰스 브라메스코의 책 '컬러의 세계'는 영화에 담긴 색의 의도를 이야기한다. 멜리에스의 '달세계 여행'(1902) 같은 고전부터 마블 히어로 영화 '블랙팬서'(2018)까지, 색이라는 렌즈로 볼 때 더 입체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영화 50편을 컬러 팔레트와 함께 풀어낸다.

평론가의 눈에 비친 영화의 색은 다분히 의도적이다. 슬픈 결말로 맺는 '쉘부르의 우산'(1964)의 분위기가 우울하기보다 애잔함으로 가득한 건 등장인물들의 원색 옷차림 덕분이다. '블루 벨벳'(1986)을 가득 채운 푸른색과 보라색 빛은 주인공이 무의식에서 나타나는 몽환적이고 퇴폐적 불안을 상징한다. 호러 영화 '쏘우 2'(2005)에선 극한의 고문을 당한 인물의 얼굴도, 고문실의 벽도 초록색이다. 상한 음식, 가래, 고름 등을 떠올리게 한다는 점에서 피를 가리키는 빨간색을 쓴 것보다 더 불쾌하다.

영화 속 색감을 되짚다 보면 영화를 볼 때는 뭐라 설명할 수 없었던 느낌이 명료하게 이해하게 되는 순간이 많은데, 그때마다 페이지 하단에 표시된 컬러 팔레트를 참고 삼아 다시 영화를 보고 싶은 충동이 든다. 저자가 서문에 남긴 아리송한 말은 결국 느낌표로 남는다. "한번 보는 눈이 바뀌면, 다시는 세상을 이전과 같은 방식으로 바라보진 못할 것이다!"

컬러의 세계·찰스 브라메스코 지음·최윤영 옮김·오브제 발행·216쪽·1만9,800원

컬러의 세계·찰스 브라메스코 지음·최윤영 옮김·오브제 발행·216쪽·1만9,800원


손효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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