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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장, 막 갖다 붙이지 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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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설과 외계어가 날뛰는 세상. 두런두런 이야기하듯 곱고 바른 우리말을 알리려 합니다. 우리말 이야기에서 따뜻한 위로를 받는 행복한 시간이 되길 바랍니다.
함부로 쓰지 말아야 한다. 막장 인생이라는 말. 탄광 갱도 안에 들어가 본 사람은 안다. 막장이 얼마나 진지한 삶의 터전인지. 내 친구는 광산 도시 강원 태백의 마지막 광부다. 그는 늘 말한다. 막장에서 일하는 거, 힘들고 두렵다고. “막장은 막다른 곳은 아니야. 내 새끼들 공부시키고, 맛있는 거 맘껏 먹일 수 있으니 참 고마운 일터지.”
학창 시절, 친구들과 막장 체험을 한 적이 있다. 안전모를 쓰고, 갱차에 올라 선로를 따라 안으로 한참 들어갔다. 그러고는 다시 승강기를 타고 수백 미터 지하로 내려가 막장 앞에 섰다. 친구 한 명이 훌쩍이기 시작했다. 순간 캄캄하고 답답한 아버지의 일터에서 딸들이 엉엉 울었다.
그날 알았다. 아버지들의 삶의 무게를. 막장에선 쥐가 귀하다는 사실도. 사람보다 먼저 위험을 인지하기 때문에 갱 안에선 쥐를 절대 잡지 않는다. 쥐가 있어야 광부들은 마음이 놓인다. 그런 까닭에 쥐와 도시락을 나눠 먹으며 동료처럼 지낸다.
탄광 마을 사람들은 아무리 일에 지치고 힘들어도 막장 인생이라는 말을 입에 담지 않는다. 한겨울에도 땀이 줄줄 흐르는 열기가, 랜턴을 끄면 한 치 앞도 안 보이는 어둠이, 매캐한 광석의 냄새가 느껴지는 곳 막장. ‘위험’이 갱내 가득 떠도는 막장. 그런 곳에서 매일매일 수십 년간 가족의 행복을 캤으니 너무나도 ‘자랑스러운’ 인생이다.
막장 드라마, 막장 정치, 막장 토론 등 듣기 거북한 말이 나돌고 있다. 큰 잘못이다. 막장의 뜻을 아는 게 먼저겠다. 표준국어대사전은 ‘막장’을 갱도의 막다른 곳으로 설명한다. 갱도는 탄광에서 갱 안에 뚫어 놓은 길로, 막장은 탄광의 맨 끝부분이다. 그 낮은 곳에서 광부들은 무릎을 꿇고 탄맥을 찾아 앞으로 나아간다.
이토록 치열한 일터를 본 적이 있던가. 저질 드라마, 드잡이판 정치와 토론은 막장을 쓸 자격이 없다. 갈 데까지 간 막다른 상태로, 실패 패망 파탄 등을 말하고 싶다면 ‘끝장’이 어울린다. 막장이 무분별하게 사용된 데에는 언론의 책임이 크다. 적확한 단어를 써야 할 의무를 저버리고 마구 갖다 쓴 탓이다.
태백시에서 광부는 더 이상 볼 수 없다. 광부가 사라졌으니 막장은 또 다른 형태로 희망을 캘 것이다. 작가 김훈의 말처럼.
“여기는 내 서재라기보다는 막장이에요. 광부가 탄광 맨 끝까지 들어간 데를 막장이라고 그러잖아요. 광부는 갱도의 가장 깊은 자리인 막장에서 곡괭이를 휘둘러서 석탄을 캐지요. 광부의 장비가 곡괭이나 삽이듯 이 방에는 나의 도구들이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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