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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과 국어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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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설과 외계어가 날뛰는 세상. 두런두런 이야기하듯 곱고 바른 우리말을 알리려 합니다. 우리말 이야기에서 따뜻한 위로를 받는 행복한 시간이 되길 바랍니다.
하! 어처구니없는 말에 어안(혀 안)이 막혀서 눈알만 굴렸다. “대통령 부인이 대통령을 좀 도와서 어쨌든 선거도 잘 치르고 국정도 남들한테 욕 안 얻어먹고 좀 원만하게 잘하기를 바라는 그런 일들을 국정농단이라고 그런다면 그것은 국어사전을 다시 정리를 해야 될 것 같다.” 지난 7일 들은 윤석열 대통령의 말이다. 다음 날 열린 ‘한국어문상’ 시상식에서 만난 말글 관계자들은 국어사전 이야기에 말없이 웃었다. 하루가 지났음에도 어이가 없는 쓴웃음, 헛웃음이었다.
맹자 ‘공손추’편에 나오는 ‘농단’ 이야기를 해야겠다. 맹자가 말했다. “사람들이 필요한 물건을 서로 나누는 시장에서, 높은 곳에 올라가 혼자 이익을 차지하려는 자가 있다.” 그는 높은 곳에서 시장 돌아가는 상황을 꿰고 사재기 등으로 이익을 그물질하듯 가져갔다. 사람들은 그를 천하게 여겼고 시장에는 세금이 생겼다. 아주 높은 곳이 농단이다. 언덕 농(壟) 끊을 단(斷). 깎아지른 듯이 높은 언덕이다.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은 농단을 “깎아 세운 듯한 높은 언덕” “이익이나 권리를 독차지함을 이르는 말”로 설명한다. 자기 이익을 챙기는 데 정신 팔려 날뛰는 천한 행태를 표현할 때 어울린다. 우리말 ‘오로지하다’, 한자어 ‘호가호위(狐假虎威)’가 비슷한 뜻을 안고 있다. ‘오로지하다’는 혼자 모든 것을 차지한다는 뜻이다. 권력을 오로지하다 폭군의 대명사가 되어 버린 ‘삼국지’ 등장인물 동탁이 떠오른다. 여우가 호랑이의 권세를 빌려 호기를 부린다는 ‘호가호위’는 남의 권력을 이용해 허세 부리는 행태를 비유한다.
국정농단은 한 단어가 아니라 국어사전에 올라 있지 않다. 국정에 농단을 더했다. 나랏일에 끼어들어 이익이나 권리를 독차지한다는 뜻이다. 윤 대통령의 말과 관련한 누리꾼 질문에 국어원은 명확한 답을 못 냈다. 아쉽지만 이해는 된다. (대통령 말대로) 우리나라 정치가 욕 안 얻어먹고 원만하게 돌아가기를 바라는 마음이었는지 아닌지를 정부 부처 소속 기관이 판단하긴 어려웠을 게다.
말글연구자들과 만나면 국어사전을 놓고 토론을 벌이곤 한다. 규정된 지 오래된, 그래서 지금 우리 말글살이에 불편한 '사이시옷' 등을 말할 땐 목소리가 커지기도 한다. 하나같이 우리말 지킴이이기에 말글이 살아 움직이는 참 귀한 시간이다. 그런데 국어사전 이야기가 이토록 엉뚱한 데서 나올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 국어사전을 펼치고 '농단'을 살피니 문제가 있긴 하다. 본보기 문장이 부족하다. 한 문장 추가하면 좋겠다. “그는 밤낮으로 분야를 가리지 않고 국정농단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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