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행 비행기 탄 "포항에 석유" 액트지오..."심해 전문 컨설팅 부티크"

석유공사 데이터 분석한 비토르 아브레우 박사
액트지오 실체 의문 제기하는 분위기 형성되자
당사자 등판해 검증 결과 신뢰도 올리려는 전략
'심해 전문 부티크' 수장 네트워크 중요
아브레우 박사, 학계 및 업계 경험에서 높은 점수

동해 가스전 전경. 지난해 가동을 멈춘 뒤 이산화탄소 지중 저장소로 활용하기 위한 준비가 진행되고 있다. 한국석유공사 제공

경북 포항시 영일만 바닷속에 다량의 석유, 가스가 묻혀 있을 가능성을 제기한 미국 분석 업체 '액트지오(Act-Geo)'의 고문 비토르 아브레우(Vitor Abreu) 박사가 5일 한국에 온다. 석유 매장 가능성 검증 당사자가 여러 의문점을 직접 풀기 위한 방한이라는 게 정부 측 설명이다.

윤 대통령 발표에 결정적 역할 '아브레우 검증 결과'

윤석열 대통령이 3일 오전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 브리핑실에서 포항 영일만 앞바다에 막대한 석유와 가스 매장 가능성이 있다는 브리핑을 하고 있다. 서재훈 기자

4일 복수의 정부 고위관계자에 따르면 아브레우 박사는 윤석열 대통령이 포항 영일만 일대에 석유와 가스가 매장돼 있다는 발표가 나온 데 결정적 역할을 한 인물이다. 한국석유공사는 지난해 동해안 심해 탐사 데이터를 바탕으로 아브레우 박사가 당시 대표로 있던 분석 업체 액트지오에 석유 매장 가능성 검증을 맡겼다. 액트지오는 자체 분석을 거쳐 최대 140억 배럴의 석유와 가스가 있을 수 있다는 결론을 석유공사에 전달했다.

석유공사는 이 결과에 대한 교차 검증을 국내외 전문가들에게 맡긴 뒤 액트지오의 판단 근거가 과학적으로 합리적이기 때문에 신뢰할 만하다는 결론을 내렸다. 이후 석유공사, 산업통상자원부를 거쳐 대통령실까지 보고됐고 윤 대통령이 이를 직접 발표했다.

허름한 주택이 본사? 검증 능력에 의문 나오기도

미국 휴스턴 소재 지질탐사 전문 컨설팅 회사인 액트지오(Act-Geo) 본사 전경. har닷컴 캡처

다만 윤 대통령 발표 직후 액트지오의 본사 주소가 미국의 다소 허름한 주택가인 점이 알려지면서 액트지오의 분석 능력을 의심하는 분위기가 만들어졌다. 이에 산업부는 액트지오를 이끈 아브레우 박사의 이력을 바탕으로 분석 결과는 믿을 만하다고 주장했다. 아브레우 박사는 글로벌 대형 정유사인 엑손모빌에서 지질그룹장을 지냈고 가이아나 유전을 발견 시추한 경험이 있는 전문가라는 것이다.

정부는 이런 분위기에서 검증 결과의 신뢰도를 끌어올리는 차원으로 아브레우 박사 방한을 추진한 것으로 알려졌다. 당사자를 등판시켜 검증 결과의 과학적 기준과 근거를 설명하고 액트지오라는 업체가 믿을 만한 분석 업체라는 점을 납득시키겠다는 전략인 것으로 보인다. 아브레우 박사의 방한 기간은 짧지 않다고 한다. 이에 한국 입국과 동시에 일정이 진행되기 보다는 하루 이틀 여유를 두고 정부 고위 관계자, 석유공사 관계자를 차례로 만나고, 공개 기자회견도 열릴 것으로 알려졌다.

액트지오, '심해 전문 컨설팅 부티크'

안덕근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이 3일 오전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 브리핑실에서 열린 국정브리핑에서 윤석열 대통령의 발언 뒤 동해 석유·가스 매장 관련 추가 설명을 하고 있다. 서재훈 기자

정유업계에서는 액트지오 같은 업체를 두고 '심해 전문 컨설팅 부티크'라고 한다. 글로벌 대형 정유사에서 심해 지질 탐사를 도맡던 소수의 전문가가 적게는 2, 3명 많게는 10명 가까이 모여 기업이나 정부를 상대로 전문적 분석 결과를 제공한다. 한 정유업계 관계자는 "우리 정부같이 심해 시추 경험이 없는 경우에는 석유공사의 데이터로 1차 결론을 내더라도 부티크에 교차검증을 맡길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산업부도 이런 점을 알고 심해 전문 부티크 명단을 확보하고 규모, 인력 구성 등을 기준으로 평가해 액트지오를 선정했다. 부티크를 평가하는 기준 중에선 업체를 이끄는 인물의 네트워크가 매우 중요하다. 자체적으로 분석하는 역량도 중요하지만 여러 학계나 업계의 도움을 받을 수 있는지도 꼭 챙겨야 할 요소인 것이다. 이런 측면에서 아브레우 박사는 미국 라이스대에서 지질학과 지구물리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1999년부터는 해당 대학에서 객원교수로 일하며 학계와 관계가 두텁다는 평가를 받는다고 한다. 또한 글로벌 정유업계에서도 25년 재직한 경험도 높은 점수를 받았다.

아브레우 박사는 이날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1980년대 중반 업계에 입문해 전 세계적으로 심해 탐사 프로젝트를 성공적으로 수행한 오랜 기록을 보유하고 있다"며 "우리 회사는 작지만 아주 민첩하고 우리가 일하는 분야에서는 세계 최고라고 자부한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한 정부 고위 관계자는 "부티크 업체들이 워낙 소수의 인원으로 운영되다 보니 액트지오는 상대적으로 규모가 있는 편이었던 걸로 안다"며 "이런 점도 액트지오에 석유 매장 가능성 검증 의뢰를 맡긴 이유 중 하나"라고 전했다.

이상무 기자 allclear@hankook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