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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틀러의 무기는 '유혹'이었다...'화가 지망생' 독재자는 어떻게 대중을 사로잡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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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지옥의 묵시록’에서 바그너의 ‘발퀴레의 기행’을 크게 틀어놓고 민간인 마을을 무차별 공습하는 킬 고어 중령은 이를테면 바그너 숭배자이자 대량 학살의 독재자인 히틀러의 영화적 초상이다. 2차 대전의 격렬한 포화 속에서도 오페라, 연극, 영화에 관한 얘기를 즐겼던 히틀러는 자신의 제국이 무너지고 있던 1945년 베를린의 지하벙커에서도 고향 린츠의 재건축 모형을 살피는 것을 낙으로 삼았다.
대다수 독재자가 예술을 권력의 수단으로 활용했으나 히틀러에겐 문화와 예술은 권력의 목적 자체였다. 스스로를 예술가로 여겼던 히틀러의 예술적 충동은 독재자들의 흔한 자아도취식 과대망상과 달리, 독일 국민들까지 매료시켰다. 미술학교 시험에 두 번 낙방한, 실패한 화가였으나 그의 대중선동 연설만큼은 탁월했다는 데 이견은 없다. 영화사에 족적을 남긴 레니 리펜슈탈이 히틀러의 연설을 접하고 “나는 완전히 마비된 느낌이었다”고 한 것처럼, 독일 지성인들의 이성마저 무너졌다. 그 결과는 끔찍한 전체주의 국가 건설, 파괴적인 세계 대전과 유대인 대량학살이라는 20세기 최악의 재앙이었다.
‘히틀러와 미학의 힘’은 이 같은 히틀러의 예술가적 측면을 추적한 책이다. “스탈린이 테러를 통해 성취한 것을 히틀러는 유혹을 통해 성취했다”는 저자는 독일 국민을 장악한 히틀러의 수수께끼 같은 힘을 조명한다. 저자 프레더릭 스팟츠는 20년 넘게 미국 외무부에 몸담았던 외교관 출신의 문화 역사가로 2003년에 이 책을 출간했다. 예술이 어떻게 히틀러와 나치 집단의 무기가 되었는지를 따라가다 보면 예술과 전쟁, 문화와 야만, 미와 폭력, 이성과 광기 사이의 모순과 역설을 곱씹게 된다. 책은 이런 문제에 대한 철학적 통찰까지 나아가는 것은 아니지만, 그런 사유의 생생한 재료로 삼을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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