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출생이 정자 문제?... 혈세 들여 정자 분석·정관 복원 지원한다니 '분노'

입력
2024.05.30 04:30
수정
2024.05.30 1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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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 정관복원 시술비 지원
대구시, 정자분석기 무료 배포
"근본 대책 아냐" "혈세 낭비"
여성단체 "성평등 정책 시급"

대구시 '스마트 자가정자진단기' 배포 사업 포스터. 대구시 제공

대구시 '스마트 자가정자진단기' 배포 사업 포스터. 대구시 제공

전국 지방자치단체들이 남성의 생식기능에 초점을 맞춘 저출생 대책을 발표해 논란이 일고 있다. 저출생의 사회구조적 원인을 제대로 짚지 못하고 혈세를 낭비하고 있다는 비판이 나온다.

29일 서울시에 따르면 시는 저출생 해결을 위해 올해 정·난관 복원 시술비 지원 사업에 1억 원을 투입하기로 했다. 시는 정·난관 복원 시술을 받은 시민 1인당 최대 100만 원의 시술비를 지원한다. 시 관계자는 "건강보험이 적용되지만 보통 정관 복원에는 40만 원, 난관은 80만 원가량의 비용이 필요하다"며 "아이를 낳고 싶은 부모들의 의료비 부담을 덜어주겠다"고 밝혔다.

대구시도 저출생 대책으로 올해 3월부터 8만 원 상당의 '스마트 자가정자진단기'를 연령 제한 없이 대구 거주 남성 4,000명에게 무료로 배포했다. 해당 사업에 국비 1억9,000만 원이 투입됐다. 정자 활동성과 정자 수를 측정할 수 있는 진단기 배포를 통해 남성 난임에 대한 인식을 개선하고, 남성 가임력에 대한 관심도를 끌어올리기 위한 취지라고 시는 설명했다. 28일 기준 자가정자진단기는 4,000개 모두 동났다.

하지만 온라인 커뮤니티 등에서는 저출생 대책이 지나치게 생식기능 지원 사업에 치우쳤다는 비판이 쏟아지고 있다. 각 지역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는 "이런다고 저출생이 해결되나" "저출생에 진짜 정자가 문제인가" "90대 할아버지도 정자 체크하면 저출생이 해결되나" "차라리 난임 부부를 대상으로 구체적인 정자 검사를 지원하는 게 낫겠다" "여성이 결혼과 출산을 기피하는 원인은 제대로 들여다보지도 않고 남성에게 정자 개수나 확인해보라는 건 현실 회피 아니냐" "애를 안 낳을 생각으로 묶은 거지, 묶여서 안 낳은 것은 아니지 않냐" 등의 거센 비판이 이어지고 있다.

야당과 시민단체도 비판했다. 조국혁신당은 29일 오전 국회 소통관 기자회견에서 오세훈 서울시장을 향해 "저출생 문제의 근본 원인을 고민하지 않은, 말 그대로 '5세후니' 같은 발상"이라며 "잘 모르겠거든 차라리 가만히 있길 권한다"고 일갈했다.

한국여성단체연합도 전날 논평을 통해 "청년을 전통적 가족 제도 안으로 편입시키려는 정책, 출산을 조건으로 한 현금성 지원 정책, 기대효과가 무엇인지 파악하기도 어려운 생식기능 지원 사업 등이 난무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저출산 위기는 한국사회의 구조적인 성차별을 해소해야 해결될 것"이라며 "생식기능 지원이 아니라 성평등 정책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통계청이 29일 발표한 2024년 3월 인구동향에 따르면 1분기 기준 출생아 수는 6만474명으로 1분기 기준 역대 최저를 기록했다. 1분기 합계 출산율 역시 0.76명으로 1분기 기준으로는 처음으로 0.7명대로 내려앉았다. 통상 연초 출생아 숫자가 연말보다 많다는 걸 감안했을 때, 올해 합계 출산율이 처음으로 0.6명대로 내려갈 가능성이 커졌다.

최은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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