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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매 할머니는 오천만 원을 훔친 ‘요양보호사’를 감쌌다

입력
2024.06.05 13:00
수정
2024.06.05 19:00
1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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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단편소설 아시나요?]
백온유 단편소설 ‘반의반의 반’

편집자주

단편소설은 한국 문학의 최전선입니다. 하지만 책으로 묶여나오기 전까지 널리 읽히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한국일보는 '이 단편소설 아시나요?(이단아)' 코너를 통해 흥미로운 단편소설을 소개해드립니다.

게티이미지뱅크

게티이미지뱅크

한국에서 요양보호사라는 직업을 바라보는 시선은 늘 극단에 자리한다. 평소에는 중년 여성들의 아르바이트 수준의 전문성 없는 일자리라고 멸시하다가도 학대 등의 사건이 벌어지면 이들의 전문성 부족을 원인으로 지목한다. 처우를 결정할 때는 없다시피 하던 전문성이지만, 처벌을 논하는 순간만큼은 무엇보다 중요해지는 셈이다. 그 사이에서 돌봄 구조 자체에 대한 사회적 논의는 휘발되곤 한다.

백온유 작가의 단편소설 ‘반의반의 반’(Axt·악스트 54호)에서 치매에 걸린 할머니 ‘영실’이 잃어버렸다고 주장하는 5,000만 원을 가져간 유력한 범인은 요양보호사 ‘수경’이다. 평소 영화배우 같은 아우라를 가진 영실을 자랑스러워하던 손녀 ‘현진’은 돈이 없어졌다는 이야기에 폐쇄회로(CC)TV 영상을 살핀다.

일주일 전 검은색 비닐봉지가 든 종이상자를 안고 영실의 집에서 나온 요양보호사 수경이 종이상자를 접어 분리수거장에 버리고는 비닐봉지는 손에 든 채 아파트를 나서는 모습이 보인다. 커다랗고 각진 모양새의 그 비닐봉지에 할머니의 가방이 들었다고 현진은 직감한다.

“치매 걸린 어떤 어르신들은요. 제가 쓰레기만 버려도 전 재산을 가지고 갔다고 때리고 그래요. 저는 의심받는 게 익숙하긴 한데, 정말 아니에요.” 자신을 추궁하는 현진에게 수경은 이렇게 대꾸한다. 그의 말은 반박하기 어렵다. “5,000만 원이 예치된 기록이라든가 입출금 내역이 없으니 그 큰돈이 집에 있었다는 사실을 증명할 길”조차 없는 상황이다.

백온유 작가. 창비 제공

백온유 작가. 창비 제공

수경은 현진과의 대화 후 사정이 생겼다며 일을 그만두고, 영실의 딸 ‘윤미’와 손녀 현진의 원망은 영실에게로 향한다. 윤미는 10년 전 간통죄 합의금 2,500만 원을 빌려달라는 요청을 거절해 교도소까지 가게 한 어머니가 밉고, 현진 역시 사라진 돈이 대학 등록금과 유학비 등으로 쓰였을 가능성을 헤아려 본다. 현진은 생각한다. “왜 나의 필요를 채워주려 할머니는 희생하지 않았을까. 할머니는 마땅히 그런 역할을 수행해야 하는 존재가 아닌가. 그러기 위해 지금껏 부지한 목숨이라고 해도, 그리 어색하지 않은.”

돌봄, 특히 간병인이나 요양보호사 등 ‘가족도 하기 힘든 일’을 하는 이들을 조명해온 백 작가의 이번 소설에서 영실은 딸과 손녀가 아니라 수경에게 순도 높은 모성을 느낀다. 지난 2년간 아무런 대가 없이 자신을 가족보다 더 살뜰히 챙긴 모습에 마음이 열렸기 때문이다. 소설은 5,000만 원에 대한 각자의 태도를 통해 치매 노인 돌봄의 문제를 묻는다. 수경이 비닐봉지를 들고 나가는 CCTV를 보고도 시야가 흐릿하다고 딴청을 피우다가 결국 “사실 처음부터 5,000만 원 같은 건 없었다”고 중얼거리는 영실을 마냥 어리석다 할 수 있을까. 우리에게는 과연 어떤 돌봄이 필요할까. 또 이를 위한 적절한 대가는 무엇일지 고민해본다.

전혼잎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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