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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 첫 방문한 한국계 미국인이 ‘태극기 집회’에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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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소설은 한국 문학의 최전선입니다. 하지만 책으로 묶여나오기 전까지 널리 읽히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한국일보는 '이 단편소설 아시나요?(이단아)' 코너를 통해 흥미로운 단편소설을 소개해드립니다.
태극기 부대 혹은 태극기 집회는 한국 사회에서 하나의 ‘상징’이다. 특히 젊은 세대에게 이들은 불통이자 단절이고 껄끄럽기 그지없는 무엇이다. 태극기와 성조기를 흔들며 자신의 이념만을 신봉하는 노인들은 절대 섞일 수 없는 다른 존재로 여겨진다. 같은 한국인임에도 이토록 멀게 느껴지는 태극기 부대 사이에 집회의 의미를 전혀 모를 미국인이 하나 섞인다면. 현대문학 2024년 10월호에 실린 성해나 작가의 단편소설 ‘스무드’는 이처럼 강렬한 이미지로 이뤄졌다.
소설의 주인공은 미국 예술가 ‘제프’의 매니저 중 유일한 동양인인 ‘나’. 동양인이라는 이유로 제프의 작품을 전시할 한국의 수도 서울을 찾게 된 나는 한국계 2세대 이민자인 부모를 뒀지만, 한국에 가보긴커녕 김치도 먹어본 적 없는 ‘미국인’이다. 나에게 한국은 그저 미국 드라마 ‘하와이 파이브 오’에 나온 “뱀술이나 개고기를 파는 상점이 즐비한 우범지대, 낡고 부서진 건물들”을 떠올리게 하는 낯선 나라다.
자신과 접점을 찾으려는 한국인 사이에서 곤혹스럽기만 하던 나는 종로에서 헤매다 성조기를 발견한다. 성조기와 ‘타이극기’(태극기)를 든 이들이 자신을 도와줄 수 있겠다고 여겨 행렬에 섞였지만, 영어는 통하지 않고 대화는 연신 미끄러진다. 온몸에 태극기를 두른 할아버지 ‘미스터 김’은 미군에게 치킨을 팔며 배운 어설픈 언어로 나에게 친절을 베풀고, 두 사람은 함께 ‘축제장’을 누빈다. 축제에서 그가 마주친 이들은 “온정으로 넘치는” 다정한 사람들뿐이다.
한국에 호의는 고사하고 반감에 가까워 보이는 감정을 지닌 주인공이 태극기 집회에서 만난 노인들의 호의에 마음을 여는 과정은 한 편의 블랙 코미디처럼 전개된다. 이들과의 만남을 거쳐 마침내 한국을 ‘우리의 나라’로 지칭하게 된 나는 제프의 인종차별적 장난을 이전처럼 농담으로 받지 못한다.
소설의 제목인 ‘스무드’는 "스테인리스스틸을 매끈하게 세공한 검은색의 구"인 제프의 작품 이름이기도 하다. 제프의 작품은 분노도 불안도 결핍도 없는 매끈한 세계다. 그렇기에 모두가 좋아한다. 작품 ‘스무드’가 전시될 한국의 아파트도 매끄럽기 그지없는 공간이다. 상주 큐레이터가 있는 갤러리와 미쉐린(미슐랭) 셰프의 코스요리를 맛볼 수 있는 레스토랑 등 아파트의 모든 공간엔 입주민만 출입이 가능하고, 그렇기에 매끄러움도 유지된다. 어떤 갈등도 없는 이 매끄러움 아래 “무언가 숨겨진 것”을 소설 ‘스무드’는 자꾸 되돌아보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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