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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선민심 '정면돌파'는 무리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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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주 수요일과 금요일 선보이는 칼럼 '메아리'는 <한국일보> 논설위원과 편집국 데스크들의 울림 큰 생각을 담았습니다.
4·10 총선이 끝난 지 40일이 넘었지만 윤석열 정부는 바뀌지 않은 느낌이다. 처참한 성적표를 받아 든 여당이 수습책은커녕 반성 없이 책임전가에 급급한 데다 오만과 불통의 국정기조가 바뀐 증거를 거의 찾기 힘들다. 윤 대통령과 초선 당선자들은 서로 “호위무사가 되겠다”며 “패배의식에 젖어선 안 된다”고 결기를 다졌다고 한다. 총선 후 국정쇄신 카드였던 총리 교체는 없고 한덕수 국무총리가 1987년 민주화 이후 가장 긴 취임 2년을 맞았다. 이 정도면 정국을 ‘정면돌파’하겠다는 의지 아닌가.
개인이나 국가나 훗날 지나고 나서야 그때가 기회였다는 걸 깨닫는 경우가 있다. 김 여사-채 상병 특검을 모두 거부한 윤 대통령의 지난 9일 기자회견은 귀중한 분수령이었다. 채 상병 건 수사외압 의혹과 관련해 국방장관을 질책했다는 ‘VIP 격노설’ 질문이 나오자 “사고 소식을 듣고 이런 일은 절대 일어나선 안 된다고 질책했다”는 동문서답이 이어졌다. 사실 정치인이라면 크게 이례적인 건 아니다. 김영삼 전 대통령 화법이 이런 식이었다.
1996년 5월 대선후보 선출을 앞둔 민자당 대표최고위원 시절 YS의 언론 인터뷰가 기억난다. “경선 결과가 나오면 승복할 겁니까.” 이에 대해 “우리는 반드시 이깁니다”라고 YS가 답했다. 기자가 똑같은 질문을 다시 하자 “반드시 이긴다”고 목소리를 키웠다. 안 되면 딴살림(독자출마) 차린다는 협박처럼 들렸다. 정면돌파는 민주화투쟁 야당 정치인이 보수집권당을 ‘접수’한 YS의 뚝심과 정치방식을 설명할 때 언론이 쓰기 시작한 표현이다. 동문서답도 누가 하느냐에 따라 후광효과로 느낌은 다를 수밖에 없는 것이다.
윤 대통령이 ‘사과’에 인색하다는 것도 지난번 회견에서 느껴졌다. “제 아내의 현명하지 못한 처신으로 국민들께 걱정 끼쳐드린 부분에 대해서 사과를 드리고 있습니다.” 말하는 대상이 카메라를 통해 전 국민에게 생중계되는데 최근 주변 누구에게 어떻게 사과했다는 건지 헷갈렸다. 일본 총리들의 모호한 과거사 사과 방식이 떠오른 건 지나친 비약일까. 사무라이 문화에 익숙한 일본에선 ‘도게자(엎드려 머리를 조아림)'라고 해서 사과를 치욕으로 삼는 풍조가 있다.
사과는 사과여야 할 것이다. 2002년 6월 21일 김대중 대통령의 대국민사과가 있었다. 셋째 아들 홍걸씨에 이어 둘째 홍업씨마저 비리에 연루돼 구속되자 “지금 고개를 들 수 없는 심정으로 국민 여러분 앞에 섰다”며 “제 자식들은 법에 따라 엄정한 처벌을 받게 될 것”이라고 했다. 권력형 비리 정국이 정점에서 꺾이는 카타르시스가 느껴졌다. 국정 최고책임자가 자신을 향한 여론의 분노를 있는 그대로 인정하는 진심이 중요하지만, 정치적 반전과 활로를 찾는데도 나쁘지 않다는 것이다.
윤 대통령이 지난 21일 채 상병 특검법으로 열 번째 거부권을 행사한 뒤 대치정국은 좀 더 심각한 단계에 들어섰다. 야권 일부는 “탄핵열차”를 거론 중이다. 이럴 땐 여권 내 움직임이 중요해진다. 여름 정국까지 변곡점들이 도사리고 있다. 대통령과 냉랭해진 한동훈 전 비대위원장이 전당대회 출마를 택한다면 그 자체가 정권 전체에 위협 요인이다. 내부에서 어디에 서야 할지 양자택일을 강요받는다. 검찰에서도 윤·한 라인 간 충돌설이 파다했다. 검찰은 국가나 국민보다 ‘조직’이 우선이란 게 역사적으로 증명됐다. 과거 정권에서 조직의 명운을 걸고 성역 없이 대통령 친인척을 구속할 땐 대중이 열광하기도 했다. 윤 대통령과 검찰, 한 전 위원장 모두 시험대에 서 있다. 세 진영 어느 쪽이든, 상식 밖 해명이나 억지사과 말고 민심에 제대로 어필해야 길이 생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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