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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 좇는 일 아냐… 환자와 교감해야죠" 병원 지키는 의사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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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 병원에선 돈을 좇지만, 여기선 돈 버는 일이 아니니 환자와 교감할 수 있다."
15일 만난 강주원(69) 서울 성북구 성가복지병원 의무원장은 의사의 본분을 일깨웠다. 가톨릭 수도단체 '성가소비녀회'가 운영하는 성가복지병원은 저소득층(기초수급자·차상위·노숙인· 외국인 노동자)을 무료로 진료한다. 한국전쟁 직후인 1958년 가난과 질병에 시달리는 이들을 돌보기 위해 개원한 성가의원이 시초다. 비영리 병원이다 보니 강 원장을 포함한 소속 의사 4명의 연봉은 국내 의료기관 의사 평균 연봉(2022년 기준·3억100만 원)의 30%를 밑돈다.
경기 부천에서 개인 병원을 운영하던 강 원장은 2008년 성가복지병원으로 자리를 옮겼다. 의료봉사가 계기가 됐다. 강 원장은 "외부 병원에서 일하면 더 많은 돈을 벌 수 있었겠지만 환자와 인간적으로 교감하는 게 좋았다"며 "일반 병원은 아무래도 경제성을 고려해 환자를 인간적으로 대하기 어려운데 여기서는 수입 신경 쓰지 않고 환자를 편하게 대하고, 환자도 의사를 편하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병원은 퇴원한 환자에게 라면과 빵 등 후원 물품을 나누고, 이사 간 환자들은 인근 병원 대신 1시간이 넘는 거리를 마다 않고 이곳을 찾는다.
병원에는 33개의 일반 병상이 있다. 외·내과, 산부인과 등 필수의료과와 치과를 상시 운영한다. 안과, 정형외과, 피부과, 신경외과 등 다른 진료 과목은 외부 의사들의 봉사로 이뤄진다. 매일 평균 120명의 환자가 진료를 받는다.
1990년 무료 진료를 시작한 후 병원은 단 한 번도 문을 닫지 않았다. 진료비는 물론, 입원비와 정부의 의료수가나 보조금도 전혀 받지 않는다. 병원은 성가소비녀회 수녀들이 십일조로 내는 헌금과 전국 각지에서 보내오는 후원금으로 운영된다. 이곳에서 치료받았던 환자들도 어렵게 한푼 두푼 모은 돈을 보내온다. 소속 의사뿐 아니라 직원들도 최저 임금 수준의 월급만 받는다. 그마저도 다시 병원에 후원하기도 한다.
높은 연봉을 마다하고 15년째 병원을 지키는 이유는 의사로서의 사명감이다. 강 원장은 "의사들은 보수나 조건 없이 환자들에게 의술을 베풀겠다는 히포크라테스 선서를 한다"며 "선서를 하면서도 어떻게 하면 돈을 많이 버는 병원에 가고 개업을 할까 생각하니까 의사에 대한 국민 반감은 높아지고 환자에 대한 봉사정신은 부족해진다"고 했다.
대형병원에서는 빈번한 의료 소송 등 환자와의 갈등도 이 병원엔 없다. 다만 감사를 표하려는 환자와의 실랑이가 종종 벌어진다. 강 원장은 "예전에 할머니 한 분이 제게 술 좋아하냐고 묻더니 소주 한 병과 안주 거리를 배낭에 싸 와서 주셨는데, 받지 못한다고 했더니 아쉬워하며 도로 가져가셨다"며 "요구르트나 사탕 하나를 손에 쥐어주기도 하는데, '돈 없으면 이것도 못 준다'고 해서 거절하기가 참 난감하다"고 했다.
강 원장은 지난 2월 전공의 집단이탈 사태로 촉발된 의료대란을 안타깝게 바라봤다. 의료대란 여파로 이 병원을 이탈한 의사는 없다. 대신 일반 병원에서 진료를 받지 못한 말기 암 환자 등의 문의가 크게 늘었다. 성가복지병원은 진료 대상자가 아니더라도 호스피스 환자인 경우 잠깐이라도 머물 수 있게 병실을 내어주고 있다.
강 원장은 "의대 증원에 찬성하는 국민이 많다는 건 그만큼 의사에 대한 반감이 크다는 얘기"라며 "이번 기회에 의료계도 자성을 해야 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의사 수가 늘어나면 특권 의식을 가진 의사 외에 다른 생각이 있는 의사도 늘어날 수 있다"고 낙관했다.
성가복지병원의 목표는 소박하다. 아픈 이들이 편히 쉴 수 있는 곳. 그러기 위해선 의사가 필요하다. 김필리아 성가복지병원장은 "다른 곳처럼 월급을 많이 줄 수 없어서 봉사정신 없이는 의사나 직원들이 병원에 있을 수 없다"며 "가난해서 병원에 갈 수 없는 분들을 위한 병원으로 오래 남고 싶다"고 소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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