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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례식장 앞에서 어디론가 도망치고 싶은 마음은…

입력
2024.05.14 15:53
수정
2024.05.14 16:05
1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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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단편소설 아시나요?]
윤성희 단편소설 ‘보통의 속도’

편집자주

단편소설은 한국 문학의 최전선입니다. 하지만 책으로 묶여 나오기 전까지 널리 읽히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한국일보는 '이 단편소설 아시나요?(이단아)' 코너를 통해 흥미로운 단편소설을 소개해드립니다.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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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의 장례식장 입구에서는 어쩐지 이대로 발길을 돌려 도망치고 싶은 기분이 든다. 아는 사람이 아닌, 건너 건너의 사실상 모르는 이의 죽음 앞에서도 마찬가지다. 한 인간의 죽음이라는 되돌릴 수 없는 상실과 그로 인한 슬픔의 무게를 차마 마주할 용기가 부족해서일 테다. 윤성희 소설가의 ‘보통의 속도’(문학동네 2024 봄)에서 친구 ‘민균’이 부인상이 끝나고 보낸 ‘장례식에 와줘서 고맙다’는 메시지에 “무슨 말을 할지 몰라 답을 하지” 않은 ‘무영’처럼.

"아무도 못 알아차리게 아주 조그맣게" 아들 이름을 쓴다는 것

우연한 기회에 외벽 페인트공으로 일하기 시작한 무영은 옛 직장 상사 어머니의 장례식장에서 “위험한 직업군에 속해서 직업 변경을 알리지 않으면 사고 시 보험금을 받지 못할 수도 있다”라는 옛 직장 동료의 말을 듣는다. 바로 다음 날 일하다가 돌풍으로 낙상의 위기를 가까스로 넘긴 그는 장례식 탓을 하며 “가능하면 장례식장은 가지 않고 부조금만 보내”기로 하지만, 민균의 아내가 교통사고로 갑작스레 사망하면서 이런 다짐은 무산된다.

옛 직장 상사의 어머니와 민균의 아내부터 ‘교장선생님’이 식당에서 우연히 만난 남자의 친구, 무영의 사장님인 아파트 외벽 페인트공의 아들, 그리고 같은 이름을 가졌던 친구 ‘무영’까지. 소설 ‘보통의 속도’에는 이처럼 누군가의 죽음이 끊임없이 등장하지만, 죽음보다 찬란했던 인물들의 생을 들여다본다. 남편과 아파트 인근을 산책하다 공중에서 일하는 나에게 “두 손을 크게 흔들며” 인사를 하던 민균의 아내처럼, 딱히 의미도 없고 대수롭지 않은 평범한 순간들이 쌓이고 쌓인 생.

이런 일상의 순간은 결국 삶을 지속하게 하는 소박한 용기가 된다. 매일같이 싸우는 부모님에게 상처받은 초등학생 시절의 무영과 아파트 외벽 페인트공의 만남도 마찬가지다. “아저씨처럼 용감한 사람이 되고 싶다”는 어린 무영에게 “사실 자기는(나는) 엄청난 겁쟁이”라고 답한 페인트공은 비밀을 하나 말해준다. “아파트 벽에 아들 이름을 써놓았다고. 아무도 못 알아차리게 아주 조그맣게.” 그 말을 듣고 우는 무영에게 그는 아파트 어딘가에 무영의 이름도 써주겠다고 말해준다.

썼다 덧칠하는 이름들이 불어넣는 '살아가는 힘'

윤성희 소설가. 정다빈 기자

윤성희 소설가. 정다빈 기자

페인트공이 “벽에 이름이 있으면 용기가 생길 것 같다”는 무영의 말을 들어주고 싶었던 건, 그의 아들이 죽은 지 1년이 되는 날이라는 우연과 무관하지 않았다. 이런 우연은 직장을 그만둔 무영이 페인트공이 되도록 하고, 또다시 아파트 도색 작업을 하던 그가 자신을 향해 “아주 용감해 보인다”고 말하는 아이와 마주치는 순간으로 이어진다. 무영은 아이에게 “무서운 상상이 들 때마다 할아버지가 되는 상상을 한다”고 말해주면서, 아파트 벽에 아이의 이름을 써주겠다고 약속한다.

아이와 만난 다음 날 무영은 아파트 113동 벽에 연필로 아이의 이름을 쓰고, 또 114동과 115동에는 친구들의 이름을 쓴다. 아파트 벽에 적힌 이름을 사진으로 찍어 보내주었더니 민균에게서는 ‘술 한잔하자’는 답장이 온다. 이윽고 페인트로 덧칠하며 각자의 이름은 금방 사라졌지만, 이런 순간은 모이고 모여 “횡단보도의 흰색 부분과 검은색 부분을 번갈아 밟아가며” 살아갈 수밖에 없는 일상의 슬픔을 나누도록 용기를 불어넣어 주지 않을까.

전혼잎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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