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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러니'를 기억-환기해야 하는 이유

입력
2024.05.20 04:30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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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20 1970년 독전 시위

1970년 5월 뉴욕의 베트남전 지지 시위대들. "평화주의자들을 타도하라(Down With Peaceniks)"란 피켓을 든 그들이 50년대 한국전쟁 참전을 지지했다. AP 연합뉴스

1970년 5월 뉴욕의 베트남전 지지 시위대들. "평화주의자들을 타도하라(Down With Peaceniks)"란 피켓을 든 그들이 50년대 한국전쟁 참전을 지지했다. AP 연합뉴스

1950년 ‘갤럽’ 여론조사에서 미국 시민 65%는 한국전쟁 참전에 찬성했다. 반대는 20%였다. 하지만 미군 피해가 늘고 전쟁이 장기화 국면으로 치닫자 6개월 뒤(이듬해 초) 여론조사에서는 49%가 한국전 참전은 실수라고 답했다. 잘한 결정이라는 응답은 38%였다. 참전 찬반 여론은 1953년 휴전이 임박하면서 찬성 50%, 반대 36%로 다시 반전됐다.

1960, 70년대 베트남전쟁에 대한 여론도 65년 갤럽 조사에서는 60%가 (남)베트남을 도와야 한다고 답했고 참전에 반대한 여론은 24%에 그쳤다. 미군 사상자가 급증하면서 여론도 빠르게 달라져 1968년 조사에서는 54%가 베트남전 참전을 ‘실수’라고 답했고, ‘잘한 일’이라는 응답은 37%였다.

여론은 크게 두 갈래였는데, 핵무기로 위협을 일삼는 (구)소련에 본때를 보여줘야 한다는 입장과 청년들의 희생, 전쟁비용, 국내 인플레이션 해소가 더 중요하다는 입장으로 나뉘었다. 냉정히 보자면 일반적인 미국 시민에겐 한국전쟁이나 베트남전쟁이나 본질적으로 다를 게 없었다. 시대-사회적 조건과 변수를 함께 고려할 일이지만, 미국의 여론만 보자면 전시 한국을 도운 건 반공-보수 진영이었다.

베트남전을 끝까지 지지한 것도 보수 진영이었다. 1967년 7만여 명의 뉴욕 전쟁 지지 시위대를 이끈 지휘부는 “전쟁이냐, 빨갱이냐”란 슬로건을 외쳤고, 70년 ‘안전모 폭동’의 건설 노동자들은 자신들이 폭행해 숨지게 한 반전시위 대학생 희생자들을 추모하며 시청사에 조기를 건 뉴욕 시장(John Lindsay)을 조롱하는 피켓(Hanoi Lindsay)을 들었다. 뉴욕 광역 건축-건설업 협회가 그들을 후원했고, 주동자들은 리처드 닉슨의 백악관에 초청돼 기념촬영까지 했다. 월스트리트 일대를 약 2주간 점거했던 시위대 규모는 정점이던 1970년 5월 20일 최대 15만 명(추산)에 달했다.

최윤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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