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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승의날 차라리 없었으면"... 교권침해 계속에 교직 사기 최악

입력
2024.05.14 10:00
11면

서이초 사건 이후 맞는 첫 스승의 날
여전한 교권침해... "달라진 건 없어"
교직사회 우울감 지속... 퇴직 사례도

지난 2월 17일 오후 서울 을지로입구역 인근에서 열린 서이초 교사 순직 인정을 촉구하는 집회에서 참석자들이 피켓을 들고 있다. 뉴시스

지난 2월 17일 오후 서울 을지로입구역 인근에서 열린 서이초 교사 순직 인정을 촉구하는 집회에서 참석자들이 피켓을 들고 있다. 뉴시스


"숨이 턱 막히는 그 기분 아실까요? 서이초 사건 이후 잠깐 바뀌는 것 같더니, 결국 달라진 건 없네요."

스승의 날(5월 15일)을 이틀 앞둔 13일, 서울 초등학교에서 일하는 김모(29) 교사는 학기 초의 '그 사건'을 떠올렸다. 새 학기 시작과 동시에 두 학생 간에 사소한 다툼이 발생했는데, 그중 한쪽 학생 부모가 매일같이 김 교사에게 민원 폭탄을 쏟아부었다. '그 아이는 왜 사과하지 않나요'라는 장문의 문자, 한 번 받으면 끊으려 하지 않는 폭언성 전화 통화.

업무 시간 이후엔 연락을 받지 않는 등 피하는 노력도 해봤지만 헛수고. 아침마다 쌓여 있는 문자를 마주할 때면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다고 한다. 김 교사는 "올해 1학기 들어 악성민원이 다시 늘었다"며 "스승의 날은 더 삭막해졌다"고 토로했다.

15일은 서울 서이초등학교 교사 사망 사건 이후 맞는 첫 번째 스승의 날이다. 교권침해 문제가 여론의 주목을 받고 관련 제도가 개선되는 등 일부 가시적 변화도 있었지만, 여전히 학교 현장에선 "갈 길이 멀다"는 반응이 나온다. 감소하던 악성민원이 다시 는 것도 문제지만, 그동안 열악한 교육현장을 지켜온 교사들의 최고 자산인 '신뢰'가 무너진 것은 수습하기 어렵다.

'스승의 날' 대신 '교사 인권의 날'

지난해 7월 서이초 교사 사망 사건은 수면 아래에 잠재되어 있던 교권침해 문제가 조명받는 계기가 됐다. 1학년 담임이 학생들 간 다툼을 해결하는 과정에서 학부모 민원 등으로 과도한 스트레스를 받았다는 의혹이 제기되면서, 전국 교사들은 추모를 위해 매주 거리로 뛰쳐나왔다.

경찰이 수사를 진행한 끝에 지난해 11월 서이초 사건과 관련해 '범죄 혐의점이 없다"며 입건 전 조사(내사)를 종결했지만, 변화를 요구하는 물결은 수그러들지 않았다. 결국 지난해 9월 국회에서 '교사의 정당한 생활지도는 아동학대로 보지 않는다'는 내용을 골자로 하는 '교권 5법'이 통과됐다. 인사혁신처도 2월 해당 교사에 대한 순직을 인정했다. "학생인권조례가 문제"라는 지적이 제기되면서 충남·서울시의회의 학생인권조례 폐지로 이어지기도 했다.

지난해 9월 서울 서초구 서이초등학교에서 고 서이초 교사 49재 추모식이 열리고 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지난해 9월 서울 서초구 서이초등학교에서 고 서이초 교사 49재 추모식이 열리고 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역대 가장 우울한 스승의 날

그럼에도 교사들은 현장에서 바뀐 게 없다고 말한다. 초등학교에서 일하는 배모(27) 교사는 "사건 직후 반짝 악성민원이 줄긴 했지만 다시 늘어나는 추세"라며 "아동학대의 기준이 불분명하고 보육 중심의 학교 시스템이 계속되는 한 '배변활동을 봐달라' '약을 챙겨 먹었는지 알려달라'는 등 불필요한 민원들에 끊임없이 시달릴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중학교에서 가르치는 박모(27) 교사도 "솔직히 변화 체감이 크지 않다"며 "제도적 보호뿐 아니라 학부모님들의 교권 존중이 가장 필요하다"고 호소했다.

실제로 교사노조가 10일 발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최근 1년 학생에게 교권침해를 당한 적이 있다'고 답한 교사는 57%, '보호자에게 교권침해를 당한 적이 있다'고 말한 교사는 53.7%였다. 이에 따라 교사들의 사기도 최악으로 떨어져,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교총)가 전국 교원 1만1,320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설문조사에서 '다시 태어나면 교직을 선택하겠다고 답한 교사가 19.7%에 그쳤다. 2012년 이래 최저다.

스승의 날을 맞는 마음이 예전 같지 않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경기의 한 초등학교 담임인 A교사는 최근 학부모들에게 보낸 ‘5월 셋째 주 주간학습안내’에 스승의 날 표시를 아예 빼버렸다. 14일 ‘식품안전의 날’ 표시까지 했지만, 15일엔 ‘부처님 오신 날’만 적었다. 학부모들이 스승의 날을 모르고 지나간들 전혀 서운하지 않고, 교사가 존중받지 못하는 현실에서 맞는 스승의 날 자체가 무의미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최근 교직사회 분위기가 어떠냐는 질문을 받은 서울의 한 초등학교 B교사는 "스승의 날을 챙기려 해도 무슨 의미가 있냐는 분위기가 있다"고 토로했다. 초등학교 C교사 역시 "이렇게 속상한 스승의 날은 처음"이라며 "스승의 날이 사라졌으면 좋겠다고 하는 분도 있고, 많은 선생님들이 이직을 결심한 상황"이라고 털어놨다.

전문가들은 각종 제도 개선이 현장에서 효과로 나타나려면 세부사항(디테일) 챙기기가 뒤따라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조성철 교총 대변인은 "교사들이 가장 힘들어하는 정서학대 기준이 여전히 모호하고 악성 아동학대 신고자에 대한 처벌 규정도 부재해, 추가 입법 노력 및 지속적 모니터링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박남기 광주교대 교육학과 교수도 "법적 토대 위에 구체적 가이드라인 확립이 따라야 하고, 학부모 교육에도 적극적으로 나설 필요가 있다"고 제언했다.

이서현 기자
전유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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