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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 700만원도 중산층이 아닌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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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주 수요일과 금요일 선보이는 칼럼 '메아리'는 <한국일보> 논설위원과 편집국 데스크들의 울림 큰 생각을 담았습니다.
주부 김모(49)씨는 격주 토요일 밤마다 동네 마트가 문 닫기 직전 장을 본다. 다음 날이 정기 휴일이라 유통기한이 임박한 유제품과 과일, 채소 등을 평소보다 큰 폭으로 할인 판매하기 때문이다. 사실 김씨 남편의 월급은 명목상 700만 원으로, 꽤 높은 수준이다. 그러나 세금 떼고 손에 들어오는 550만 원에서 반토막은 중고교에 다니는 두 자녀의 학원비로 증발한다. 이어 전세 대출 이자에 아파트 관리비와 제세 공과금까지 내고 나면 생활비는 늘 쪼들린다. 김씨는 “1+1이나 세일에만 손이 가, 스스로 중산층이라고 생각해 본 적이 없다”며 “소득이 많아도 내 집이 없다면 중산층이라고 하긴 힘들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이 발표한 ‘한국의 중산층은 누구인가’ 보고서가 화제다. 실제로는 고소득층인데도 스스로를 중하층이라고 여기는 이들, 중산층임에도 하층이라고 낮춰 생각하는 이들이 많다는 조사 결과 때문이다. 설문에서 월 소득 700만 원이 넘는 고소득 가구 중 자신을 하층이라고 여기는 비율(12.2%)은 상층이란 비율(11.3%) 보다 컸다. 중산층도 40%는 자신을 하층으로 인식했다.
왜 그럴까. 가장 큰 이유는 중산층에 대한 기준과 인식에 큰 골이 있기 때문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중산층 기준은 중위소득의 75~200%다. 이를 적용하면 월 소득 400만~1,100만 원(4인 가구)이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 이 범위를 똑같은 중산층으로 묶는 건 정서상 안 맞는다. 대다수 국민은 소득보다 자산을 더 중요한 기준으로 본다. 적어도 아파트 한 채는 있어야 중산층이라고 여긴다는 이야기다. 또 자동차는 그랜저 이상, 해외여행도 1년에 한 번 이상 가야 중산층이라는 게 일반적인 통념이다.
그런데 지금 한국에선 중산층의 제1조건인 내 집을 마련하는 게 쉽지 않다. 지난해 우리나라 가구의 평균 순자산은 4억3,500만 원이다. 전체 가구의 60% 가까이는 순자산이 3억 원도 안 된다. 반면 서울 아파트 매매 중위가격은 9억 원, 전세 중위가격은 5억 원 안팎이다. 평균 순자산으론 중간값 정도의 서울 아파트 전세도 못 얻는다는 얘기다. 소득 기준으로 보면 중산층에 속하지만 집 한 채도 살 수 없는 이들은 스스로를 중산층이라고 생각할 수 없다.
물론 집을 사는 게 불가능한 건 아니다. 그러나 서울 중위소득 가구가 아파트를 매수하면 주택담보대출 원리금 상환으로 소득의 40% 이상을 부담해야 한다. 이렇게 '찐중산층'이 되기 위해 '영끌'을 한 이들은 지금 빈곤층과 다름없는 궁핍한 생활을 하고 있다. 가계부채는 사상 최대다. 소득은 분명 상류층이나 중산층이지만 실제 생활은 우리가 떠올리는 중산층의 모습과는 거리가 멀다. 설문에서 스스로를 한 계단 이상 낮춘 계층으로 자학하며 답한 까닭이다.
이 외에도 월급 빼곤 다 오른 물가로 중산층의 삶이 예전만 못한 것도 주요 배경이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가 상대적 박탈감을 더 키운 것도 무시할 수 없다. 분명 많은 연봉을 받는데도 SNS를 보면 자신보다 더 벌고 화려하게 사는 이들만 있는 것 같다. 남들과 비교하는 순간, 우울증과 불행이 시작된다. 자신만의 기준으로 기웃대지 않는 삶을 사는 게 중요하다.
역대 정권마다 ‘중산층이 잘사는 나라’를 만들겠다고 외쳤다. 윤석열 대통령도 취임 2주년 기자회견에서 “서민은 중산층으로 올라서고 중산층은 더 풍요로운 삶을 누리도록 ‘서민과 중산층 중심 시대’를 열겠다”고 선언했다. 지금 중산층은 고물가에 사실상 하층으로 추락한 것으로 느낀다. 집을 갖고 싶은 중산층이 미친 집값으로 꿈을 이룰 수 없다면 계층은 계급으로 고착될 수도 있다. 물가와 집값부터 정상으로 만들어야 중산층 시대도 열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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