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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을 약탈해서 만든 건 명품이 아니다"...'디올 파우치' 논란이 보다 건설적이었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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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의 활동이 지구환경을 좌지우지하는 새로운 지질시대인 ‘인류세’로 들어섰다는 주장이 나온 지 오래입니다. 이제라도 자연과 공존할 방법을 찾으려면 기후, 환경, 동물에 대해 알아야겠죠. 남종영 환경논픽션 작가가 4주마다 연재하는 ‘인류세의 독서법’이 길잡이가 돼 드립니다.
영국왕립음악원 소속의 20대 플루트 연주자가 런던에서 공연을 마친 뒤 기차를 타고 소도시 트링에 간다. 그곳에는 런던자연사박물관의 조류 표본실이 있다. 유리창을 깨뜨리고 들어간 그는 다윈과 진화론을 함께 썼던 앨프리드 월리스가 수집한 새 가죽 299점을 들고 유유히 사라진다.
2009년 영국에서 일어난 세기의 자연사 도난 사건을 파헤친 논픽션 ‘깃털 도둑’을 소개하면서 이를 먼저 이야기하지 않을 도리가 없다. 그 뒤의 이야기는 범인을 찾는 스릴러이기도 하지만, 19세기 후반의 깃털 열풍이 어떻게 현재의 아름다운 낚시 미끼에 대한 집착으로 살아남았는지를 보여주는 미시사(微視史) 보고서이다.
100여 년 전으로 돌아가 보자. 공작은 현란한 깃털을 가졌다. 극락조는 너무 아름다워 신들의 음식을 먹고 죽기 전에는 땅을 밟지 않는 새였다. 이 새들은 생존에 도움이 안 되는데도 왜 그리 아름다울까. 진화의 역설에 관한 질문을 들고 과학자들이 숲에 들어갔다면, 사냥꾼들은 당시 유럽과 미국 여성이 쓰는 모자에 꽂을 깃털을 구하기 위해 숲에 들어갔다. 쇠백로 깃털 1㎏을 모으기 위해선 최대 1,000마리의 새를 잡아야 했다. 값이 나가는 희귀종은 귀족들이 구하려고 안달이었다. 크리스찬 루부탱 구두와 에르메스 가방이 나오기 전까지 신분을 표현하는 최고의 수단은 죽은 새였다. 20세기 마지막 30년 동안 수억 마리의 새가 살해됐다.
20대 청년은 플라잉 낚시에 들어가는 미끼에 희귀종의 깃털을 달고 싶어 새 가죽을 훔쳤다. 플라잉 낚시의 미끼는 그저 깃털이면 될 뿐, 굳이 예쁠 필요가 없다. 그러나 빅토리아 시대 우아함의 미학은 미끼를 예술로 승화시켰고, 21세기 온라인의 후예들은 희소한 조류의 깃털로 만든 미끼를 최고로 쳤다.
여기서 인간과 동물의 관계를 질문할 수 있다. 왜 우리는 꼭 필요한 것도 아닌데 동물을 가두고 만지고 깃털을 수집할까. 인간은 동물을 사랑하지만, 어느 순간 소유하려 들고, 소유의 목적은 대개 과시이다. 하지만, 사랑은 적절한 거리를 두는 것이다. 그것이 집착과 스토킹과의 결정적 차이다. 마찬가지로 인간이 동물을 진정으로 사랑하려면 적절한 거리를 둬야 한다.
실용이 아닌 사치, 오리지널에 대한 집착이라는 욕망으로 자연을 약탈하는 게 가장 고약하다. 반대편에서 중용을 지키려는 움직임도 있다. 이들은 의약품 생산을 위한 동물실험은 인정할 수밖에 없지만, 화장품 생산을 위한 동물실험은 엄격히 금지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모든 종류의 동물 이용에 반대하는 철폐주의자라기보다는 ‘쓸모없는 것부터 동물의 희생을 줄이자’는 개혁주의자들이다.
한국을 비롯한 선진국에서 화장품 동물실험이 금지된 것처럼 모피와 가죽 패션도 조만간 법적인 규제를 받을 것이라고 예상한다. 그런 점에서 한국 사회를 떠들썩하게 했던 한 해외 브랜드의 '300만 원짜리 송아지 가죽 파우치 논란'이 건설적인 방향으로 뻗어나가지 못한 게 아쉽다. 생명을 희생시켜 만든 것은 명품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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