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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수가 회초리를 더 일찍 들었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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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주 수요일과 금요일 선보이는 칼럼 '메아리'는 <한국일보> 논설위원과 편집국 데스크들의 울림 큰 생각을 담았습니다.
총선 이후 보수언론의 칼럼이나 사설을 보다 깜짝깜짝 놀랄 때가 많다. 때론 진보언론보다 윤석열 대통령을 더 아프게 때린다. ‘내 편’이 때려서 그렇게 느껴지는 것만도 아니다. 내용 자체가 매우 직설적이다. 윤 대통령 부부가 모든 문제의 시작과 끝이라고 일갈하고, 더 이상 자리에 연연하지 않는다는 결의가 필요하다고 한다. 심지어 검사는 절대 대통령을 시키지 말아야 한다는 주장까지 편다. 이쯤 되니 잘되라는 훈수를 넘어 하나둘 ‘손절’에 나선 것 아니냐는 해석까지 나온다.
대통령에 대한 보수진영의 이런 태도 변화에는 세 차례 변곡점이 있었다고 본다. 첫 번째가 작년 10월 서울 강서구청장 보궐선거에서 여당의 완패. 대통령은 보궐선거 원인 제공자인 김태우 전 구청장에게 사면∙복권으로 출마의 길을 터줬고, 국민의힘 지도부는 대통령실 눈치만 살피다 그를 공천했다. 총선의 수도권 민심 가늠자가 될 선거에서 용산의 자충수가 보수진영에는 뼈아팠을 것이다. 두 번째가 그해 11월 말 터진 김건희 여사의 명품백 수수다. 초기만 해도 ‘몰카 함정 공작’의 프레임만 부각시키다 어느 순간 정면으로 문제를 제기하기 시작했다. ‘김건희 여사’가 금기어에서 해제된 것도 이 무렵이다. 서둘러 진화하지 않으면 불길이 걷잡을 수 없이 번질 거라는 위기의식의 발로였을 것이다.
마지막 세 번째가 언급한 대로 여당 참패로 끝난 4∙10 총선이다. 대통령이 비서실장을 임명하면서 아주 짤막하게나마 기자들과 문답을 하고, 비록 빈손에 가까웠지만 2년을 버티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와 회담을 갖고, 오늘(9일) 무려 631일 만에 정식 기자회견을 갖기로 한 건 큰 변화다. 대통령은 “국민 회초리” 때문이라고 표현했지만, 보수진영의 회초리 영향이 컸을 거라고 본다. 지금껏 눈과 귀를 열어온 몇 안 되는 보수언론의 박절한 태도를 견디기 쉽지 않았을 것이다.
나는 그래서 윤 대통령이 남은 3년을 걱정해야 할 만큼 벼랑 끝에 몰린 데는 보수언론 책임이 크다고 본다. 세 차례 결정적 변곡점을 맞기까지 숱한 징후들이 있었다. 이준석 유승민 안철수 나경원을 차례로 제거하며 ‘친윤 당대표’를 세울 때 엄중히 꾸짖었더라면, 잇단 인사 참사에 확실히 제동을 걸었더라면, ‘바이든-날리면’ 논란이 커졌을 때 진영 논리를 떠나 언론 자유를 지지했더라면, 국무회의 생중계로 하고 싶은 말만 홍보하는 걸 따끔하게 질책했더라면. 그땐 애써 눈감고, 뭉개고, 또 옹호했다. 사태가 이렇게까지 될 줄은 몰랐을 것이다. 좀 더 일찍 냉랭한 민심을 전달했더라면 지금 결과는 달라져 있을지 모른다.
윤 대통령은 민정수석실 부활을 알리며 “취임한 이후부터 언론 사설부터 주변의 조언이나 이런 것들을 많이 받았다”고 했다. 애석하지만 이것이야말로 듣고 싶은 것만 듣는다는 방증이다. 어느 언론의 어떤 사설이었는지는 모르겠으나, 극소수 보수언론의 잘못된 조언을 편협하게 수용한 결과다. 지금 민심을 제대로 듣겠다며 민정수석실을 부활하고 검사 출신을 앉힌 것에 박수를 치는 이들은 진보∙보수를 막론하고 거의 없다. 정말 민심 청취가 중요하다면 스스로 조금만 진정성을 갖고 눈과 귀를 열면 될 일이다.
진보진영의 지적을 그저 비판을 위한 비판쯤으로 여길 수도 있다. 역대 대통령들도 크게 다르지 않았지만 유독 ‘내 편’의 범위가 좁다는 게 문제다. 심지어 그들조차 언제까지나 내 편이 아닐 수 있음은 이번에 충분히 확인했을 것이다. 그렇다면 진보까지는 버겁더라도 최소한 중도언론의 조언에까지는 귀를 기울이기 바란다. 오늘 기자회견이 그 가늠자가 될 것이다. 3년 레임덕은 보수만이 아니라 국민 모두에게 끔찍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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