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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운 법정 스님 목소리 "무소유의 맑은 가난이 훨씬 값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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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정도면 '갈증'이었다 할 만하다. 법정(1932~2010) 스님의 미출간 강연 모음집 '진짜 나를 찾아라' 얘기다. 초쇄 8,000부를 찍었는데 금세 동났다. 1만 부를 급히 다시 인쇄했는데 이 또한 공급이 간당간당하다 한다. "스님의 마지막 말씀이 '말빚 남기기 싫다. 내 책을 더 찍지 말라'는 것이어서 저희로서도 이번 책을 준비하면서 무척이나 조심스러웠습니다. 하지만 책을 내고 보니 생전 법정 스님의 다정다감한 말과 글을 기다리셨던 분들이 이토록 많다는 걸 다시 한번 느꼈습니다." 책을 펴낸 샘터 출판사 고혁 부장의 설명이다.
전남 해남에서 태어난 법정 스님은 한국전쟁을 계기로 출가, '불교신문' 편집국장, 전남 순천 송광사 수련원장 등을 지냈다. 1994년 시민단체 '맑고 향기롭게'를 만들었고, 옛 백석의 연인으로부터 대원각을 기증받아 이를 길상사로 고친 뒤 회주로 지낸 건 유명한 이야기다. 송광사 뒤편 불일암, 강원 산골 화전민이 살던 오두막 같은 곳에서 홀로 지내며 무소유의 삶이란 무엇인가 온 몸으로 보여주기도 했다.
무엇보다 담담하고 정갈한 글솜씨로 이름을 떨쳤다. 조계종 종정을 지낸 성철(1912~1993) 스님이 파격, 기행, 수행 같은 걸로 이름을 얻었다면 법정 스님은 차근차근 이야기를 들려주는 듯한 말과 글솜씨가 일품이었다. 대표작 '무소유'는 1976년 출간 이후 100만 부 이상 판매됐고 개그맨 유병재가 초판본을 100만 원을 주고 구했다 해서 화제가 되기도 했다. 이 책 때문에 지금도 '불교', '스님'이라 하면 무소유부터 떠올리는 사람들이 많다. 이 외에도 '오두막 편지' '새들이 떠나간 숲은 적막하다' '버리고 떠나기' 등 여러 권의 책을 남겼다.
이 책에서도 법정 스님의 말씀은 한결같다. 1994년 강원 춘천에서 법정 스님은 이렇게 말했다. "무소유란 아무것도 갖지 않는다는 뜻이 아닙니다. 무소유란 아무것도 갖지 않는 것이 아니라 불필요한 것을 갖지 않는 것입니다. 무소유의 의미를 음미할 때 우리는 홀가분한 삶을 살아갈 수 있습니다. 우리가 선택한 맑은 가난은 혼탁한 부보다 훨씬 값지고 고귀한 것입니다."
무소유라 해서 진짜 모든 걸 다 내다 버리는 건 또 하나의 극단이다. 필요한 건 필요한 대로 써야 한다. 법정 스님이 강조한 것은 "소비자이길 그만두는 것"이다. 환경을 위한다며 종이 빨대를 쓰고 텀블러 쓰는 방식은, 안 하는 것보다는 낫겠지만 여전히 소비자로서 행동하는 것일 뿐이다. 소비자이길 그만두는 것, 곧 되도록 아무것도 안 할 수 있도록 모든 걸 최소화하는 것이 정답이라는 얘기다. 지금 읽어도 이 이상의 환경생태론은 없을 것 같다.
1986년 동덕여대 강연에서는 불교도들을 따끔하게 혼내는 모습도 볼 수 있다. 불교는 불립문자, 선수행이라는 생각 때문인지 불교도들이 의외로 경전을 차분하게 읽지 않는다고 질타했다. "적어도 불자들은 석가모니 생애와 가르침을 환히 알아야 합니다. 텔레비전 연속극이나 시시한 잡지는 거르지 않고 보면서 성인의 가르침에 대해서는 얼마나 알고 있는지 반성해야 합니다." 불교도라면 '본방사수'해야 할 것은 TV드라마가 아니라 부처님의 가르침이어야 한다는 얘기다.
그러면서도 화엄경의 '입법계품(入法界品)'에서 젊은 구도자 선재동자의 여정에 주목할 것을 주문했다. "선재동자의 구도행각이 지혜를 상징하는 문수보살로부터 출발하여 온갖 덕행을 상징하는 보현보살에 이르러 마치게 되는 것은 불교의 본질이 어디에 있는가를 명확하게 보여주는 실증"이라고 지적했다. 열심히 공부해 깨치는 것을 넘어 실제로 행동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걸 인도의 수행자 말을 빌려 "물속에 사는 물고기가 목말라한다"고 표현해 뒀다. 어디 다른 멀리에서 무언가 구할 생각 말고 자기가 늘 부대끼는 일상에서 행동하라는 의미다.
시대의 아픔도 슬쩍 묻어난다. 1979년 부산중앙성당에서 행한 강연에서 법정 스님은 "요즘 다시 새삼스럽게 말을 익히고 있다"고 하더니 성당 어딘가에 있는 기관원을 향해 "정부를 비방하거나 체제에 도전하는 그런 언동은 없을 것이니 안심하고 들으라"고도 했다. 박정희 정권에 맞서 싸웠으나 그 분노가 종교적이지 않다는 생각에 한동안 외부 출입을 끊고 지냈으나, 여전히 따라다니는 기관원들에게 일거수 일투족을 감시당하던 시대 상황이 역력하다.
책에 실린 마지막 글은 1999년 길상사 설법전에 행한 다도에 대한 글이다. 이규보, 이색 등 옛 선비들이 지은 은은한 한시와 함께 풀어냈는데, 글만 읽어도 왠지 법정 스님께 좋은 차 한 잔 대접받은 기분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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