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이버의 공든 탑, 이대로 일본에 넘길 건가

입력
2024.05.08 04:30
2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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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대통령이 4월 9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열린 반도체 현안 점검회의에서 최수연(왼쪽) 네이버 대표와 인사하고 있다. 서재훈 기자

윤석열 대통령이 4월 9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열린 반도체 현안 점검회의에서 최수연(왼쪽) 네이버 대표와 인사하고 있다. 서재훈 기자


굉장히 이례적이다

최수연 네이버 대표


최수연 네이버 대표가 3일 일본 총무성이 행정 지도를 통해 네이버로 하여금 관계사 라인야후에 대한 자본 지배력을 줄이라고 요구한 것과 관련해 꺼낸 첫 공식 반응이다.

그의 말처럼 일본 정부의 조치는 이상하다. 한 사안으로 행정 지도를 두 차례 했다. 라인야후는 지난해 11월과 올해 2월 네이버클라우드에서 라인 애플리케이션 이용자 정보 등 약 51만 건이 빠져나갔다고 했다. 일본 정부는 3월 행정 지도를 내렸고 라인야후가 2026년까지 네이버와 시스템 분리를 추진하겠다는 보고서를 냈지만 충분치 않다며 또 행정 지도를 했다.

내용도 예사롭지 않다. 네이버의 라인은 2019년 소프트뱅크가 보유한 야후재팬과 합병했고 라인야후로 새출발했다. 네이버와 소프트뱅크는 라인야후의 중간지주사 A홀딩스 지분을 50%씩 나눠 갖고 공동 경영권을 행사했다. 일본 정부는 네이버에 "라인야후와 자본 관계를 재검토하라"고 했고, 소프트뱅크엔 "자본 개입을 강화하라"고 했다. 일본 매체들도 "당국이 행정 지도로 기업에 경영 체제를 재검토하라 한 것은 드물다"고 평가했다. 일본 정부는 지난해 10월 NTT서일본에서 사용자 정보 982만 건이 유출됐을 때 재발 방지책을 마련하라는 행정 지도만 했다. 또 2021년 42만 명의 페이스북 이용자 정보가 빠져나갔을 때도 메타에 지배 구조를 문제 삼지 않았다.

이해진 네이버 창업자는 2011년 동일본 지진을 겪으며 전화망이 끊겨도 소통할 수 있는 메신저 서비스를 만들었다. 현재 일본 인구의 80%인 9,600만 명이 한 달에 한 번 이상 라인을 쓰며 뉴스를 보고 만화(라인망가), 음악(라인뮤직), 동영상 스트리밍(라인 VOOM) 등도 즐긴다. 라인인페이로 결제송금도 할 수 있다. 일본 정부는 자국민이 가장 많이 쓰는 메신저의 주도권을 일본 기업이 갖게 하려고 네이버에만 까다롭게 군다는 해석도 있다.

네이버는 일본에서 13년 동안 라인을 키웠다. 직원 대부분을 일본인으로 뽑았고 일본에서도 기술·서비스를 개발했다. 다양한 만화 캐릭터를 활용한 이모티콘 스티커 등 공격적 마케팅도 펼쳤다. 하지만 라인을 교두보 삼아 글로벌 시장 진출에 속도를 내려던 계획이 물거품이 될지 모른다. 네이버는 야후재팬과 손잡을 때 커머스·콘텐츠·광고·AI 등 다양한 분야에서 시너지를 기대했다. 또 라인은 대만, 태국, 인도네시아 등에서 이용자 약 2억 명을 확보하며 국민 메신저 지위를 얻었다.

뒤집어 보면 일본 정부 뜻대로 소프트뱅크가 A홀딩스의 지분을 더 많이 보유하면 네이버가 쌓은 공든 탑이 고스란히 일본 손에 넘어갈지 모른다. 소비자주권시민회의가 "한국 기업을 향한 약탈" "형평성과 한일 상호 관계 위배"라며 반발한 이유다.

네이버는 소프트뱅크와 지분 조정 등을 논의 중이다. 최수연 대표는 "중장기적 사업 전략에 따라 결정할 문제"라고 했다. 그만큼 고민이 깊다는 뜻. 업계 관계자나 전문가들은 일본 정부가 압박 강도를 높이는데 개별 한국 기업이 견디기 쉽지 않으니 한국 정부가 나서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일본에 진출하려는 정보기술(IT) 기업들, 특히 중소기업에 이번 라인 사태는 중요한 참고 사례가 될 것이다. 일본이 얌체같이 구는데도 한국 정부가 못 본 척한다면 어느 누가 자신 있게 나서겠는가.

박상준 산업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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