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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비로 北 주민 홀리는 김정은, 백두혈통의 힘겨운 홀로서기[문지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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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화'문'과 삼각'지'의 중구난'방' 뒷이야기. 딱딱한 외교안보 이슈의 문턱을 낮춰 풀어드립니다.
“북한이 만든 다른 영상과 비교하면 수준 차이가 확연합니다. 여전히 우리 기술보다는 떨어지지만, 북한이 만든 영상치고는 화려하고 세련돼 보이려고 노력한 티가 확실히 납니다. 특히 4K 화질로 제작한 점이 새로운 부분입니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찬양곡 ‘친절한 어버이’ 뮤직비디오를 본 한국일보 PD의 평가입니다. 지난달 16일 ‘북한판 뉴타운’으로 불리는 평양 화성지구 2단계 살림집 준공식에서 고화질 전광판을 통해 처음 공개된 이 뮤직비디오엔 이처럼 북한의 기술력과 연출력을 ‘영끌’해 만든 티가 역력했습니다. 전광판 위편엔 노래방처럼 ‘실시간 가사'를 제공해 처음 듣는 이들이 모두 따라 하도록 연출된 점도 특징입니다.
뮤직비디오를 한 장면씩 뜯어보면 과도한 연출의 집합체였습니다. 학생들은 김정은에게 매달리며 환호하고, 김정은은 청년과 군인들을 ‘와락’ 끌어안습니다. 고려항공 승무원들은 활주로에서 비행기를 배경으로, 의사들은 수술실에 모여 엄지를 치켜듭니다. 열정의 군인 오케스트라, 우승컵을 들어 올리는 북한 여자축구대표팀을 담은 장면으로 역동성을 부여했습니다. 김정은의 초상화로 ‘영끌’ 뮤직비디오는 끝을 맺죠.
북한은 화려한 조명으로 밤을 밝힌 건물을 부각시키고, 축하공연까지 개최하며 축제 분위기를 연출했습니다. 그 하이라이트로 뮤직비디오를 공개하면서 안팎의 비상한 관심을 모았죠. 김정은과 딸 김주애가 함께 등장하는 장면의 배경에는 선대인 김일성과 김정일 동상이 노출돼 있어 ‘백두혈통’을 이어갈 차세대 주자가 자신의 딸이라는 점도 강조한 모습입니다.
북한이 새로 내놓은 이 노래는 ‘선대 지우기’에 나섰다는 점을 알리는 행보라는 게 전문가들의 중론입니다. 선전가요 효과는 선대에서부터 꾸준히 경험해 온 터라 김정은이 자신의 체제 공고화를 위한 노력을 본격화하면서 부친 김정일의 ‘친근한 이름’을 따라 한 찬양 노래부터 띄웠을 거란 분석입니다. 이날 김류경이 부른 이 노래 가사엔 “노래하자 김정은 위대하신 령도자(영도자)/ 자랑하자 김정은 친근한 어버이” 등의 가사가 반복되며 노골적으로 ‘우상화’를 유도하고 있으니까요.
친근한 이름은 2021년 광명성절(김정일 생일) 기념음악회에서 김정은이 직접 앵콜 2회를 신청하고 세 차례나 돌려 들었을 정도로 사랑했던 곡으로 “노래하자 김정일 우리의 지도자/ 자랑하자 김정일 친근한 이름“ 등의 가사가 등장합니다.
김정은은 올해 들어 할아버지 김일성, 아버지 김정일의 후광에서 벗어나기 위한 ‘홀로서기’ 행보에 집중하고 있습니다. 가장 대표적인 사례는 김일성 생일인 4월 15일을 일컫던 ‘태양절’ 명칭 사용을 확 줄인 움직임입니다.
연초부터 북한 매체에서 태양절을 ‘4월의 명절’이나 ‘4·15’ 등으로 표현하면서 명칭 폐기 조짐이 있었는데, 최근엔 북한 관광을 전문으로 하는 중국 여행사 고려투어가 홈페이지에 “북한에서 ‘태양절’이 더 이상 사용되지 않는다”고 밝히면서 ‘태양절 명칭 폐기설’에 대한 설득력은 한층 높아졌습니다.
‘친근한 어버이’가 발표된 화성지구 2단계 살림집 준공식 기념공연에서 나온 북한 애국가 가사에서도 자신만의 체제 확립을 위한 변화 의지가 묻어납니다. ‘삼천리’를 빼는 대신 ‘이 세상’이라는 가사를 집어넣은 점이 확인되면서 선대가 강조했던 민족 정신 등을 지워버렸다는 평가가 나옵니다.
강동완 동아대 교수는 애국가 가사 변경과 관련해 “김정은이 삼천리, 동포, 민족의 개념을 삭제하라고 지시한 이후 벌어진 조치로, 공연을 통해 공식적으로 선포하는 형식을 취했다는 점이 중요하다”고 분석했습니다. 또 애국가는 북한의 주요 행사나 음악공연이 시작되기 전에 공식 의례로 연주되는데, 이번 준공식 때는 행사 시작 전은 물론, 축하기념공연 중간에 애국가를 한 번 더 부름으로써 가사가 바뀐 점을 또 한 번 강조한 것이라는 게 강 교수 분석입니다.
한발 더 나아가 북한이 곡을 발표한 무대인 화성지구 준공식은 그 자체로 김정은의 인기를 뽐내고 그에 대한 충성도를 과시하려는 행사입니다. 평양에 높은 건물과 넓은 도로를 만들고 조명에 아낌없이 전기를 끌어다 쓰며 북한 일반 주민들의 실상과는 거리가 먼 장면들로 가득 차 있으니까요. 양무진 북한대학원대 교수는 대대적인 살림집 늘리기에 대해 "자신에게 충성하는 지도층과 건설노동자 등에 대한 김정은의 보상”이라며 “행사를 성대하게 연 건 김정은표 내치에 대한 기대감을 높이고 주민들 마음을 얻기 위한 노력의 일환일 것”이라고 분석했습니다.
다만 속 보이는 선전전을 통해 지배체제를 공고히 하려는 김정은 의도대로 진행될지는 좀 더 두고 봐야 한다는 신중론이 적지 않습니다. 북한이 잔뜩 웅크린 채 주민들과 외부 세계의 접촉을 통제하고 있지만, 김정은 체제가 언제까지 고립무원으로 남을 수는 없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북한이 한국 문화를 배척하며 주민들을 옥죄는 것이 대표적입니다. 그만큼 위기의식이 고조되고 있는 셈이니까요.
아이러니하게도 ‘친근한 어버이’ 뮤직비디오에서 오케스트라 지휘자는 일본의 ‘소니(SONY)’ 헤드셋을 착용하고 있습니다. 북한 체제가 우월하다면 북한산 장비가 등장해야 할 텐데 말이죠. 이를 바라보는 주민들은 어떻게 생각할까요. 눈 가리고 아웅이라고 여기지 않을까요.
무엇보다 김정은의 출생과 관련한 치명적 약점이 훗날 부메랑이 돼 그를 겨눌 수도 있습니다. 김일성 생일인 태양절의 의미를 애써 축소하는 과정에서 김정은 본인의 생일(1월 8일)마저 드러내지 않기 때문인데요. 이를 놓고 온갖 억측과 뒷말이 나오고 있습니다. 정부 관계자는 “김정은이 자신의 생일을 드러내지 않는 건 재일교포 모친이 언급되는 걸 피하기 위해서라는 분석이 많다”며 이는 “백두혈통을 찬양해 온 북한 주민들에겐 김정은이 이전 지도자에 비해 장악력이 떨어지는 요인이 될 가능성도 있다”고 평가했습니다.
1984년생인 김정은도 올해 어느덧 불혹(不惑·40세)입니다. 세상 유혹에 빠지지 않는다는 나이가 된 것이죠. 13년 전 숨진 부친 김정일의 뒤를 이어 20대 나이로 북한의 지도자가 된 그가, 40대로 접어든 올해부터 본격적인 홀로서기에 나서기로 단단히 마음먹은 듯합니다. 대외환경이 역동적으로 변하는 시대적 흐름 속에서 유아독존의 길을 택한 김정은입니다. 누구도 넘볼 수 없는 존재감을 확립하고 주민들의 살림살이를 넉넉하게 해야 하는 '쌍끌이' 과업을 성공적으로 해내지 못한다면 미래를 장담할 수 없지요. 힘겹고 아슬아슬해 보이는 그의 발걸음이 어디를 향해 어떻게 나아갈지 지켜볼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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