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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서비스원 폐지와 돌봄노동의 가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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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주 수요일과 금요일 선보이는 칼럼 '메아리'는 <한국일보> 논설위원과 편집국 데스크들의 울림 큰 생각을 담았습니다.
지난주 서울시의회가 공공돌봄기관인 서울시사회서비스원(서사원)을 폐지하는 조례를 통과시켰다. '정부주도 사회서비스 관리'라는 문재인 정부의 국정과제에 맞춰 2019년 세워졌던 서사원은 이로써 5년 만에 사라진다. 2022년 국민의힘은 시의회 다수당이 되자 일찍부터 사회서비스원 고사작전을 펼쳤다. 예산 210억 원 가운데 142억 원을 삭감했고 국공립 어린이집 위탁운영 중단, 통합재가센터의 통폐합 등 강경하게 축소작업을 밀어붙였다.
사회서비스원은 ‘돌봄서비스 제공의 과다한 민간 의존’이라는 사회복지전달체계의 오랜 병폐에 대한 해결책을 모색하려 설립된 기관이다. 우리나라 사회복지시설의 운영주체는 영리 추구형 민간시설이 압도적이다. 돌봄노동종사자는 저임금에 시달리고 돌봄노동의 질 또한 낮다. 잊을 만하면 노인요양시설이나 어린이집에서 학대 논란이 불거지는 건 그곳에서 일하는 돌봄노동자들의 열악한 처우 문제와 별개로 생각할 수 없다. 저임금 일자리라는 낙인이 찍힌 종사자들에게 돌봄의 주(主) 대상인 아동, 노인, 장애인에게 섬세하고 친절한 돌봄을 제공해 달라고 기대할 수 있을까. 전문가들이 국제노동기구(ILO)나 유럽연합(EU) 등이 제시한 ‘좋은 일자리(decent work)’ 모델을 거론하면서 사회보험 적용, 경력과 숙련 인정, 저임금 해소 등 돌봄노동자의 처우 개선을 권고하는 이유다.
2년 전 전국의 사회서비스원 종사자 4,059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를 되돌아보면 곱씹어 볼 대목이 있다. 당시 임금에 대한 응답자들의 불만족도는 높은 편(50.6%)이었지만 민간에 비해 직장 만족도가 좋은 편이라는 비율(42%)이 그렇지 않은 편이라고 한 비율(29.6%)보다 높았다. 서비스 질도 민간보다 좋은 편(52.9%)이라는 응답이 나쁜 편(14.6%)보다 높았다(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예산을 적극적으로 투입해 종사자의 처우 개선과 서비스 질 제고 노력을 병행했다면 사회서비스원이 ‘나쁜 일자리’라는 돌봄노동에 찍힌 낙인을 지우고 종사자와 수요자가 모두 만족할 수 있는 일자리로 발전시킬 수 있는 마중물이 될 수도 있었다는 얘기다.
문제는 오랫동안 돌봄노동에 제대로 값을 치러본 경험이 없는 국민들의 정서를 일부 정치인이 교묘히 파고들었다는 점이다. 오세훈 서울시장이 원장을 바꾼 뒤 서사원은 종사자들을 향해 ‘서사원 돌봄노동자의 임금이 민간보다 훨씬 높게 책정돼 있다’, ‘정규직 월급제로 고용돼 고용불안∙생계불안에 시달릴 필요가 없다. 돌봄 업계의 삼성’이라는 식으로 비난했다. 당시 서사원 노동자들이 월평균 220만 원 정도를 받아 민간시설에 비해 2배 이상 받는다고 제시했는데 사실관계가 명확하지 않다. 하지만 어떻게 계산해도 이들이 저임금 불안정 노동자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결국 돌봄노동은 싼값에 부려 먹을 수 있는 민간 영역에 맡기라는 주장이나 다름없지 않은가. 돌봄서비스를 민간이 전담했을 때 수십 년간의 폐해를 알고도 모른 척하는 것인지 아니면 경쟁 정당의 정책에 대한 정치적 보복인지 알 길이 없다.
국민의힘이 다수당인 시의회는 물론이고 오 시장 역시 ‘한국 육아도우미는 200만~300만 원이 드는데 싱가포르는 38만~76만 원 수준’이라며 저임금 외국인가사도우미 도입에 앞장서 왔다는 점을 감안하면 서울에서 돌봄노동 제 몫 찾아주기, 돌봄노동 공공화의 길은 험난해 보인다. 양질의 저렴한 돌봄노동서비스를 원하는 수요자와 돌봄노동종사자의 노동조건 개선이라는 충돌하는 가치 앞에서, 새로운 보수를 내세운 오 시장의 전향적 해결책을 기대한다. 우선 시의회 서비스원 폐지 조례안에 대한 거부권 행사로 보여줬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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