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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주 수요일과 금요일 선보이는 칼럼 '메아리'는 <한국일보> 논설위원과 편집국 데스크들의 울림 큰 생각을 담았습니다.
경험적으로 더불어민주당은 총선 승리를 경계해야 한다. 과거 과반 의석을 얻어 국회를 장악한 이후 치러진 대선에서 한결같이 패배한 경험이 있기 때문이다. 열린우리당 시절인 2004년 17대 총선에서 152석을 얻었으나 3년 뒤 치른 대선에서 패했고, 2020년 21대 총선에서도 180석을 차지하는 압승을 거뒀지만 2년 뒤 정권을 내줬다.
민주당의 180석은 총선 역사상 특정 정당이 얻은 최다 의석이었기 때문에 당시 임기 후반기에 접어들었던 문재인 정부엔 “레임덕 없는 사상 첫 정권이 될 것”이라는 장밋빛 전망이 쏟아졌다. 게다가 문재인 대통령은 임기 말에도 40%대의 지지율을 유지했다. 임기 말 지지율로는 역대 대통령 중 가장 높은 수치였다. 그런데도 정작 유권자들은 다음 대선에서 정권교체를 선택했다.
마치 롤러코스터 같은 선거 결과는 민심이 결코 단순하지 않다는 것을 보여준다. 2022년 대선에 이어 지방선거마저 패한 민주당은 그해 8월 패배 원인과 대안을 분석한 미래비전보고서를 만들었다.
비공개 보고서의 결론은 이렇다. 3,000명의 유권자를 설문조사해 보니 보수·진보의 이분법으로 성향을 나누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했다. 이를테면 ‘경제성장에 대한 국가의 역할을 인정하지만 환경 이슈에선 진보적이며, 노동운동과 검찰개혁에 강한 반감을 보이는 그룹’, ‘시장·국가의 기득권에 비판적이면서도 성평등·소수자 우대에는 반감을 보이는 그룹’ 등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보고서는 개별 이슈에 대한 선별적 선호에 따라 6개 그룹으로 유권자의 성향이 드러난다고 분석했다.
이런 유권자 지형에선 막연한 무당층 공략이나 일률적인 좌클릭·우클릭 행보는 의미가 없어진다. 보고서는 선과 악 양자 대결에서 영웅적 후보가 적진을 돌파하고, 열성 지지자들이 함께 돌팔매질했던 과거 대통령선거의 양상이 판이하게 바뀔 것이라 내다봤다. 수없이 잘게 쪼개진 사회 이슈들을 세심하게 묶고 풀어헤치며 다양한 그룹을 설득하는 방식으로 핵심 지지층을 확장해야 승리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보고서에는 특권 내려놓기, 세대교체 등 변화에 취약한 모습이 민주당의 약점으로 지적됐다. 때로는 ‘싸움을 위한 싸움’ 대신 좋은 정책을 위한 초당적 협력이 필요하고, 다양한 당내 의견을 포용할 수 있어야 한다는 민주당 지지자들의 의견도 담겼다.
꽤 훌륭한 ‘오답노트’라고 여겨지는데, 이번 총선 과정에 보고서가 지적한 내용들이 적용됐는지는 의문이다. 여전히 상대를 악마화하는 선악구도, 강성 지지층을 의식한 혐오 발언, 당내 비주류를 대거 탈락시킨 공천 과정의 논란…. 그래도 이번 총선에서 175석을 얻었으니 문제없다고 생각한다면 할 말은 없다.
보고서가 틀렸을 수 있고, 그사이 유권자 지형이 달라졌을 수도 있겠다. 하지만 민주당이 잘해서 이긴 것인지, 민심을 잃은 대통령과 여당의 실책 덕을 본 것인지 꼼꼼한 평가가 필요하다.
이번 선거에서 민주당은 지역구 의석의 63.39%를 얻었지만, 전체 지역구 득표율은 50.48%로 국민의힘에 5.40%포인트 앞섰을 뿐이다. 지난 대선에서 윤석열 대통령과 이재명 대표의 득표율 격차는 0.73%포인트에 불과했다.
대선은 총선과 다른 차원의 총력전이다. 양 진영의 핵심 지지층이 결집한 가운데 부동·무당층으로 표현되는 5~10% 유권자의 선택이 승부를 좌우한다. 그런데 총선 승리 이후 민주당에선 국회의장 경선, 이 대표의 연임 여부를 두고 벌써부터 강성 지지층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이런 분위기가 지지층 확장에 도움이 될지, 이를 지켜보는 부동·무당층이 어떤 선택을 할지 민주당은 냉철하게 분석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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