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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대한항공 여객기 소련 무르만스크 강제 착륙(사진·19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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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매일, 시시각각 한국일보 플랫폼은 경쟁매체 보다 빠르고 깊은 뉴스와 정보를 생산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1954년 창간 이래 역사의 물줄기를 바꾸거나 국민적 감동을 이끌어낸 수많은 특종이 발굴됐다. 지난 70년 다수의 특종과 사건 중 파장이 컸던 내용들을 연도별로 안배해 ‘70대 특종’을 골라내 뉴스 이용자들에게 소개한다.
1978년 4월 21일 대한항공 보잉 707 여객기가 소련 영공에 들어가는 바람에, 소련 전투기의 총격을 받아 무르만스크에 강제 착륙한 사건이 발생했다.
당시 한국일보 기사에 따르면 4월 20일 밤 파리를 출발한 대한항공 여객기는 미국 알래스카 앵커리지를 경유해 서울에 도착할 예정이었다. 그러나 21일 새벽 1시 50분께 북극권에 들어선 뒤, 갑자기 항로를 이탈한 것으로 추정된다. 지금처럼 첨단 항법시스템이 갖춰지지 않은 상태에서 대한항공 902편 여객기는 자북극의 영향에 따른 항법장치의 오작동으로 영공을 침범했고 카렐리야 자치 공화국 상공에서 소련 전투기의 총격을 받았다. 조종사와 항법사가 항로를 놓고 의견 대립이 있었다는 일부 주장도 있다.
소련 전투기 총격으로 기체가 파손되면서 승객 2명이 숨지고 2명이 부상했지만, 기체가 무참히 추락해 승객 전원이 사망하는 비극은 일어나지 않았다. 김창규 기장이 모든 악조건을 뚫고 무르만스크의 얼어붙은 호수에 비상 착륙하는 데 성공했기 때문이다. 역대 전 세계 민항기 추락 사고 중에서 인명 피해 없이 불시착에 성공한 극히 드문 사례다. 이후 당시 소련군도 민항기 조종사의 환상적 기동에 주목했다는 자료가 발견되기도 했다.
한국일보는 국내 언론 중 이 사고에 가장 빠르고 정확하게 대응했다. 승객 송환 상황 등을 속보하기 위해 파리에 머물던 박실 기자, 한국에서는 이성준 기자가 핀란드 헬싱키로 급파됐다. 또 미국 LA지사에서도 민병용, 김영석 기자가 현지 취재팀에 합류했다.
기자협회 업무 때문에 유럽 출장 중이던 박 기자는 한국 기자 가운데 가장 먼저 헬싱키에 도착, 소련에서 송환된 승객들의 증언과 사진을 입수할 수 있었다. 박 기자는 그의 회고록 ‘소중한 만남이었소’에서 당시 상황을 이렇게 설명했다. “외무부를 출입했던 때 알고 지낸 헬싱키 주재 윤경도 대사의 협조를 받아 귀환하는 우리나라 승객들을 무난히 대면했다. 소련에 머무는 사이에 있었던 식당 풍경과 캠 마을 어린이병원 등에서 찍은 사진들을 입수하여 특종(25일 자) 보도할 수 있었다.”
박 기자가 입수한 이 사진은 한국인 승객이 소련에서 찍은 유일한 사진이었다. 또 비상착륙 직후 캠 마을로 옮겨진 다음에는 한국 승객들이 소련 당국으로부터 나름 적절한 대우를 받은 상황을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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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공 최후의 새벽(197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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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일보 등반대, 에베레스트 등정 성공(197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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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항공 여객기 소련 무르만스크 강제착륙 (사진·197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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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H사건(1979) |
15 | 最古(최고)의 태극기를 찾았다(197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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