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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 손흥민 토트넘 초기, 형언할 수 없이 괴로워... 그때 붙든 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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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처럼 경기 투입 안 돼 이적까지 추진…
괴로울 때마다 기도하듯 책 붙들며 버텨”
“아들 때문에 내 인생 희생? 나도 성장했다”
“예순은 마법의 나이, 내 전성기는 앞으로다”
손웅정(62) SON축구아카데미 감독은 “나에게 축구를 빼고 남는 건 단 한 가지, 책 읽기”라고 한 적이 있다(책 ‘모든 것은 기본에서 시작한다’).
어린 시절부터 있던 책을 향한 목마름, ‘운동선수는 무식하다’는 세상의 편견을 그는 독서로 해소했다. 그러던 책 읽기는 나중엔 그가 인생에서 고비를 맞닥뜨릴 때마다 버팀목이자 무기가 돼줬다.
-책을 두고 ‘절실한 생존의 도구’라고 말씀하신 게 인상적이었어요.
“나는 100% 책의 혜택을 받은 사람이거든요. 미래를 여는 키는 바로 책을 든 손이라고 생각해요. 미래엔 책을 두 권 읽은 사람이 한 권 읽은 사람을 지배하며 사는 시대가 올 거예요.”
-그렇게 절실하게 책을 붙들 정도로 힘들었던 때가 언제였나요.
“흥민이가 프리미어리그에 간 이듬해(2016년)였어요. 당시 (토트넘 홋스퍼의) 포체티노 감독이 경기에 투입을 안 해서 이적하겠다고까지 했죠. 실제 이적하는 것까지 다 얘기를 해놨어요. 그런데 보내지도 않으면서 경기엔 뛰게 하지 않는 거예요. 그때가 너무 힘들었어요. 한번은 그 힘든 걸 이기기 위해서 네 시간 동안 같은 자리에서 책 한 권을 다 읽었던 기억이 나요.”
-뭐에 관한 책이었나요.
“그건 기억이 나지 않아요.”
-그 책이어서가 아니라 책을 읽어야 해서 읽었던 거네요.
“맞아요. 이길 수 있는 방법이 없었거든요. 내가 술을 마시거나 담배를 피우지 않으니까. 그런 몸에 해로운 일로 힘든 상황을 극복한 적도 없고요. 그건 잠시 심리적으로 도피하는 거잖아요. 그때 거실 바닥에 앉아서 소파에 등을 대고 네 시간 동안 책을 읽었어요. 나중에 일어나려는데 몸이 굳어서 목을 숙일 수가 없더라고요. 그 기억이 너무나 생생해요.”
-너무 괴로워서 붙든 게 책이었군요.
“맞아요. 뭘 어떻게 할 수 없는 상황이었으니까요.”
-그렇게 책을 읽고 나니 뭐가 달라졌나요.
“일단 흥분 상태를 가라앉히고 냉정을 되찾았죠. 그 시기엔 힘들 때마다 책을 들었어요.”
-기도 같은 거였네요.
“그렇죠. 힘들 때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책 읽는 거 아니면 운동이니까요.”
-얼마나 힘들었기에 그랬나요.
“정말... 말로 형용할 수 없는 고통이었죠. 저는 지금도 흥민이한테 얘기하거든요. ‘흥민아, 아빠는 너 축구 처음 시작한다고 할 때 너하고 축구만 봤어. 나는 지금도 그래.’ 연봉이고 뭐고 지금도 저는 그런 거 알지도 못하고 관심도 없어요. 배우는 무대 위에 있어야 행복하고, 축구 선수는 운동장에 있어야 행복한 거죠. 그런데 그땐 그럴 수 없는 상황이었죠.”
당시 포체티노 감독은 손 선수를 좀처럼 주전으로 기용하지 않았다. 심지어 승부가 결정된 후반 44분에 교체 투입하기도 했다. 대신 손 선수와 같은 포지션(날개 공격수)인 에릭 라멜라가 선발로 출전하곤 했다. 팬들 사이에선 “감독이 자신과 같은 아르헨티나 출신이라서 선호하는 것”이라는 불만이 나왔다. 손 선수는 한 인터뷰에서 당시를 회상하며 “그때 거의 토트넘을 떠날 뻔했다. 포체티노 감독한테 여기가 편안하지 않아 독일로 돌아가고 싶다고 하기도 했다”고 밝혔다.
-뛸 수 없다는 고통이 그만큼 큰 거군요.
“저는 그래요. 흥민이가 독일에 있든, 영국에 있든 그 팀에서 선발로 들어가서 경기를 하는 게 중요해요. 연봉은 덜 받아도 경기를 해야 선수는 발전하고 성장하거든요. 성공이 먼저가 아니에요. 돈은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해서 어떤 수준에 오르면 자연스레 따를 수도 있죠. 저는 찢어지게 가난한 환경에서 자랐고 지금도 돈이 없지만, 돈이 인생에서 첫째인 적은 없어요.”
-손흥민 선수를 두고 ‘책을 좋아하는 축구선수’가 되길 바란다고 하신 적이 있죠.
“그래서 좋은 책은 밑줄을 그어서 주기도 했죠. 애들이 다 크고 나선 잔소리하기 싫어서 지인들하고 함께 있을 때 넌지시 알아두면 좋을 책의 내용을 말하기도 했고요. 나중에 흥민이가 인터뷰할 때 말하는 걸 보곤 ‘아, 그때 그 내용이 마음에 남았나 보구나’ 싶더라고요.”
-축구를 가르쳐달라고 한 건 둘째인 손흥민 선수가 먼저였나요.
“초등학교 2학년 말쯤이었죠. 그때는 제가 여러 곳을 다니면서 축구교실을 할 때였어요. 그전에도 따라와서 하긴 했는데, 본격적으로 해보겠다고 한 건 3학년 시작하면서였어요. 첫째(손흥윤 SON축구아카데미 수석코치)는 시기적으로 좀 늦게 시작하기도 했고, 잠재력도 첫째보다는 둘째(손흥민 선수)가 확실히 나았죠.”
-‘축구가 무지하게 힘든데 그래도 할 거냐’고 세 번 다짐을 받고 시작했다고요.
“맞아요.”
-나중엔 아예 독일로 함께 가서 손흥민 선수 뒷바라지를 했으니 큰아들에게는 미안한 마음이 있었을 것 같아요.
“큰아이한테는 ‘만약 축구가 여기까지라고 생각하면 중간에 그만둬도 된다. 그런데 무엇이든 네가 좋아하는 걸 하면서 살아라. 행복하게, 네 삶을 사는 게 중요해. 그리고 네 뒤에는 아빠가 있어’라고 해주곤 했죠.”
-인터뷰를 보니 손 선수가 “내게 아버지는 축구 선배이자, 친구, 스승이다. 아버지는 모든 점이 완벽한 사람이다”라고 한 적이 있더라고요.
“(한참 미소를 지은 채 쉽게 입을 떼지 못하더니) 흥민이가 그렇게 말한 건, 지금 처음 들었는데요. 그저 항상 부지런하게 살려고 노력했죠. ‘오늘 대충대충 설렁설렁 살면 내일은 병든 열매밖에 못 건진다’는 생각으로요. 시간이 뭐겠어요. 인생의 자본금이잖아요. 저는 솔선수범도, 근검절약도 다 대물림된다고 생각해요. 부모가 TV를 보면서 혹은 휴대폰을 보면서 자식한테만 책을 보라고 하면 되겠어요.”
-손 선수가 이런 말도 했더라고요. “아버지는 나를 위해 자신의 인생을 포기했다”고.
“그 아이는 그렇게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저는 아니에요. 흥민이가 성장하는 시간이었지만, 나도 성장한 시간이었어요. 그건 희생이 아니에요. 부모가 할 일을 한 거죠.”
그러더니 그는 활짝 웃으며 이렇게 말했다. “저는 요즘 주변에 ‘내 나이 환갑을 넘었지만, 지금부터가 기적의 나이고 내 전성기야’라고 해요. 하하.”
그 전성기, ‘손웅정만의 시간’은 아마 첫 책을 출간한 2021년 10월부터일 테다. 그는 한국에 머무를 땐 SON축구아카데미의 감독뿐 아니라 저자로서 사인회나 강연회도 다닌다.
-그런 인생을 담은 첫 책 ‘모든 것은 기본에서 시작된다’를 내고 나서 많은 것이 바뀌었죠.
“사인회도 다니고 그러는데요. 한 분 한 분이 그렇게 소중하더라고요. 얼마나 감사한가요. 저는 지방에 내려갔다가 다음 날 새벽에 올라오더라도 오신 분들 모두를 만나고 사인을 해드려요.”
그의 사인은 독특하다. 부친이 지어주신 이름인 클 웅에, 바를 정을 한자 약자로 적은 것이다. 사인도, 사인을 하는 모습도 바람 같다. 옆에서 보면 휙, 휙 소리가 난다.
-사인은 언제 만들었나요.
“첫 책 나오기 직전에 만들었어요. 워낙 간결해서 그 속도감이 좋다고들 하시더라고요. 에너지가 넘친다고요.”
-사인회나 강연에서 독자들을 대면하면 어떤가요.
“감사하다는 생각밖에 없어요. 첫 책을 낼 때 단 한 분한테라도 긍정적인 메시지가 전달되면 좋겠다고 생각했거든요. 두 번째 책도 마찬가지예요. 거기다 부디 출판사에 폐 끼치지 않게 되기를 바랍니다.”
-2021년 말 이후에 오롯한 ‘손웅정의 시간’이 시작됐을 것 같아요.
“나이에 따라 자식하고 거리를 유지해야 하는 게 또 부모더라고요. 이제 아이들은 그들의 삶을, 저는 저의 삶을 살아야 하는 시기죠.”
그는 손흥민 선수가 번 돈에도 철저히 선을 긋는다. “자식이 번 돈을 가져다 쓰면 자식에게 떳떳할 수 있겠는가”란 생각에서다(‘모든 것은 기본에서 시작한다’). 맏아들인 손흥윤 수석코치가 가정을 이룬 뒤엔 아들 내외의 집으로 가는 일도 없다. 식사를 할 일이 있다면 식당에서, 만날 일이 있어도 밖에서 만나는 게 그의 원칙이다.
-그럼에도 손흥민 선수에게 조언을 해줄 때가 있을 텐데요.
“경기가 좋았던 날은 아무 말도 안 해요. 하지만 경기가 힘들었던 날은 올 때까지 기다렸다가 안아주죠. 그러곤 말해줘요. ‘산 개가 죽은 사자보다 낫다고 했어. 안 다쳤으면 됐다. 다음 경기를 하면 되잖아. 경기가 매번 좋을 수는 없어. 괜찮아.’”
지난 13일(한국시간) 열린 토트넘과 뉴캐슬과의 경기가 그랬다. 토트넘이 원정에서 홈팀인 뉴캐슬에 0 대 4로 패했다. 전화를 해 아들에게 말했다. “경기가 항상 좋을 수는 없어. 우리 인생하고 똑같아. 좋아서 시작한 축구잖아. 경기가 좀 안 좋아도 행복한 마음은 유지했으면 좋겠어. 뭣보다 안 다쳤으면 됐다.”
손 감독은 말했다. “아마 흥민이도 아버지가 된다면 제 말의 뜻을 알겠죠. 자식이 건강하고 행복하게 사는 걸 보는 게 부모가 가장 바라는 일이란 걸요.”
-SON축구아카데미에서 훈련이 끝나면 일일이 유소년 선수들을 안아주시는 걸 봤어요.
“독일에 있을 때 한국에 돌아오면 아이들이 저를 기다리고 있더라고요. 만나면 반가우니까 안아주기 시작했죠. 훈련이 참 혹독한데도 끝나면 아이들이 우르르 제 앞으로 와요. 안아달라고. (미소)”
-포옹의 힘은 뭘까요.
“한 번의 시범이 백 번의 설명보다 낫다고 하잖아요. 백 마디 말보다 따뜻한 허그 한 번이 엄청난 메시지를 전한다고 생각해요.”
2019년 유럽축구연맹 챔피언스리그 결승전 직후 그와 아들의 포옹도 많은 이들이 기억하는 장면이다. 토트넘은 리버풀에 패해 준우승에 머물러야 했다. 경기가 끝난 뒤 어깨가 축 처진 손흥민 선수가 관중석의 아버지를 보곤 펜스를 넘어 다가왔다. 손 감독은 아들을 끌어안았다.
-그때 뭐라고 해주셨나요.
“’흥민아, 괜찮아. 안 다쳤잖아.’ 그러곤 말없이 안아줬죠.”
-그 시간이 8초쯤 되더라고요.
“그 정도는 돼야 심리적으로 전달이 되고, 마음도 회복될 테니까요.”
-만약 부상을 입으면 아버지 마음도 아프실 것 같아요.
“아이고, 스포츠에서 부상은 피할 수 없는걸요. 다치면 ‘그간 과속으로 달려왔다. 넘어진 김에 쉬어가자’ 그래요.”
-올해 열린 ‘2023 카타르 아시안컵’에선 경기장 밖에서 부상한 일이 발생했어요. 당시 국가대표팀 선수 간에 다툼이 있어서 크게 보도가 됐는데, 당시엔 손 선수에게 조언은 안 하셨나요.
“그런 일엔 절대 나서지 않아요. 내가 간섭할 일이 아니죠.”
-그 사건으로 감독님 눈에 보인 문제가 있었을 것 같은데요.
“실력은 겸손에서 나오고 교만은 무지에서 나오죠. 어떤 분야든 최고에 오른 사람들은 그런 점을 기억하고 더 예민하게 관리해야 하지 않나 싶어요. 태극마크가 무슨 의미겠어요. 태극마크에 오천만 국민의 얼굴이 다 있는 거잖아요. 축구 시작할 때 다들 왼쪽 가슴에 태극마크 다는 게 꿈이었잖아요. 그 의미와 무게를 늘 기억해야죠.”
-요즘은 어떤 분야의 책에 빠져 계신가요.
“노후에 관한 책을 읽기 시작한 게 7년쯤 됐어요. 이제 후반생을 준비해야지요.”
-‘손웅정이 정의하는 행복’은 뭘까 궁금해요.
“감사하는 순간 행복하죠. 행복은 감사하는 자의 것이에요.”
-그럼 ‘손웅정이 정의하는 실패’는요.
“개구리에 빗대어 말하면 움츠린 상태죠. 멀리 뛰어나가려고요.”
-“앞으로가 전성기”라고 하셨어요.
“책을 읽으면서 성장할 내 미래가 기대되죠. 나이 칠십이 되든, 팔십이 되든 걷고 뛸 수 있는 한 우리 아카데미(SON축구아카데미) 학생들을 가르칠 거예요. 내가 무슨 덕을 보려고 그러는 게 아니에요. 유소년 선수들과 훈련하면서 내가 원하는 축구 색깔을 내보는 게 꿈이에요. 골을 넣어서 상대를 이기는 게 중요한 축구가 아니라 골을 넣으러 가기까지 과정, 그 경기장에서 나의 축구 색깔을 꼭 내보고 싶어요.”
그는 상상만 해도 좋은 듯 얼굴이 상기되기까지 했다. “책을 사면 ‘이 책엔 어떤 메시지가 들어있을까’ 호기심이 차오른다”고 말할 때와 같은 표정이었다. “내 삶을 지탱해 온 두 축, 축구와 독서.” 과연 눈빛에서, 낯빛에서 그걸 느낄 수 있었다.
그의 두 책을 읽으면 ‘어떻게 이렇게 살지’ 싶은 생각이 든다. 새벽 세 시 반이면 알람 없이도 눈을 떠 청소와 운동으로 하루를 시작한다. 틈이 나는 대로 책을 읽는다. 두 아들과 축구 훈련을 할 땐 자신의 운동량이 더 많았다. 그러니 아들들이 게으름을 피울 수가. 손흥민 선수는 10대 시절 방송 인터뷰에서 “아빠의 몸을 갖고 싶다”고 했다. 손 감독은 지금도 그 몸을 유지하고 있다.
아들이 있는 영국에 머물 때나, 한국에 있을 때나 24인치 캐리어 하나가 다 차지 않을 정도의 짐이 소지품의 전부다. 운동장에 있을 땐 그의 선수 시절 별명처럼 스라소니 같지만, 실제 만난 그는 미소에 박하지 않았다. 처음 눈을 마주치자마자 ‘90도 인사’를 하는 건 또 어떤가. 인터뷰 도중 직원이 물을 가져다 줄 땐 말을 하다가도 두 손으로 받고 “감사합니다”라며 고개를 숙였다. ‘미소’와 ‘겸손’은, 그가 손 선수에게 누누이 강조해 온 삶의 원칙 중 하나다.
‘체하는 것’은 또 못 견딘다. ‘나는 읽고 쓰고 버린다’는 인터뷰 형식이다. 애초엔 두 권 분량이었다. 그런데 거의 절반을 손 감독이 들어냈다. “잘난 체하진 않았는지, 아는 체하진 않았는지” 보고 또 보고 빼고 또 뺀 것이다. 김민정 난다 대표는 “조금이라도 자신이 훌륭하게 비칠 것 같은 부분은 빼시는 것 같았다. 감독님 생각에 설득당하기도 하고 내 뜻을 관철시키기도 하면서 합일점을 찾아나갔다”고 말했다.
‘나는 읽고 쓰고 버린다’엔 그가 독서노트에 적어둔 명언이 챕터마다 인용돼있다. 그중 유일하게 책이 아닌 영화에서 따온 것이 있다. 영화 ‘이보다 더 좋을 순 없다’ 속 명대사다. “당신이 나를 더 좋은 사람이 되고 싶게 했어요.”
결국, 그가 살아온 시간을 압축하면 그렇지 않을까. 그저 행함으로 주위의 사람들이 저렇게 살고 싶다고 생각하게 만드는 삶. 참 ‘웅정(雄正ㆍ크고 바르다)한’ 사람, 손웅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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