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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산'이란 이름의 갈라파고스

입력
2024.04.17 17:30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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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선 참패' 비공개 사과로 민심 불 질러
"국정 방향 옳다" 고수하면 與마저 떠나
'임기 단축' 개헌 추진 등 돌파구 마련을

편집자주

매주 수요일과 금요일 선보이는 칼럼 '메아리'는 <한국일보> 논설위원과 편집국 데스크들의 울림 큰 생각을 담았습니다.


윤석열 대통령이 16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에서 열린 제17회 국무회의에서 총선 결과에 대해 발언하고 있다. 서재훈 기자

윤석열 대통령이 16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에서 열린 제17회 국무회의에서 총선 결과에 대해 발언하고 있다. 서재훈 기자

'외딴섬, 갈라파고스.'

윤석열 대통령의 16일 국무회의 모두발언을 생중계로 듣다 떠오른 생각이다. 여당이 사상 최악의 성적표를 받아 든 4·10 총선에 대해 대통령이 육성 입장을 밝힌다고 했을 때만 해도 "반성", "사과"와 같은 입에 발린 소리라도 할 줄 알았다. 그런데 10여 분간 국무위원 앞에서 "올바른 국정 방향을 잡고 최선을 다했다"고 말하는 모습은 성난 민심에 또 한 번 불을 질렀다.

심상치 않은 여론 때문인지 윤 대통령의 발언 4시간 뒤 '대통령실 고위관계자'라는 소방수가 등장했다. 비공개 회의 때 대통령 마무리 발언이라며 "국민께 죄송하다. 대통령부터 국민의 뜻을 잘 살피고 받들지 못해 죄송하다"는 말을 소개했다. 공개 사과가 아니라 전언을 통한 비공개 사과, 국민 앞이 아니라 국무위원 앞 사과였다. 이렇게 인색한 사과를 할 것이라면 아예 하지 말거나 총선 다음 날 이관섭 대통령 비서실장이 소개한 '56자 입장문'에 포함시키는 편이 상책이다.

대통령의 발언 후 참모가 주워 담거나 이를 해석해 주는 것은 윤 정부의 '뉴 노멀'이 됐다. 윤 대통령은 지난 1일 대국민담화에서 의대 정원 2,000명 증원 결정의 당위성을 강조하면서 "최소한의 증원 규모"라고 했다. 이에 의료계가 반발하자, 7시간 만에 성태윤 대통령실 정책실장이 방송에 출연해 "2,000명이 절대적인 수치라는 입장은 아니다"라며 다소 결이 다른 입장을 밝혔다. 그로부터 보름이 지났건만 의대 증원을 둘러싼 의료계와 정부의 대화는 시작조차 못하고 있다.

더 심각한 문제는 대통령이 민심을 정확히 파악하지 못한 듯한 모습이다. 지난해 11월 불거진 김건희 여사의 명품백 수수 의혹에 대한 대응이 대표적이다. 윤 대통령은 해명을 바라는 민심의 요구에 정공법을 피했다. 대국민사과나 신년 기자회견을 통한 입장 발표에 대한 기대가 있었지만, 윤 대통령은 지난 2월 KBS와의 대담으로 갈음했다. 사과나 유감 표명은 없었다. "대통령이나 대통령 부인이 누구한테도 박절하게 대하긴 참 어렵다"며 공사 구분을 못 한 영부인을 문제 삼은 국민을 오히려 박절한 쪽으로 만들었다.

'용산 리스크'는 이런 일들이 축적돼 만들어진 것이다. 오죽하면 총선 기간 국민의힘 후보 사이에서 "용산은 제발 가만히 있어만 달라"는 하소연이 나왔겠는가. 총선 공보물에 윤 대통령의 사진을 사용한 국민의힘 후보가 26.8%에 불과한 것은 여당조차 윤 대통령으로부터 멀어지고 있다는 징조다. 대통령이 총선 이후에도 "정부는 옳은 방향으로 가는데, 왜 국민이 몰라주냐"는 주장을 반복한다면 남은 임기 3년간 용산의 고립은 가속화할 수밖에 없다.

돌파구 마련을 위해선 용산 스스로 발상의 전환이 필요해 보인다. 공교롭게 윤 대통령의 비공개 사과에 대한 비판이 쏟아진 다음 날, 야권 인사인 박영선 전 중소벤처기업부 장관과 양정철 전 민주연구원장을 각각 국무총리와 대통령 비서실장으로 검토하고 있다는 보도가 나왔다. 대통령실은 즉각 부인했지만, 차기 내각과 참모 인선을 앞두고 인재 풀을 넓히려는 고민이 있다는 방증일 수 있다. 다만 대통령이 야당 대표와의 만남을 외면한 채 야권 비주류 인사 등용만으로 쇄신이나 협치라는 목적을 달성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그보다는 임기 1년 단축을 전제로 한 대통령 4년 중임제나 책임총리제를 명확히 담은 개헌을 추진하는 게 어떨까. 대선후보 시절 윤 대통령은 개헌에 선을 긋고 청와대 해체를 통한 제왕적 대통령제 청산을 주장했다. 2년 뒤 우리가 마주하고 있는 현실은 어떠한가. 청와대처럼 민심과 동떨어진 '용산'이란 또 하나의 외딴섬이 생겼을 뿐이다.

김회경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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