벚꽃 엔딩과 쓰레기

입력
2024.04.10 17:00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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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한국일보> 논설위원들이 쓰는 칼럼 '지평선'은 미처 생각지 못했던 문제의식을 던지며 뉴스의 의미를 새롭게 해석하는 코너입니다.

완연한 봄 날씨를 보인 8일 서울 송파구 석촌호수를 찾은 시민들이 만개한 벚꽃을 바라보며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다. 뉴시스

완연한 봄 날씨를 보인 8일 서울 송파구 석촌호수를 찾은 시민들이 만개한 벚꽃을 바라보며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다. 뉴시스

벚꽃이 막바지다. 봄바람이 불며 꽃비도 흩날린다. 서울 석촌호수와 양재천, 안양천 등 벚꽃놀이 명소마다 밤낮을 가리지 않고 ‘벚꽃 엔딩’을 즐기려는 사람들로 인산인해다. 벚꽃구경인지 사람구경인지 분간이 안 돼도 괜찮다. 저마다 휴대폰을 꺼내 순간을 영원에 담는다. 모두가 모델이고 사진 작가다. 이 순간 사랑하는 사람과 온전히 벚꽃의 아름다움에 취할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감사하고 행복하다.

□ 그러나 고개를 돌려 여기저기 버려진 플라스틱 컵과 페트병, 비닐봉지들과 먹다 남은 음식물들까지 산처럼 쌓여 있는 걸 보면 인상을 찌푸리게 된다. 자연은 이렇게 찬란한 꽃 선물을 주는데 인간은 악취 나는 쓰레기만 되돌려주는 꼴이니 한없이 부끄러워진다. 세상이 바뀌고 사는 것도 나아졌다고 하는데 이기심과 의식 수준은 크게 달라진 게 없는 듯하다. 쓰레기 무단 투기 과태료도 큰 효과가 없다.

□ 벚꽃 축제장만 그런 게 아니다. 금수강산이 쓰레기로 몸살을 앓고 있다. '청정 제주'마저 위기다. 일년살기를 하고 있는 한 지인은 제주의 바다는 물론이고 올레길과 오름, 곶자왈, 돌담길까지 온통 쓰레기로 뒤덮여 있는 걸 보고 충격에 빠졌다. 그가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올린 사진은 신음하는 제주의 속살, 아니 우리의 민낯을 고발한다. 해양 쓰레기야 중국에서 넘어온 것이라고 발뺌할 순 있지만 땅 위 쓰레기는 핑계도 댈 수 없다. 모두 누군가 버린 것이다. 우리가 내팽개친 양심이고, 과소비와 탐욕의 껍데기다.

□ 자연은 쓰레기를 남기지 않는다. 벚꽃은 져도 거름이 된다. 마지막까지 아름다운 이유다. 우린 썩지도 않을 쓰레기를 매일 쏟아낸다. 우리가 하루에 배출하는 생활폐기물은 1인당 1㎏에 육박한다. 환경부 조사결과다. 우리나라 전체로 따지면 일일 총폐기물이 51만 톤도 넘는다. 연간 2억 톤에 가깝다. 1년간 1회용품 발생량도 70만 톤이나 된다. 지구 한구석에서 잠시 머물다 갈 존재인 인간은 이처럼 막대한 쓰레기로 대자연을 괴롭히는 악당이 됐다. 아무리 그래도 벚나무 아래엔 쓰레기를 버리지 말았으면 한다. 벚꽃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 '쓰레기 엔딩'이 돼선 곤란하지 않나.

8일 강원 춘천시 공지천 의암공원 공용 화장실 주변으로 쓰레기들이 마구 버려져 있다. 춘천=연합뉴스

8일 강원 춘천시 공지천 의암공원 공용 화장실 주변으로 쓰레기들이 마구 버려져 있다. 춘천=연합뉴스


박일근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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