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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춘기 여성의 몸' 무시하는 엘리트 스포츠...그녀가 그래도 달린 이유

입력
2024.04.12 13:00
1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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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런 플레시먼 '여자치고 잘 뛰네'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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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학생 시절 내내 달리기 1등을 놓치지 않는 여학생이 있었다. 졸업을 앞둔 어느 날 또래 남학생에게 갑자기 1등을 빼앗기고 만다. 가슴이 커진 만큼 운동하기 힘들어졌고, 월경이라도 하면 움직일 수조차 없는 날도 있었기 때문이다. 운동을 하다가도 옷매무새를 신경 써야 하는 자신을 보며 여학생은 생각한다. "내 가슴은 어떻게 변할까. 과연 나는 가슴과 엉덩이가 가져오는 혼란에서 벗어날 수 있는 사람일까. 나는 운이 좋을까."

미국 여성 육상선수 로런 플레시먼의 회고록 '여자치고 잘 뛰네'의 한 장면이다. 대학 리그에서 다섯 차례나 우승하고 5,000m 미국 챔피언 타이틀을 두 차례 석권한 정상급 선수인 저자는 '달리기를 하는 여성'에게 가해진 사회의 압박의 시작점으로 사춘기 시절을 소환한다. 청소년에게 너무나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과정인 사춘기 변화는 프로 스포츠의 세계에서 금기에 불과하다. 신체적으로 전성기를 맞는 18~22세 남자 청소년에 비해 여자 청소년은 호르몬의 작용으로 운동과 관련 없는 신체조직이 발달하고 체중이 증가한다.

이 시기 남녀의 운동 능력은 당연히 다를 수밖에 없지만 스포츠팀을 이끄는 대부분의 남성 리더들은 여성의 신체 변화를 무시하고 남성 중심의 훈련을 강요한다. 여성 선수 상당수는 사춘기를 전후로 스포츠를 그만둔다. 저자처럼 포기하지 않더라도 "스스로의 몸을 해하지 않고는 달성하기 힘든 수준의 이상적 체중, 이상적 체형"이라는 기준에 따라 자신의 신체와 끊임없이 불화하고 '남자처럼' 훈련하며 스스로를 채찍질해야 한다. 저자도 방황과 부침을 거듭하지만 스스로 달릴 이유를 찾아내며 '미국에서 가장 빠른 5,000m 여자 선수'로 화려한 커리어를 쌓아 올린다.

여성 선수로서 온갖 역경을 극복하고 이뤄낸 성공 스토리도 매력적이지만, 은퇴 후 여성 코치로서 여성으로만 구성된 달리기 팀을 맡아 월경과 정신 건강 문제 등에 집중하며 남성 중심 패러다임에 도전하는 모습은 감동적이다. 그는 "스스로에게 멀어지게 하는 힘으로 가득한 세상에서 나에게로 돌아가는 방법을 배우고 또 배웠다"고 고백한다. '달리는 여성에게 세상이 보내는 협박과 경고를 거부하고 나를 위한 달리기를 되찾는 것'과 '다음 세대를 위해 여성이 더 자유롭고 즐겁게 달릴 수 있는 환경을 만들기 위해 활동하는 것'은 저자에겐 같은 일이었을 터다. 책은 삶을 굳게 지키고 싶었던 한 여성 스포츠인의 생존기인 동시에 존엄을 지키려고 노력하는 여성 스포츠인들에게 전달하는 곡진한 희망의 메시지다.

여자치고 잘 뛰네·로런 플레시먼 지음·이윤정 옮김·글항아리 발행·312쪽·1만6,800원

여자치고 잘 뛰네·로런 플레시먼 지음·이윤정 옮김·글항아리 발행·312쪽·1만6,800원


손효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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