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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바마는 대통령 임기 8년 동안 더 빨리 늙었을까? 속설에 의사들이 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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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은 퇴임 후인 2018년, 미국 인디애나주에서 열린 한 집회에 참석해서 말했다.
"10년 전, 대통령 선거 유세를 할 때는 흰머리가 전혀 없었습니다. 좀 전에 빅터 올라디포(프로농구 선수)가 우리가 그때 같이 찍은 사진을 보여줬는데, 올라디포는 그때나 지금이나 똑같이 보였습니다. 난 좀 다르더군요. 왜 그런지 잘 아시죠?"
'막중한 업무를 맡으면 스트레스로 더 빨리 늙는다'는 속설을 가리킨 것이다. 미국 하버드대 의대에서 보건의료 정책을 연구하는 의학계의 괴짜 경제학자, 아누팜 B. 제나와 크리스토퍼 워샴 교수는 책 '진료차트 속에 숨은 경제학'에서 이 속설을 '자연실험(natural experiment)'으로 증명해 낸다. 자연실험은 변수 등을 인위적으로 조작, 통제하는 게 어려울 때 시행하는 관찰적, 분석적 실험으로 경제학 분야에서 자주 쓰인다.
저자들이 대통령의 대조군으로 삼은 건 선거에서 패배한 후보. 이번 미국 대선으로 치면 카멀라 해리스가 되겠다. 당선, 낙선 후보의 실제 생존 기간과 각각 해당 후보와 나이, 성별이 같았던 사람들의 기대 여명을 비교하는 방식이었다. 그러자 선거의 승자들은 패자들에 비해 수명이 평균 2.7년, 약 3년 가까이 짧은 것으로 드러났다.
저자들은 자연실험의 무대를 의료 현장으로 옮긴다. 여러 건의 관찰 실험을 통해, 의료 현장이야말로 예상과 달리 '우연'이 판치는 곳이라는 사실을 발견했다. 이들은 만 2~5세 어린이의 독감 예방접종률이 태어난 계절에 따라 차이가 크다는 사실을 밝혀낸다. 10월에 태어난 아이들은 55%가 독감 예방접종을 받았지만, 5월에 태어난 아이들은 그 비율이 40%에 불과했다. 미국은 영유아 시기, 1년에 한 차례 통상 생일 전후로 아이의 건강검진을 하는데, 가을에 태어난 아이는 건강검진을 받으러 병원에 간 김에 독감 예방 주사를 맞기가 수월했기 때문이었다. 어느 계절에 태어났는지와 같은 우연이 실제 의료 행위에 영향을 미친 것이다.
저자들은 가치관의 멸균 공간으로 여겨지는 병원에서 우연이 얼마나 판치는지 실감나게 설명한다. 의사의 정치적 성향에 따라 환자 상태의 판단, 치료 방향이 달라지는 게 단적인 예다. 미국의 터프츠대, 예일대는 2016년의 연구에서 약 230명의 민주당 및 공화당 소속 의사에게 환자 상태를 묘사한 글을 읽고 질환의 심각성을 판단하도록 했다. 그 결과 의사들은 비정치적 이슈에 대해서는 심각성 평가가 동일했지만, 정치적 이슈인 '임신 중지'와 '대마초 흡연' 경험이 있는 환자에 대해서는 평가가 갈렸다. 공화당을 지지하는 의사들은 민주당을 지지하는 의사들에 비해 이 환자들이 더 심각한 의학적 문제가 있다고 판단했다. 총상을 입은 로널드 레이건 전 미국 대통령이 수술대 위에서 "여러분 모두 공화당원이라고 말해줘요"라고 했다는 농담이 단순한 우스갯소리는 아니었던 셈이다.
누군가는 의료 현장의 이런 연구들이 무용하다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저자들은 가을에 태어난 아이의 독감 예방접종률이 더 높다는 데서 "적어도 '불편함(의료 접근성)'이 공중보건에 실질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것"을 확인했다는 데 의미를 둔다. 책은 재미있는 사례로 성역과 같던 의료 시스템의 현실을 드러내면서, 환자에게 '우연의 희생자'가 되는 것을 경계하라고 당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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