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 전공의 ‘결자해지 회동’… 대화 물꼬 텄지만 타협은 여전히 불투명

입력
2024.04.04 21:30
수정
2024.04.04 21:59
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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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실 "의료체계 문제점 경청"
전공의 대표 "의료의 미래는 없다"
뚜렷한 온도 차에 사태 해결 난망

윤석열 대통령이 4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에서 ‘문제가 해결될 때까지 민생을 챙기는 정부’를 주제로 민생토론회 경제분야 후속조치 점검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대통령실 제공

윤석열 대통령이 4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에서 ‘문제가 해결될 때까지 민생을 챙기는 정부’를 주제로 민생토론회 경제분야 후속조치 점검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대통령실 제공

윤석열 대통령과 박단 대한전공의협의회(대전협) 비상대책위원장이 4일 만나 2시간 20분간 의정 현안을 논의했지만 입장 차이만 확인한 채 빈손으로 헤어졌다. 국정 최종 책임자인 대통령과 의료공백 사태 당사자인 전공의들 간 대화 물꼬가 트였다는 점에서 일단 만남 자체는 긍정 평가할 만하다. 하지만 워낙 의정 갈등의 골이 깊은 데다 전공의들이 대통령 면담 후에도 ‘의대 증원 백지화’ 요구를 철회하지 않을 것으로 보여 사태 해결까지는 상당한 진통이 예상된다.

김수경 대통령실 대변인은 이날 서면 브리핑을 통해 “대통령과 박 위원장은 전공의 처우와 근무여건 개선에 관해 의견을 교환했다”고 밝혔다. 구체적인 대화 내용은 공개되지 않았으나 “대통령이 현 의료체계의 문제점을 경청했다”는 언급에 비춰 합의안을 도출하거나 담판을 짓는 자리는 아니었던 것으로 짐작된다. 대통령실은 “향후 의사 증원을 포함한 의료개혁에 관해 의료계와 논의 시 전공의들의 입장을 존중하기로 했다”며 유화 메시지도 거듭 발신했다.

하지만 전공의들은 싸늘했다. 박 위원장은 윤 대통령과 만남 이후 페이스북에 “대한민국 의료의 미래는 없습니다”라는 한 줄 평을 남겼다. 전공의들 입장에선 진전된 논의가 없었다는 뜻이다. 전공의들의 조속한 복귀를 기대하기도 어렵게 됐다.

대전협 비대위는 2월 20일 집단 진료 거부에 들어가면서 △필수의료 패키지ㆍ의대 증원 전면 백지화 △의사 수급 추계 기구 설치 △수련병원 전문의 채용 확대 △의료사고 법적 부담 완화 △주 80시간 전공의 수련환경 개선 △명령 전면 철회 및 정부 공식 사과 △의료법 제59조 업무개시명령 전면 폐지 등 ‘7대 요구사항’을 내놓은 뒤 잠적했다. 정부의 대화 요청에는 ‘무대응’으로 대응했고, 언론과 접촉도 피했다. 이후 의대 교수들까지 ‘제자 보호’를 이유로 집단 사직에 나서며 사태는 악화일로로 치달았다.

정부가 전공의 행정처분 보류 조치에 이어 증원 규모 재조정 가능성을 내비치고 대통령이 직접 만남까지 제안한 뒤에야 전공의들은 오랜 침묵을 깨고 대화의 장으로 나왔다. 집단 사직 7주 만이다. 의료계는 당사자 간 ‘결자해지’에 기대를 걸었으나, 전공의들 입장엔 조금도 변화가 없었다. 박 위원장은 이날 대통령실 방문에 앞서 대전협 내부 공지를 통해 “성명서 및 요구안의 기조에서 달라진 점은 없다”고 못 박았다. 윤 대통령을 만난 자리에서도 의대 증원 백지화를 요구했을 것으로 보인다.

박단(오른쪽) 대한전공의협의회 비상대책위원장이 지난달 31일 서울 용산구 대한의사협회에서 열린 회의에 참석해 관계자들과 의견을 나누고 있다. 연합뉴스

박단(오른쪽) 대한전공의협의회 비상대책위원장이 지난달 31일 서울 용산구 대한의사협회에서 열린 회의에 참석해 관계자들과 의견을 나누고 있다. 연합뉴스


이날 회동에 대한 양측 간 온도 차이를 고려하면 앞으로도 대화가 이어질지 여부는 불투명하다. 설사 소통 창구를 계속 열어둔다 해도 협상 전망이 밝지만은 않다. 박 위원장은 “최종 결정은 전체 투표로 진행하겠다”고 확언했고, 대전협 비대위도 추가 공지를 통해 “요구안 수용이 불가하다면 저희 쪽에선 ‘대화에는 응했지만 여전히 접점은 찾을 수 없었다’ 정도로 대응 후 원래 하던 대로 다시 누우면 끝”이라고 설명했다. 요구 조건이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아예 대화 자체를 차단하는 방식으로 다시 실력행사를 하겠다는 의미다.

이날 회동을 두고 전공의들 사이에서 의견이 엇갈리며 내부 분열 조짐도 있다. 류옥하다 전 가톨릭중앙의료원 인턴 대표는 “윤 대통령과 박 위원장의 만남은 젊은 의사(전공의, 의대생) 의견이 수렴되지 않은, ‘박단 비대위’와 11인의 독단적 밀실 결정”이라며 “총선 사전투표를 하루 앞둔 시점에서 만남은 자연스럽게 그 저의를 의심하게 한다”고 반발했다.

이에 대전협 비대위는 “행정부 최고 수장을 만나 전공의의 의견을 직접 전달한다는 것에 의의를 두는 만남”이라며 “요구안에서 벗어나는 밀실 합의는 없다”고 반박했다. 또 “모든 대화나 개별 인터뷰 등등 외부 노출을 꺼리고 무대응을 유지한 건 궁극적으로는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결정권자를 움직이기 위한 것이었다”며 “그 결과 행정부 최고 수장이 직접 나왔다”고 자평했다.

윤 대통령과 전공의들이 접점을 찾지 못하면서 의정 갈등이 해소되기는커녕 더욱 악화할 것이란 우려도 나온다. 사직서를 낸 의대 교수들까지 진료 현장을 떠나거나 개원의들이 대정부 투쟁 수위를 높일 가능성도 적지 않다. 김성근 대한의사협회 비대위 언론홍보위원장은 “대전협 7대 요구사항을 존중하면서 대응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의협은 우선 양자 회동 내용과 결과에 대해 박 위원장 의견을 들어본 뒤 비대위 차원에서 추가 논의를 이어갈 계획이다.

김표향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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