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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조 차기 구축함' 둘러싼 한화-현대 소송전... 공정성 vs 적임자 충돌[문지방]

입력
2024.04.07 14:00
수정
2024.04.07 14: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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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광화'문'과 삼각'지'의 중구난'방' 뒷이야기. 딱딱한 외교안보 이슈의 문턱을 낮춰 풀어드립니다.


김동관(앞줄 오른쪽) 한화그룹 부회장이 2023년 6월 7일 부산 벡스코에서 열린 'MADEX 2023(국제해양방위산업전)'의 한화오션 부스를 방문해 전시된 수상함을 둘러보며 설명을 듣고 있다. 한화그룹 제공

김동관(앞줄 오른쪽) 한화그룹 부회장이 2023년 6월 7일 부산 벡스코에서 열린 'MADEX 2023(국제해양방위산업전)'의 한화오션 부스를 방문해 전시된 수상함을 둘러보며 설명을 듣고 있다. 한화그룹 제공

요즘 K방산이 뜨겁습니다. 호주를 시작으로 폴란드·루마니아 등 동유럽 국가들, 아랍에미리트(UAE)·사우디아라비아 등 중동 큰손들도 한국산 무기체계에 러브콜을 보내고 있습니다. 방산 수출은, 방산업체가 수익성을 높여 지속 가능한 기술개발을 할 수 있는 동력이 될 뿐만 아니라 유사시 우리 군이 무기체계와 군수물품을 조달할 수 있는 해외 병참 기지를 확보하는 것이기도 해서 더할 나위 없이 반가운 일입니다.

그런데 달갑잖게 뜨거운 이슈도 있습니다. 바로 국내 구축함, 순양함, 호위함 등 군함을 만드는 특수선 분야의 양대 산맥인 HD현대중공업과 한화오션의 소송전 얘기입니다. 아주 복잡하고 긴 얘기지만 최대한 간략하게 설명해 보겠습니다.

해군은 2009년부터 한국형 차기 구축함(KDDX) 사업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기존의 한국형 구축함(KDX)에 다기능 위상배열레이더와 탄도탄 탐지·추적 능력 같은 이지스시스템과 스텔스 설계 등 최신 기술을 적용한 구축함을 만들겠다는 것이지요. 여기에 각종 무장까지 모든 기술을 국산화한 '첫 국산 구축함'을 목표로 삼았습니다. 2036년까지 6,000톤급 미니 이지스함 6척을 지을 계획이며, 총사업비만 7조8,000억 원에 달합니다.

함정 사업은 크게 개념설계→기본설계→상세설계 및 선도함 건조→후속함 건조의 4단계로 진행됩니다. 각 단계마다 경쟁 입찰을 합니다. 선의의 경쟁을 통해 더 좋은 기술을 채택하려는 취지가 더 클 겁니다. 그런데 유독 '상세설계 및 선도함 건조'만큼은, 기본설계를 한 업체와 수의계약을 맺을 수 있도록 허용하고 있습니다. 업계에 따르면 기본설계부터 선도함 건조까지 패키지로 묶지 않으면 사업성이 떨어지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첫 단계인 개념설계는 지금의 한화오션인 대우조선해양이 따냈습니다. HD현중과의 경쟁에서 20점을 앞서며 나름 손쉽게 이겼습니다. 2012년 10월부터 이듬해 12월까지 완료했습니다. 개념설계란 말 그대로 어떤 모양의 배를 만들 것인지 아이디어를 내는 것인데, 건축으로 따지면 모형을 만드는 작업에 해당합니다.

3월 6일 경남 창원시 경남도청에서 구승모 한화오션 법무팀 변호사가 한국형 차기 구축함(KDDX) 기밀 유출과 관련해 HD현대중공업을 고발한 경위를 설명하고 있다. 창원=연합뉴스

3월 6일 경남 창원시 경남도청에서 구승모 한화오션 법무팀 변호사가 한국형 차기 구축함(KDDX) 기밀 유출과 관련해 HD현대중공업을 고발한 경위를 설명하고 있다. 창원=연합뉴스

문제는 이로부터 8년 후인 2020년 12월 기본설계 업체 선정 과정에서 불거졌습니다. HD현중이 불과 0.056점 차이로 한화오션을 따돌린 것입니다. 이 과정에서 HD현중 직원이 군 당국에 제출한 한화오션의 자료를 포함한 군사 기밀을 빼돌린 사실이 2018년 드러났습니다. 법원은 지난해 11월 HD현중 직원 9명이 2012년 10월~2015년 11월까지 약 3년 동안 군사 3급 비밀을 8회 이상 유출했다고 판단했습니다. 그리고 1.8점의 감점도 주기로 했습니다.

근소한 차이로 HD현중이 이길 수 있도록 방위사업청이 특혜를 줬다는 의혹도 있습니다. 왕정홍 당시 방사청장은 기본설계 입찰 공고 8개월 전에 보안사고에 따른 감점 규정을 고쳐 앞서 언급한 기밀 유출로 인한 감점을 받지 않을 수 있도록 했습니다. 현재 경찰은 직권남용 혐의 등으로 왕 전 청장을 수사하고 있습니다.

당시 대우조선해양도 가만있지는 않았습니다. 우선협상대상자 지위확인 가처분 신청 등을 통해 부당하게 사업자가 선정됐다고 주장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습니다. 업계 관계자는 "당시 대우조선해양은 대주주인 산업은행이 정부 사업에서 잡음이 나는 걸 원치 않았기 때문에 하는 수 없이 기본설계를 양보하고, 대신 HD현중이 보안 감점을 적용받아 입찰이 제한되면 상세설계 및 선도함 건조를 따낼 수 있다는 생각으로 강경하게 대응하지는 않았다"고 전했습니다.

그런데 일은 한화오션의 생각처럼 흘러가지 않았습니다. 방사청이 지난달 HD현중에 대한 제재 수위를 심의한 결과 "국가계약법상 제척 기간 5년이 지났고, 청렴 서약 의무가 있는 대표나 임원의 개입이 확인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입찰은 허용하되 감점만 받도록 한 것입니다.

한화오션은 이를 악물었습니다. 방사청의 결론에 반발해 임원 개입 여부를 수사해 달라며 경찰에 고발한 것입니다. 임원의 승인 없이 직원이 유출한 군사 비밀을 사내 서버에 저장하는 등의 결정을 내리는 건 불가능하다는 이유에서입니다. 임원이 개입한 사실이 밝혀지면 HD현중은 최대 5년간 해군 군함 사업 입찰 제한을 받을 수도 있습니다.

경찰 수사와 별개로 KDDX 상세설계 사업자 선정 과정도 함께 진행 중입니다. HD현중은 관행대로 기본설계를 한 업체가 상세설계와 선도함 건조까지 맡아야 한다는 입장이고, 한화오션은 HD현중이 불공정한 경쟁으로 기본설계를 따낸 것인 만큼 적어도 경쟁 입찰을 통해 사업자를 정해야 한다는 입장입니다. 경쟁 입찰은 1.8점의 감점이 있는 HD현중으로선 피해야만 하는 선택지입니다.

세계 최초로 ‘바다의 발전소’라 불리는 25MW급 대용량·고출력 추진전동기를 탑재하게 될 한국형 차기 이지스구축함(KDDX) 모습. HD현대중공업 제공

세계 최초로 ‘바다의 발전소’라 불리는 25MW급 대용량·고출력 추진전동기를 탑재하게 될 한국형 차기 이지스구축함(KDDX) 모습. HD현대중공업 제공

HD현중은 △자신이 세계 최초 25MW급 대용량·고출력 추진전동기 개발의 적임자이며 △기본설계 과정에서 19개 기관 및 업체와 3년간 70여 회의 회의를 통해 최적화된 체계통합을 수행해왔고 △인공지능(AI) 기반의 전동화·자동화 기술이 접목된 인력절감형 전투함 개발은 국내에서 유일하게 자율운항 솔루션 분야 상용화에 성공한 자신들이 가장 잘 할 수 있다고 강조하고 있습니다. 또 상세설계에 소요될 것으로 예상되는 인력은 180~280명 수준으로, 국내에서 수상함 연구개발에 특화된 엔지니어를 이 정도로 동원할 수 있는 조선소는 자신들이 유일하다고 주장합니다. 보안사고는 자신뿐만 아니라 2016년 한화오션도 낸 적이 있는 만큼 이 부분은 차치하고, KDDX를 가장 잘 설계하고 만들 수 있는 업체는 HD현중이니 우리에게 맡겨달라는 얘깁니다. 이번 보안사고와 관련해 HD현중 관계자는 "업체 입장에서 정보가 너무 부족하기 때문에, 단순 열람만으론 한계가 있어 비밀 내용을 저장하는 관행이 생겼다"며 "이는 제도적 개선을 통해 바로잡아야 할 부분"이라고 전하기도 했습니다.

한화오션의 생각은 정반대입니다. 이번 이슈는 실력이 아닌 공정성의 문제라는 것이죠. 역대 최대인 1.8점의 감점을 받을 만큼 심각한 보안사고를 저지르고도 아무런 책임도 지지 않은 채 사업권을 유지한다면, 어떤 업체가 돈 들여가며 기술을 개발하겠느냐고 강변합니다. 그리고 2016년 자신들의 보안사고는 '실수'이고 HD현중의 사고는 '범죄'라고 규정합니다. 보안점검을 나온 기무사에서 수사의뢰를 하지 않은 것도 단순 실수로 판단했기 때문이라는 겁니다.

양측의 주장이 첨예하고 팽팽합니다. 국민이 낸 막대한 세금이 투입되는 국방력 강화 사업입니다. 허투루 돈이 쓰여선 안 될 것입니다. 배를 가장 잘 만들 수 있는 업체가 사업권을 따는 게 맞겠지만, 공정하지 못한 방법으로 경쟁에서 승리했다면 그게 '관행'이라는 이름으로 포장될 수 있을지 의문입니다. 한화오션이 HD현중에 입찰 제한을 부과하기 위해 벌이는 소송전도 곱게 볼 수 없습니다. 일정 기간의 독과점이라도, 특수선 생태계에는 큰 위협이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우물쭈물하는 방사청도 최대한 빠른 기간 내에 명확하게 교통정리를 해 줄 필요가 있습니다. 시간이 흐르고 갈등의 골이 깊어지면, 누구에게도 좋을 게 없습니다. 모두들 잘 헤아려야 할 것은 국민의 뜻입니다. 공명정대한 과정을 통해서, 내가 낸 세금이 오롯이 국방 발전에 쓰였으면 하는 마음 말입니다.



김경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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