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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자가 진 예수가 트럼프? 복음주의자 향한 구애 '위험한 도박' 될까

입력
2024.04.03 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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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적 박해" 예수에 비교하더니
유세 집회는 '트럼프 교회' 방불케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이 지난 2월 24일 메릴랜드주에서 열린 공화당 최대 연례 행사 '보수정치행동회의(CPAC)'에서 연설하고 있다. 메릴랜드=AFP 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이 지난 2월 24일 메릴랜드주에서 열린 공화당 최대 연례 행사 '보수정치행동회의(CPAC)'에서 연설하고 있다. 메릴랜드=AFP 연합뉴스

"우리는 하나님(God)을 위해 기도하고, 하나님과 함께 기도할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 아래 하나의 운동, 하나의 민족, 하나의 가족, 하나의 영광스러운 국가입니다."

교회 목사의 설교가 아니다. 미국 공화당 대선 후보 자리를 굳힌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의 최근 유세 집회 마무리 발언이다. 지지자들은 고개를 숙이거나 눈을 감는다. 일부는 허공에 손바닥을 치켜들고 기도하듯 중얼거린다. 마치 '트럼프 교회'를 방불케 한다고 미국 뉴욕타임스(NYT)가 '트럼프는 어떻게 자신의 선거 운동에 기독교를 접목하는가' 제하의 기사를 통해 1일(현지시간) 전했다.

기도하고 성경 파는 트럼프… "하나님은 우리 편"

NYT에 따르면 지난 1월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트럼프 전 대통령 집회는 교회 장로인 제주스 마르케스의 기도로 시작됐다. 그는 "하나님은 우리 편"이라며 성경을 인용해 '트럼프 전 대통령이 백악관으로 돌아오기를 하나님이 원하신다'고 선언했다. 지난 2월 사우스캐롤라이나 집회에서도 그렉 로더먼드 목사는 "(트럼프 전 대통령의 반대자들이) 미국을 파괴하려 한다"며 "하나님이 트럼프를 도구로 선택하셨다"고 설파했다.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재임 시절인 2020년 6월 1일 워싱턴 백악관 라파예트 공원의 건너편 세인트 존스 교회를 방문한 자리에서 성경을 손에 들고 있다. 재선에 도전하는 트럼프 전 대통령은 최근 자신의 소셜미디어를 통해 성경을 판매하는 등 기독교 복음주의자 결집에 나서고 있다. AP 연합뉴스 자료사진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재임 시절인 2020년 6월 1일 워싱턴 백악관 라파예트 공원의 건너편 세인트 존스 교회를 방문한 자리에서 성경을 손에 들고 있다. 재선에 도전하는 트럼프 전 대통령은 최근 자신의 소셜미디어를 통해 성경을 판매하는 등 기독교 복음주의자 결집에 나서고 있다. AP 연합뉴스 자료사진

트럼프 전 대통령도 스스로를 신격화하는 데 거침없다. 미국 대통령 최초로 형사기소된 데 대해 "정치적 박해"라고 주장해 온 그는 지난달 30일 자신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 트루스소셜에 '트럼프의 십자가형'이라는 제목의 기사를 공유했다. 십자가 진 예수와 자신을 직접 비교한 것이다. 앞서 그는 "신이 우리에게 트럼프를 주셨다"는 내용의 동영상도 게시한 바 있다. 이런 게시글에는 "(트럼프는) 하나님의 가장 훌륭한 전사 중 한 명"이라는 '트럼프 광신도'들의 댓글이 달린다.

보수적 입장을 견지하는 이들 복음주의자는 공화당과 트럼프 전 대통령의 핵심 지지층이다. 2020년 대선 때 복음주의자 10명 중 8명이 트럼프 전 대통령을 찍었다. 퓨리서치센터에 따르면 백인 복음주의자의 67%는 트럼프 전 대통령이 자신들의 종교적 신념을 옹호한다고 답했다고 AFP통신은 전했다.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이 지난달 20일 미국 사우스캐롤라이나주 그리어 공항에서 자신의 지지자와 사진을 찍고 있다. 사우스캐롤라이나=AP 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이 지난달 20일 미국 사우스캐롤라이나주 그리어 공항에서 자신의 지지자와 사진을 찍고 있다. 사우스캐롤라이나=AP 연합뉴스


"트럼프가 원하는 건 표와 돈"

다만 세속주의 국가인 미국의 정교분리 원칙까지 뿌리째 흔드는 트럼프 전 대통령의 행보는 우려를 산다. AFP는 트럼프 전 대통령이 복음주의자들에게 원하는 것은 표와 돈이라고 꼬집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지난달 26일 트루스소셜에 올린 홍보 글을 통해 '신이 미국에 축복을'이라는 제목의 59.99달러(약 8만 원)짜리 성경 판매에도 나섰다. 미국 CNN방송은 "트럼프 전 대통령이 문자 그대로 종교를 팔고 있다"고 비판했다.

기독교계 내에서도 우려가 나온다. 미국 남침례교회 윤리와종교위원회 위원장을 지낸 러셀 무어는 "대선 후보자에게 신과 같은 권위나 신의 지지를 부여하는 것은 신을 반대하지 않고는 그 사람을 의심하거나 반대할 수 없다는 뜻"이라며 "(트럼프 집회는) 위험한 영역으로 진입했다"고 NYT에 말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의 '보수 백인 복음주의 기독교도'를 향한 노골적 구애가 오히려 본선 경쟁력을 떨어뜨리는 '위험한 도박'이 될 수 있다는 관측도 있다. 집토끼를 잡아두는 대신 중도층 다수를 잃을 수 있기 때문이다. 갤럽의 여론조사 결과 1948년 91%였던 기독교인 비율은 2022년 기준 68%까지 줄었다.

권영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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