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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 위 F1'도 '전기차 F1'도 여기서… 국제 스포츠대회 '허브' 된 동남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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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2월 한국일보의 세 번째 베트남 특파원으로 부임한 허경주 특파원이 ‘아세안 속으로’를 통해 혼자 알고 넘어가기 아까운 동남아시아 각국 사회·생활상을 소개합니다. 거리는 가깝지만 의외로 잘 몰랐던 아세안 10개국 이야기, 격주 금요일마다 함께하세요!
23일 오후 베트남 호찌민에서 650㎞ 떨어진 중남부 빈딘성(省) 꾸이년. 에메랄드빛 바다와 한적한 해변으로 유명한 해안 도시에 내·외국인 관광객 수천 명이 몰려들었다. 이날부터 띠나이만(灣)에서 열린 ‘2024 빈딘성 국제파워보트 그랑프리’ 경기를 관람하기 위해서다.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산하 국제모터보트연맹(UIM)이 주최하는 이 대회는 선수들이 파워보트, 아쿠아바이크(수상 오토바이)를 타고 물 위에서 스피드와 기술을 겨루는 까닭에 ‘바다의 포뮬러 1(F1)’이라고도 불린다. 올해 경기에는 세계 26개국 55명의 남녀 선수가 출전했다.
출발 신호가 울리기 무섭게 아쿠아바이크 선수 10여 명이 물살을 가르며 거침없는 질주를 시작했다. 시속 200㎞, 고막을 울리는 엔진 굉음 소리와 함께 하얀 물보라가 일자 관람객들은 환호성을 터뜨렸다. 프리스타일 선수들이 바이크를 탄 채 물 위에서 공중회전을 할 때면 관중석에 앉아 있던 어린이들이 신난 듯 연신 비명을 내지르기도 했다.
경기를 보러 1,000㎞ 넘게 날아온 응우옌딩남(41)은 “하노이에서 꾸이년으로 오는 항공편 좌석이 꽉 차서 비행기 탑승 전부터 대회 인기를 실감했다”며 “시원하고 짜릿한 경기를 보니 스트레스가 풀리는 것 같다. 항공료와 호텔비가 다소 비쌌지만 후회 없는 선택”이라고 말했다.
베트남에서 수상 스포츠 관련 국제 대회가 열린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팜안뚜언 빈딘성 인민위원회 위원장은 개막식에서 “(이번 경기가) 베트남 해양 스포츠 확산의 시발점이 되길 바란다”며 “앞으로 더 많은 스포츠 경제 모델을 전국에 확산시키도록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그랑프리 기간 빈딘성은 늦은 밤까지 축제 분위기로 들썩였다. 대회 전야제가 열린 22일부터 마지막 날인 31일까지 시내 곳곳에서는 내·외국인 관광객들에게 전통 음식과 문화를 알리는 행사가 이어졌다. 꾸이년, 나아가 빈딘성을 다시 찾고 싶은 관광지이자 매력적인 투자처로 각인시키겠다는 의지로 풀이된다.
응우옌투안타잉 빈딘성 인민위원회 상임부위원장은 “파워보트 대회 개최가 빈딘성 문화·인적 잠재력과 강점을 세계에 알리고 투자를 촉구할 수 있는 기회라고 보고 (주최 측에) 개최 의향을 타진했다”며 “무슨 수를 써서라도 대회를 유치하겠다는 각오로 많은 노력과 돈을 쏟아부었다”고 설명했다. 이어 “이번 행사 이후 많은 기업의 투자가 올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베트남 일부 도시만의 움직임은 아니다. 동남아시아 주요 국가가 명망 있는 국제대회를 자국으로 유치하려 애쓰고 있다. 최근 가장 뜨거운 행사는 국제자동차연맹(FIA)이 주최하는 ‘포뮬러E 월드 챔피언십’이다. 내연기관차로 경쟁하는 F1과 달리 순수 전기차로 달리는 게 특징이다. 경기가 송출되는 국가만 200여 국, 연간 시청자 수 3억8,000명에 달하는 세계 최고 전기차 대회로 꼽힌다.
전기차 산업 육성에 공들이는 태국은 내년 7월 열리는 이 행사 결승전 개최권을 따내려 중앙 정부가 앞장서 뛰고 있다. 방콕포스트에 따르면 최근 스레타 타위신 총리는 북부 치앙마이에서 포뮬러E 경영진을 만나 경기장 몇 곳을 결선 후보지로 제안하는 등 적극적인 구애를 펼쳤다. 지난 10일 프랑스 순방 당시 파리에서 장 토드 포뮬러E 최고경영자(CEO)를 만나 유치를 호소하기도 했다.
말레이시아도 강력한 경쟁자다. 현지 매체 프리말레이시아투데이는 “안와르 이브라힘 총리가 지난달 토드 CEO와 만나 행사에 대해 논의했다”며 “수도 쿠알라룸푸르에서 경주에 적합한 서킷을 물색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고 전했다.
이들이 대회 유치에 열 올리는 것은 △국가(지역) 홍보 △관광산업 활성화 △전기차 대중화라는 세 마리 토끼를 잡기 위해서다. 세계인의 시선이 쏠리는 국제 대회를 성공적으로 개최할 경우 국가 인지도 상승은 물론 숙박업과 외식 등 관광 산업에 적지 않은 파급 효과를 불러올 수 있다. 전기차에 대한 국민 관심이 높아지면서 장기적으로는 산업 구도까지 영향을 미칠 가능성도 있다.
말레이시아에서는 챔피언십을 성공적으로 유치할 경우 경제 효과가 최대 1억6,000만 링깃(약 455억 원)에 달하고, 1만여 개의 일자리가 생길 것이란 예측도 나온다.
타위신 태국 총리 역시 자신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경제를 활성화하고 국가 인프라를 발전시키는 동시에 탄소 배출을 줄이는 정책을 강화하기 위해 포뮬러E 대회를 유치하고자 한다”며 “태국을 지역 관광 허브로 알리는데도 도움이 될 것”이라고 기대를 감추지 않았다. 앞서 2022년 서울 잠실에서 열린 포뮬러E 월드 챔피언십의 경제적 효과는 1,300억 원으로 추산됐다.
일찌감치 스포츠 대회 유치전에 뛰어든 싱가포르는 이미 가시적 성과를 내고 있다. 지난해 9월 17일 마리나베이 스트리트 서킷에서 열린 F1 그랑프리 경기는 미국에서만 134만7,000명이 시청했다. “레이싱 방송 사상 최대 시청률(미국 스포츠전문매체 ESPN)”이라는 평가가 나올 정도다.
경기가 열리면 지역 경제도 살아난다. CNBC는 “서킷 인근 호텔 가격이 1박에 590~800싱가포르 달러(약 59~80만 원)로 평소보다 2, 3배 가까이 치솟았지만 객실 예약률이 90%를 넘어섰다”고 전했다. 경기를 직접 보려 세계 각국 모터스포츠 팬들이 싱가포르로 향하면서 이 기간 싱가포르행 항공권 예약률은 100%에 달했다.
싱가포르에서는 올해와 내년에도 탁구, 트라이애슬론, 럭비, 수영 등 굵직한 국제 대회가 줄줄이 예고돼 있다. 싱가포르 국가기관 스포츠싱가포르(SPORTSG)는 지난 7일 “4년에 걸쳐 1억6,500만 싱가포르달러(약 1,648억 원) 규모 ‘스포츠 이벤트 기금’을 설립하겠다”는 방침도 밝혔다. 해당 자금은 또 다른 국제대회를 유치할 때 투입될 예정이다.
동남아시아 경제가 급속히 성장하면서 앞으로 국제대회 개최 빈도와 규모가 더 확대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글로벌 시장조사업체 스태티스타는 지난해 동남아 스포츠 이벤트 시장 규모가 5억6,740만 달러(약 7,620억 원)에 달한다고 분석했다. 5년 전(2억8,490만 달러)의 2배다. 오는 2028년에는 6억7,860만 달러까지 늘어날 전망이다.
이는 ①경제 번영으로 동남아 각국이 스포츠 행사에 관심을 갖고 더 많은 자원을 할당한 데다 ②중산층 증가로 소비자들의 여가 활동 지출이 늘어났고 ③교통 인프라·디지털 플랫폼 확산으로 연결성과 접근성이 높아진 영향으로 풀이된다. 스태티스타는 “동남아 지역이 주요 국제 스포츠 대회 ‘중심지(허브)’로 떠오르고 있다”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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