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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5년 전 피로 물들어 사라진 제주 곤을동을 다시 있게 하는 방법

입력
2024.03.29 11:00
1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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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책 '곤을동이 있어요'

폐허로 남은 제주 제주시의 곤을동. 바람의아이들 제공

폐허로 남은 제주 제주시의 곤을동. 바람의아이들 제공

제주 제주시 화북일동 4429. 해안을 끼고 평화를 상징하는 길인 제주올레 18코스가 이어지고, 지역 명문으로 꼽히는 고등학교와 대학교가 지척인 마을, 곤을동의 주소다. 마을은 주소만 남아있을 뿐 사라진 지 오래다. '곤을동 4·3유적지'라는 표식만 남아 있다.

그림책 '곤을동이 있어요'는 1949년 이전엔 무척 평화로웠던 곤을동의 풍경을 오색찬란하게 묘사한다. 표지를 넘기자마자 파란 빛깔의 제주 바다가 시원하게 펼쳐지고, 노란 유채꽃과 빨간 동백꽃이 페이지마다 다채롭게 수놓는다. "웡이자랑 웡이자랑 우리 아기 자는 소리~." 제주 방언 섞인 자장가가 검은 돌담을 타고 새어 나오고는 했던 마을에 갑자기 어둠이 드리운다.

4·3 사건(1947~1954) 한복판이었던 1949년 1월 4일 삽시간에 화마가 마을을 집어삼킨다. "너 빨갱이지?" 군인들은 군홧발로 사람들을 짓밟고 초가집마다 불을 지른다. 곤을동에서만 24명이 목숨을 잃었고, 사람들은 마을을 떠났다. 폐허가 된 마을은 흔적만 남았다. 빨강, 노랑, 파랑으로 물들었던 그림책에는 어느덧 검정과 빨강만 남는다. 까만 재와 연기로 뒤덮인 하늘, 불타오르는 마을, 그리고 한 송이씩 바닥에 떨어지는 동백꽃이다.

곤을동은 이제 없다. 그러나 한국 현대사의 비극인 4·3 사건을 기억하는 사람들이 있는 한 곤을동은 있다. "제주를 사랑하는 사람에게 사라진 곤을동을 되찾아주고 제주를 더욱 깊이 사랑하게 만드는 그림책"이라고 평한 김지은 아동문학평론가의 서평처럼 영원히 곤을동을 '있게' 만드는 그림책이다.

곤을동이 있어요·오시은 글·전명진 그림·바람의아이들 발행·44쪽·1만9,800원

곤을동이 있어요·오시은 글·전명진 그림·바람의아이들 발행·44쪽·1만9,800원




이혜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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