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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수 사직 이어지고 정부 원칙은 후퇴하고… 갈수록 꼬이는 의정갈등

입력
2024.03.27 04:30
수정
2024.03.27 07:42
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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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5 병원 교수 등 사직서 제출 잇따라
한덕수 총리 의료계 주요 관계자 대화
여당 개입 '의사 불패 신화' 재현 우려
전공의 신고센터 대상 교수까지 확대

정부의 의대 증원에 반발하는 전공의 집단 사직 사태가 6주차에 접어든 26일 오후 대구 한 종합병원 응급실에서 의료진이 환자를 돌보고 있다. 뉴스1

정부의 의대 증원에 반발하는 전공의 집단 사직 사태가 6주차에 접어든 26일 오후 대구 한 종합병원 응급실에서 의료진이 환자를 돌보고 있다. 뉴스1

정부가 의대 증원에 반발하는 의사들과 본격적으로 대화에 나섰지만 5대 상급종합병원(빅5 병원) 교수들을 비롯해 집단 사직에 동참하는 의대 교수는 더 늘고 있다. 한덕수 국무총리가 주재한 의료계 간담회에는 집단행동 주축인 전공의와 교수가 참여하지 않았다. 정부는 ‘2,000명 증원’ 방침에 재차 쐐기를 박고 의사들은 ‘증원 철회’ 요구를 굽히지 않으면서 의정 갈등은 좀처럼 협상 국면으로 전환되지 못하는 분위기다. 여당의 뒤늦은 중재는 별다른 실효성 없이 도리어 “전공의 구제 불가”를 천명했던 정부의 원칙 후퇴로 이어지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빅5 병원’ 교수 사직 현실화

전국 의대 교수들의 '무더기 사직'이 본격화된 26일 서울 시내 한 대학병원에 휴진 안내문이 붙어 있다. 연합뉴스

전국 의대 교수들의 '무더기 사직'이 본격화된 26일 서울 시내 한 대학병원에 휴진 안내문이 붙어 있다. 연합뉴스

26일 의료계에 따르면 전날부터 시작된 의대 교수 사직이 한층 가속화하는 형국이다. 빅5 병원 중 하나인 삼성서울병원을 수련병원으로 둔 성균관대 의대 교수 비상대책위원회는 이날 대학과 병원 소속 교수들의 사직서를 28일 일괄 제출하기로 결의했고, 역시 빅5 병원인 서울성모병원과 가톨릭대 의대 소속 교수들도 회의를 열어 사직서 제출 일정을 논의했다. 전날 사직서를 낸 서울대 의대·서울대병원, 울산대 의대·서울아산병원, 연세대 의대·세브란스병원까지 더해 ‘빅5 병원’이 모두 집단행동에 가세한 것이다.

전국 19개 의대가 참여한 전국의대교수비대위가 앞서 예고한 대로 사직서 제출을 강행하면서 비대위 소속 대학에서도 교수 사직이 잇따르고 있다. 향후 전공의 처벌 시점을 사직 제출 시기로 정한 의대도 있어서 사직자는 더 늘어날 가능성이 크다. 대부분 비대위 차원에서 사직서를 취합하거나 병원장에게 제출하는 방식이라 퇴직 절차가 정식으로 개시되진 않았지만, 정부에는 상당한 압박이 되고 있다.

때마침 이날 대한의사협회 회장선거도 끝나 의사들 여론은 더 강경해지는 분위기다. 전날부터 이틀간 진행된 결선투표를 통해 신임 회장으로 선출된 임현택 대한소아청소년과의사회 회장은 의사 권익을 최우선시하는 강경파다. 그동안 정부를 향해 거친 발언을 쏟아냈던 터라 정부와의 대화보다는 대정부 투쟁에 주력할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다만 전공의와 교수들이 의협과 공조하려는 움직임이 없어 의협이 의사들 구심점 역할을 하긴 어려워 보인다.

의정 대화 시작했지만… 정부 원칙 후퇴

한덕수(오른쪽) 국무총리가 26일 서울 종로구 서울대 의대 대에서 대학 총장과 의대 학장, 병원단체 관계자 등과 의사 집단행동에 대해 논의하고 있다. 뉴시스

한덕수(오른쪽) 국무총리가 26일 서울 종로구 서울대 의대 대에서 대학 총장과 의대 학장, 병원단체 관계자 등과 의사 집단행동에 대해 논의하고 있다. 뉴시스

정부는 적극적으로 의사들과 대화를 모색하고 있다. 한 총리는 이날 서울대 의대에서 의대 학장, 병원장, 대학 총장, 병원단체 대표 등과 간담회를 갖고 의사 집단행동 해법을 논의했다. 정부와 의료계 모두 대화 협의체 구성 필요성에 공감한 것으로 전해졌다. 하지만 정작 교수들과 전공의는 ‘2,000명 증원 철회’를 대화 전제 조건으로 내세우면서 이날 간담회에도 불참해 협상 테이블을 꾸리기 쉽지 않은 상황이다.

정부도 2,000명 증원을 철회하지 않겠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 박민수 보건복지부 2차관은 이날 중앙사고수습본부 브리핑에서 “27년 만에 의대 2,000명 증원을 결정해 학교별 배정을 확정했고, 내년도 입시에 차질 없이 반영되도록 5월 안에 후속절차를 마무리할 것”이라고 밝혔다. 증원 규모를 재검토할 가능성에 대해선 “정부가 2,000명 증원을 판단한 근거보다 더 설득력 있고 합리적인 과학적 근거를 제시해 달라”고 반박했다.

전공의에 대한 면허정지 행정 처분은 잠정 유예됐다. 한동훈 국민의힘 비대위원장이 제안하고 윤석열 대통령이 수용한 ‘전공의 행정 처분 유연한 처리’에 대해 현재 당정 협의가 진행 중이다. 박 차관은 “처분 시기, 기간, 수위 등이 검토 대상이 될 수 있겠으나 아직 정해진 것이 없다”고 설명했다.

정부는 사태 초반부터 “업무개시명령을 어긴 전공의를 구제하지 않는다”는 대원칙을 세웠으나, 의정 갈등을 외면하던 여당이 총선을 앞두고 뒤늦게 개입하면서 원칙이 꺾이는 분위기다. 심지어 여권 일각에선 증원 규모 재조정 발언까지 나오기 시작했다. 한 위원장도 이날 울산 유세 현장에서 ‘의대 2,000명 증원도 타협이 가능한가’라는 질문에 “대화를 하는 데 있어 의제를 제한할 문제는 아니라고 생각한다”며 한층 유화적 입장을 비쳤다.

이렇다 보니 의료개혁을 번번이 가로막은 ‘의사 불패 신화’가 재현될 수 있다는 우려도 고개를 들고 있다. 노환규 전 의협 회장은 페이스북에서 “(정부가) 전공의를 처벌하지 못할 것이라 그러지 않았냐”고 적었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은 “전공의에 대한 유연한 처분은 소통을 강화하려는 조치로 보인다”면서도 “왜곡된 의료체계를 정상화하기 위해 온 국민이 불편을 감내하고 있는 상황에서 정치적으로 활용하려는 시도는 결코 용납할 수 없다”고 비판했다.

남은 전공의·교수 보호 대책 가동

박민수 보건복지부 2차관이 26일 오전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 별관에서 의사 집단행동 관련 중앙사고수습본부 브리핑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박민수 보건복지부 2차관이 26일 오전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 별관에서 의사 집단행동 관련 중앙사고수습본부 브리핑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꼬일 대로 꼬인 난국에도 정부는 의대 증원 실무 작업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정부는 이날부터 대학별 교육 여건 개선 수요조사에 착수했다. 교육부가 별도 구성한 현장점검팀도 29일까지 각 대학을 방문해 현장 의견을 청취할 예정이다.

복지부가 운영 중인 ‘전공의 보호·신고센터’는 신고 접수 대상을 의대 교수까지 확대한다. 일부 교수들이 사직서를 제출하지 않는 동료 교수를 비난하고 압박하는 상황에 대응하기 위한 조치다. 12일부터 25일까지 접수된 전공의 피해는 84건으로 집계됐다. 정부는 사직서 제출 강요, 현장 복귀 방해 행위가 ‘직장 내 괴롭힘’에 해당하는지 여부 등을 확인해 고용노동부와 후속 조치를 진행할 계획이다. 교육부도 ‘의대 학생 보호·신고센터’를 설치해 휴학 강요 사례 신고를 받기로 했다.

비상진료체계도 강화한다. 25일 군의관 100명과 공중보건의사 100명을 상급종합병원 및 국공립병원에 추가 파견한 데 이어 진료지원(PA)간호사를 대상으로 다음 달 안에 수술, 외과, 내과, 응급·중증 분야 교육·훈련 프로그램을 제공한다. 복지부는 47개 상급종합병원과 87개 공공의료기관에서 PA간호사 5,000명이 활동하고 있으며 향후 1,900여 명이 추가 증원될 예정인 것으로 파악했다. 박 차관은 “시범사업 운영을 바탕으로 PA간호사 제도화에 필요한 조치도 추진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김표향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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