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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기후정치가 희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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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주 수요일과 금요일 선보이는 칼럼 '메아리'는 <한국일보> 논설위원과 편집국 데스크들의 울림 큰 생각을 담았습니다.
앞으로 어떤 극적인 변화가 나타날지 모르지만, 지금까지의 총선 전개 양상은 지난 대선에 버금가는 ‘비호감 선거 시즌2’다. 선거판엔 국민의 삶을 바꾸기 위해 '뭘 하겠다'는 다짐 대신 '상대방을 무너뜨리겠다'는 증오의 선동만 난무한다. 청년실업, 고물가, 사교육비 등 민생 현안에 대한 정책 토론은 사라졌다.
정당들의 지향점이 이러하니, 입법 전문성과 의정활동에 대한 비전보다는 상대를 조롱하는 독설 능력이 중시되는 것 같다. 함량 미달에 내세울 건 ‘친O’ 딱지뿐인 인물들이 이른바 ‘시스템 공천’을 척척 통과하는 걸 보면 심증이 굳어진다.
이런 상황에서 ‘누구를 선택해야 하느냐’의 고민은 ‘왜 투표를 해야 하느냐’는 근본적인 질문으로까지 이어지지만, 그래도 선거 참여의 명분을 찾는다면 기후정치에 대한 희망을 이야기하고 싶다.
그동안 정치권에서 기후위기는 ‘구색 맞추기’용으로도 대접받지 못한 의제였다. 중요한 이슈이긴 하나 당장 먹고사는 문제가 우선이며, 단기적인 해결 방안이 마땅치 않기 때문에 먼 미래의 장기 과제로 여겨졌다. 무엇보다 기후 공약은 표로 연결되지 않는다는 생각이 크게 작용했다.
그런데 이번엔 기후 의제를 다루는 각 당의 분위기가 달라졌다. 특히 주목할 만한 건 기후 위기 대응에 소극적이라는 평가를 받던 국민의힘의 변화다. 미래통합당으로 치른 지난 총선 때는 아예 빠뜨렸던 기후 공약을 이번엔 더불어민주당보다 먼저 발표했다. 공약엔 기후대응기금 확대, 석탄화력발전소 폐지 지역 지원, 기후위기 특별위원회 상설화 등을 담았는데, 이는 과거 야당들이 요구했거나 필요성에 공감하는 사안이라 협치도 기대할 수 있다. 22대 총선은 주요 정당들이 빠짐없이 10대 공약에 기후 의제를 포함시킨 첫 선거라는 의미를 갖는다.
정당들이 기후 분야 인재를 적극 영입한 것도 달라진 점이다. 민주당과 녹색정의당은 박지혜 기후·환경 전문 변호사와 조천호 전 국립기상과학원장을 1호 영입인재로 각각 발탁했다. 국민의힘도 김소희 기후변화센터 사무총장, 정혜림 전 SK경영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 등 4명의 기후 인재를 영입했다. 이들 중 상당수가 지역구·비례대표 공천을 받아 총선에 나선다. 선거 결과에 따라 기후 전문가 국회의원이 여럿 탄생할 수도 있는 셈이다.
주요 정당이 모두 공약으로 제시한 국회 기후위기 특별위원회 상설화는 ‘의미 있는 진전’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이는 기후위기가 단순한 환경 문제를 넘어서 민생 문제로 확대되고 있기 때문이다. 폭우, 폭염, 한파, 가뭄, 태풍 등 반복되는 극단적 기후 현상은 국민의 생명을 위협하는 안전 문제이며, 기후변화로 인한 농작물 피해는 식량 안보와 물가에 영향을 미치는 경제 문제이기도 하다.
사용하는 전력량의 100%를 재생에너지로 충당해야 하는 RE100은 글로벌 공급망에서 살아남아야 하는 국내 제조기업들의 미래가 걸린 산업 문제이며, 이산화탄소 배출이 많은 국가의 제품에 관세를 부과하는 탄소국경세는 수출 비중이 높은 우리나라의 통상 이슈이다. 상설 기후위기 특위가 출범하면 여러 정부 부처와 상임위에 걸쳐 있는 복잡한 기후 문제를 종합적으로 논의할 수 있는 시스템이 마련되는 셈이다.
다만 정당들이 얼마나 진정성을 갖고 기후정치를 이행할지는 지켜봐야 한다. 이전에도 정치권은 말로는 기후위기를 강조하면서 정작 환경파괴와 탄소배출을 늘리는 사업을 벌여 그린워싱(위장 환경주의)이라는 비판을 받았다.
환경단체 ‘기후정치바람’이 지난해 국민 1만7,0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에서 기후의제를 중심으로 투표를 고려하겠다는 ‘기후유권자’가 33.5%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정당들이 기후위기를 논의할 때 잊지 말아야 할 숫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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