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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전이 유독 맛있는 까닭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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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전을 부쳤다. 밭에서 캐 온 쪽파에 미나리와 냉동 오징어를 왕창 때려 넣고 24㎝ 프라이팬에 꽉 차는 크기로 넉넉하게 부쳤다. 어제는 대파를 채칼로 썰어 파절이를 무치고, 쪽파에 황태채 넣어서 짭조름한 파김치까지 담가두었다. 파 한 단에 1만7,900원이니 875원이니, 부질없는 논쟁이 한창인 이 시국에 그야말로 '파 플렉스'가 아닐 수 없다.
얼마나 다행인가, 그래도 파는 심어둔 것이…
지난가을, 들깨를 수확한 밭을 겨우내 그냥 비워두었다. 예년 같으면 그 자리에 마늘과 양파를 심었을 터였다. 한데 얼른 밭 정리해서 양파와 마늘 놓자는 엄마의 말에 도리도리 고개만 저었다. 지난해 농사는 유독 힘겨웠다. 한여름에 몸을 다친 까닭이 크지만 애지중지하던 내 땅이 잡초와 벌레에 잠식당하는 꼴을 한번 보고 나니, 마음이 이상하게 움츠러들고 전에 없던 피로감마저 한꺼번에 몰려왔다.
주말 농부의 삶을 지속하는 이라면 공감하리라. 말이 좋아 풍요로운 전원생활이지, 결국은 내 돈 내고 치르는 생고생 프로젝트가 바로 주말 농부 생활이다. 마늘과 양파 농사만 해도 그렇다. 씨앗을 파종한 후 땅이 얼기 전에 부직포를 사다가 덮어주고 이듬해 봄, 기온이 오를 무렵 늦지 않게 걷어낸 후 두어 차례 웃거름을 뿌려주어야 한다. 봄 가뭄에 타 죽지 않게 수분을 공급하고, 4월부터 올라오는 꽃자루(마늘쫑)도 제때 잘라주어야 알이 굵은 마늘이 여문다. 그렇게 농사지어 6월에 수확한 마늘과 양파를 가족과 지인들에게 나눠 주는 기쁨은 더할 나위 없다(그 행복과 보람 한 주머니를 얻자고 이 고생을 하는지도 모른다).
다만 이쁘고 튼실한 녀석들을 차례차례 선물하고 나면, 평균치에도 못 미치는 애들만 내 손에 남는다. 조막만 한 양파, 새끼손톱처럼 자잘한 마늘조각들. 응당 내 몫으로 여기며 그 아이들을 살뜰하게 먹었다. 하지만 아픈 몸으로 두어 달을 버티던 작년 여름, 희미한 눈으로 마늘을 까다가 '나 지금 뭐 하는 거지?' 하는 몹쓸 생각과 마주하고 말았다. 마늘과 양파를 심자는 부모님에게 "사 먹는 게 오히려 싸게 먹혀"라고 싸늘하게 대꾸한 건 그때 그 몹쓸 생각의 곁가지였다. 그나마 재작년 겨울 '파테크'라는 신조어까지 탄생시킨 파마저 포기하면 후회할 것 같아서 배추와 무 뽑아낸 밭 한쪽에 대파와 쪽파, 그리고 요맘때 겉절이나 된장국으로 먹으면 그만인 유채 씨를 뿌려두었다.
다시 하지감자와 완두콩을 심어야 하는 봄이 왔다. 겨우내 게으른 농부로 지낸 덕인지, 허벅지 근육이 기분 좋게 긴장되고 몸 곳곳에서 도파민이 분출되는 느낌마저 들었다. 그런데 감자와 완두콩을 심는 내 시선이 자꾸 길 건너 이웃의 밭으로 향했다. 거기, 연두색 마늘과 양파 새순이 봄 햇살 아래 반짝이며 때늦은 아쉬움을 부채질하고 있었다. 평생 농부로 살아온 부모님이 내 마음을 알아챌세라, 감자와 완두콩 파종을 마치자마자 푸릇하게 잘 크고 있는 파와 유채밭 쪽으로 갔다. 손바닥 길이만큼 자라난 유채를 솎아내고, 대파와 쪽파도 섭섭지 않게 뽑아서 서울로 가져왔다.
이거면 됐지 뭐. 들기름으로 바삭하게 부친 파전과 유채 된장국을 먹으며 연신 고개를 주억거렸다. 시간은 다시 또 쏜살처럼 흘러갈 테고, 한번 실수는 병가지상사로 치부하면 그만인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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