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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상 유출, 불법촬영, 2차가해... '집안 싸움' 넘어선 황의조 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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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해자의 명예가 훼손될 수 있으니 재판을 비공개로 전환합니다. 모두 나가주세요.”
지난달 28일 서울중앙지법 법정. 재판부가 분위기가 착 가라앉은 법정의 적막을 깼다. 이날 재판에 ‘피해자’들은 아무도 참석하지 않았다. 그러나 법정 안 모든 사람들은 피해자 중 한 명이 누구인지 알고 있었다. 국가대표 출신 축구선수 황의조(32)였다.
이날 법정에서는 황씨의 사생활 영상이 핵심 증거로서 재생됐다. 판사는 사생활 침해 우려로 방청객 30여 명에게 퇴정을 명했다. 피고인석엔 옅은 초록색 수의를 입은 젊은 여성 이모(33)씨가 고개를 숙인 채 앉아 있었다. 협박, 불법촬영, 2차가해, 수사브로커 개입 등 각종 의혹이 얽히고설킨 황씨 사건의 출발점이 된 이씨는 다름 아닌 그의 친형수였다. 이씨는 1심 선고 직전 혐의를 전부 시인했다.
사건은 10개월 전 시작됐다. 검찰 공소장과 1심 판결문에 따르면, 이씨는 지난해 5월 7일 시동생 황씨를 처음 협박했다. 그는 이날 낮 12시쯤 서울 구로구에 있는 부모님 집에서 피해여성 A씨에게 그가 알몸으로 통화하는 영상을 캡처한 사진을 전송했다. 이때 사용한 건 ‘uijo***’라는 이름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 계정. 그가 보낸 사진 속 통화 상대 황씨에게서 따왔다.
당시 이씨는 국적 등 신원을 숨기기 위해 영어만 썼다. “이거 당신이냐 (Is this you?)”, “황의조는 여자가 많다(Uijo has a lot of girls)”, “사진을 게시할 것이다(I will upload photos)” 등의 메시지를 연달아 보내며 A씨를 몰아붙였다.
같은 날 이씨는 황씨에게도 접근했다. 동일한 계정으로 황씨에게 태연하게 인사를 건넸다. 이번에도 외국인인척 영어를 사용했고, 메시지 수위는 더욱 높아졌다. “영상이 공개되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 아주 재밌을 거야”, “맛보기로 몇 장을 보낸다. 기대해라. 곧 올릴 테니까.” 황씨에게도 마찬가지로 성관계 영상 캡처본을 보냈다.
그로부터 약 한 달 뒤, 협박은 현실이 됐다. 이씨는 그 해 6월 25일 새로운 SNS 계정을 만들어 본인을 ‘황씨의 전 연인’으로 소개했다. 그러면서 황씨의 휴대폰에 수십 명의 여성들을 가스라이팅(심리적 지배)해 수집한 성관계 영상이 있으며, 동의를 구했는지 판단이 어려운 것도 다수 존재한다는 내용의 글을 올렸다. 피해자 B씨 등 여러 여성이 등장하는 총 5개의 성관계 영상을 증거로 게시하기도 했다. 영상은 곧 SNS를 통해 순식간에 퍼져나갔다.
황씨는 폭로 글이 올라온 다음 날 작성자를 정보통신망법 위반(허위사실 적시 명예훼손), 협박 등 혐의로 경찰에 고소하기로 했다. 친형과 형수 이씨와도 논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형 부부는 2019년 7월부터 프랑스, 그리스, 영국 등 황씨가 가는 곳이면 어디든 동행하며 매니저 역할을 했기에 당연한 행동이었다. 이 때까지만 해도 협박범이 형수일 줄, 본인이 불법촬영 혐의로 수사를 받을 줄 꿈에도 몰랐다.
온라인 공간에 숨은 이씨는 돌변했다. 그는 황씨에게 “입장문 잘 봤다. 6월 30일까지 고소 취하하고 사과문 올리면 공개되지 않은 영상들, 공개된 영상 풀버전, 온갖 여자 사진들, 카톡까지 모두 묻어줄게”라며 보복을 암시하는 메일을 보냈다. 이때 B씨의 성관계 영상 캡처 사진과 황씨와 또 다른 여성이 나눈 메신저 대화 캡처본도 첨부했다.
그러나 꼬리가 길면 밟히는 법. 경찰은 협박 메시지를 보낸 계정의 접속 위치를 알 수 있는 인터넷주소(IP)를 확보했다. 이어 IP가 황씨의 동선과 일치한다는 사실을 알아내고, 그의 숙소 폐쇄회로(CC)TV 영상을 분석해 이씨를 용의자로 특정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씨가 본인과 배우자의 휴대폰으로 피해자들을 협박할 때 쓴 영단어를 검색한 사실도 재판 중 드러났다.
재판 내내 이씨는 혐의를 완강히 부인했다. 그의 변호인은 황씨의 임시숙소 내 인터넷 공유기가 해킹돼 다른 사람이 황씨를 협박했을 수 있다고 주장했다. ‘해킹설’은 이내 사그라들었다. 황씨에게 협박 메일을 보낸 계정이 개설됐을 때 쓴 IP는 서울 강남구의 한 네일숍이었는데, 기지국을 조회해보니 당시 이씨가 해당 가게에 머물렀던 사실이 새롭게 밝혀진 것이다.
결국 이씨는 태도를 바꿨다. 모든 혐의를 시인하며 “형 부부의 헌신을 인정하지 않는 시동생을 혼내주고, 다시 우리에게 의지하도록 만들기 위해 범행했다”는 반성문을 재판부에 제출했다. 그는 지난달 28일 열린 4차 공판에 모습을 드러내 “사람들 입에 오르내리는 게 두려워 무작정 부인했다. 반성한다”며 울먹였다.
그러면서도 이씨 측은 영상 배포가 오로지 황씨를 압박하기 위한 목적이었던 만큼, 피해 여성들의 얼굴이 나오지 않는 부분만 편집해 올렸다고 주장했다. 이날 법정에서 황씨와 B씨의 성관계 영상이 재생된 이유 역시 이씨 발언의 진위를 직접 판단하기 위해서였다.
이씨는 1심 선고 전날 2,000만 원을 기습 공탁하며 형량을 줄여보려고도 했다. B씨 측 이은의 변호사는 “재판 직전 공탁이 이뤄져 수령 거절 의견서를 간신히 제출했다. 여차 하면 그대로 양형에 반영됐을 수도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재판부는 이날 징역 3년을 선고했고, 이씨는 불복해 항소했다.
이씨의 백기 투항에도 모든 의문점이 말끔히 해소된 건 아니다. 현재 이씨에게는 B씨와의 성관계를 불법촬영해 입건·송치된 황씨의 혐의를 입증할 증거를 날렸다는 의혹도 있다. 그는 수사단계에서 ‘포렌식 중 사진 및 동영상이 삭제될 수도 있으니 백업을 하겠다’며 휴대폰을 받아간 뒤 초기화 버튼을 누른 것으로 알려졌다. 재판부가 판결문에 “반성의 진정성이 의심된다”고 적시한 이유다.
피해여성 측은 이씨가 검찰 수사가 진행 중인 황씨의 불법촬영 혐의에 대한 ‘밑작업’에 들어간 것으로 보고 있다. 근거는 이씨의 반성문에서 ‘카메라를 바라보는’ 여성의 얼굴이 노출되지 않게 했다고 언급한 부분이다. 휴대폰을 초기화한 탓에 성관계 영상 원본을 본 사실상 유일한 목격자가 된 이씨가 ‘카메라를 인지하지 못했다’고 주장한 B씨를 기망했다는 것이다. 이씨의 변호사는 “(황씨 관련 사건에서) 증거인멸 혐의로 송치된 적은 없다”는 입장이다.
여기에 이번 재판에서 여러 사건 당사자들의 성인지 감수성 결여도 부각됐다. 1심 선고공판에서 재판부는 이씨가 피해여성을 특정할 수 없게 ‘배려’했는지 확인하기 위해 대형스크린에 성관계 영상을 띄웠다. 해당 영상만으로는 특정이 어렵다고 결론냈으나, 피해자의 충격은 컸다. B씨는 “이씨와 그 변호인, 제 변호사까지 모두 저를 알고 있다”며 “재판이 비공개로 전환됐지만 다수가 있는 자리에서 제 벗은 몸의 영상이 개방적 공간에서 왜 ‘함께’ 시청되고 공유돼야 하는지 이해할 수 없다”고 분개했다. 지난해 11월엔 황씨의 변호인이 ‘상대 여성은 기혼 방송인’이라고 피해자의 신원을 누설하는 등 2차가해 혐의로 송치되기도 했다.
불법촬영 등 황씨 본인 관련 수사도 계속 진행되고 있다. 그는 애초 영상 유포 피해자였다가 경찰 수사 과정에서 피해여성의 동의 없이 영상을 찍은 정황이 포착돼 5개월 만에 피의자 신분으로 바뀌었다. 황씨는 “연인 사이 합의된 영상”이라고 줄곧 주장했지만, 경찰은 그를 지난달 8일 성폭력처벌법상 카메라등이용촬영 및 소지 혐의로 서울중앙지검에 불구속 송치했다.
또 황씨 측이 제기한 수사정보 유출 의혹은 서울경찰청 반부패·공공범죄수사대가 조사 중이다. 황씨 측은 지난달 “경찰이 압수수색 정보를 브로커에게 유출했다”며 수사관 기피신청서를 제출했다. 경찰 관계자는 “현재 수사선상에 올라온 사람은 내부 직원과 외부인 몇 명” 이라며 “강제수사나 통신수사를 하는 대상자도 일부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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