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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착이 부른 ‘파국’…대학생 김레아는 어쩌다 참혹한 교제 살인범 됐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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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3일 수원지법은 "이별하자"는 여자친구를 흉기로 살해한 김레아(27)에게 사형을 제외한 형벌 중 가장 무거운 무기징역을 선고했다. 딸이 스러져가는 현장을 목격한 피해자 어머니는 형이 선고되는 순간 털썩 주저앉으며 오열했다. 그 역시 김레아에게 일격을 당한 피해자다. 평범해 보였던 대학생 김레아는 어쩌다 모친이 보는 앞에서 그의 딸을 살해한 흉악범이 된 걸까.
김레아의 살인 및 살인미수 1심 판결문에 따르면, 그는 2023년 11월쯤 경기도의 한 대학교에 편입하면서 같은 편입생이었던 A씨를 알게 됐다. 김레아는 함께 조별 과제를 하다 가까워진 A씨와 그해 말쯤 교제를 시작했다. 이듬해 1월엔 학교 인근에 오피스텔을 얻어 피해자와 함께 생활했다. 당시 김레아는 또래 대학생처럼 평범하게 아르바이트를 하며 학교를 다녔다.
그가 돌변한 건 두 달이 채 지나지 않아서다. A씨가 학교 친구들과 통화하는 것을 보고는 남자관계를 의심해 과거사까지 들춰내며 집착하기 시작했다. 간섭하는 것을 넘어 친구들과 전화 통화할 땐 스피커폰으로 통화하게 하며 통화 내용까지 감시했다.
그의 편집증적인 행동에 A씨는 항의했으나 상황은 나아지지 않았다.
급기야 집착은 폭력으로 번졌다. A씨와 말다툼을 벌이던 김레아는 피해자의 휴대폰을 던져 부수고, 2024년 3월 중순쯤엔 A씨의 양팔에 커다란 멍이 들 정도로 주먹으로 수차례 때렸다. 참다못한 A씨가 “헤어지자”고 하자 이번엔 “너 죽이고, 너의 주변 사람들도 죽여버리겠다”고 소리치며 협박했다. A씨가 학교 수업이 없는 주말에 부모가 사는 집으로 가는 것까지 막아서는 등 그의 통제는 날로 심각해졌다. 이를 안 피해자 모친이 “주말엔 딸 좀 집에 보내 달라”고 항의하자 겉으로는 “죄송하다”고 말한 뒤 이에 앙심을 품고 재차 피해자 목을 조르는 등 폭력의 강도를 높였다. 이별을 요구하는 A씨에게 “마지막 화려하게 장식해야겠어”라는 내용의 메시지를 보내는가 하면 집에 있는 인형을 마치 피해자인 것처럼 다루며 흉기로 계속 찌르는 등 위협했다. 폭군이나 다름없었다.
파국으로 치달은 건 같은 달 25일. A씨는 스토킹 수준의 집착을 보이는 김레와와 헤어지기 위해 엄마 B(46)씨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김레아가 아르바이트를 위해 오피스텔을 비운 틈을 타 이날 오전 모친과 함께 짐을 뺐다.
이 과정에서 딸 몸에 든 멍을 발견한 B씨는 충격적인 얘기를 들었다. 딸이 김레아와 결별하지 못하고 있는 이유가 “나체 사진을 유포하겠다. 다 죽일 거다”라는 협박 때문인 사실을 알게 된 것. 그는 ‘나체 사진 등을 유포하지 않겠다’는 합의서를 받기 위해 딸과 함께 김레아의 오피스텔 밖에서 그를 기다렸다.
같은 날 오전 9시쯤 귀가한 김레아는 집 앞에서 기다린 모녀를 집 안으로 들였다. 짐이 없는 것을 보고는 이별을 직감한 그는 B씨가 “왜 내 딸을 때렸느냐”며 나무라자 주방에 있던 흉기로 A씨의 목과 가슴 부위를 여러 차례 찔렀고, B씨가 이를 말리는 사이 집 밖 복도로 도망간 A씨를 뒤쫓아가며 “내 것이 안 되면 죽어야 해”라고 외치며 다시 흉기를 휘둘렀다. 자신의 옷자락을 붙들고 끝까지 저항하던 B씨의 얼굴, 등, 옆구리 등도 흉기로 수차례 찔렀다.
그의 잔혹한 범행으로 A씨는 현장에서 숨졌고, B씨 역시 전치 10주간의 치료가 필요한 중상을 입었다.
수원지검 사행행위·강력범죄 전담부는 지난 4월 15일 김레아를 살인과 살인미수 혐의로 구속 상태에서 재판에 넘겼다.
하지만 김레아는 수사에서 재판까지 꽃다운 20대 대학생의 목숨을 앗아가고 한 가정을 파탄으로 내몬 데 대해 참회하기보다는 자신을 방어하는데 몰두했다. 검찰이 4월 범행의 중대성과 잔인성 등을 고려해 그의 이름과 나이, 얼굴 사진인 머그샷(범죄자 인상착의 기록 사진)을 공개하자 법원에 신상정보 공개결정 집행정지를 신청하며 이를 막으려 했다. 법원이 이를 기각하면서 그의 얼굴은 세상에 알려졌다.
재판에선 범행 당시 심신미약 상태였으며 계획적 범행이 아닌 우발적 범행이라고 주장했다. 김레아 변호인은 “피고인은 우울증, 공황장애 등을 앓고 있는 상태에서 범행을 저질렀고, 범행 직전엔 게보린 알약 2, 3정과 소주 1병을 마셔 심신미약 상태였다”고 변명했다. “피해자 모친이 자신을 향해 먼저 흉기를 흔들어 보이며 위협해 우발적으로 범행에 이르게 됐다”고 범행의 동기를 피해자 측에 떠넘기기도 했다.
재판부는 이런 주장을 모두 받아들이지 않았다. 재판부는 “피고인은 피해자들을 밖으로 나가기 어렵게 방 안쪽에 앉혔고, 본인은 현관 통로 쪽 주방 싱크대에 앉았다”며 “이후 흉기로 정확하게 목 부위를 찔렀고, 범행 후 119 신고를 직접 요청한 것을 보면 심신미약한 상태는 아닌 것으로 보인다”고 판단했다. 이어 “이별을 통보받고 살해 의사를 품는 등 계획범행으로 보는 게 타당하다”고 판시했다.
피해자 모친이 먼저 흉기를 손에 잡았다는 주장도 근거가 없다고 봤다. 재판부는 “증거들을 종합하면, 피고인은 피해자와의 이별을 되돌릴 수 없다고 직감, 살해 의사를 확고히 한 뒤 범행을 실행에 옮긴 것으로 보인다”며 “피해자 모친이 흉기를 휘두른 것이 아니라 피고인이 이들과의 대화 중 흉기를 집어 들고 수차례 찔렀다고 보는 게 맞다”고 김레아의 주장을 배척했다. 모친 역시 재판 내내 “제가 흉기를 잡은 적이 없다”고 일관되게 진술했다.
재판부는 선고공판에서 “계획 범행이라 양형요소가 없고, 범행 수법과 결과가 극도로 잔인했고 참혹했다”며 “범행을 반성하고 있는지도 의문이다”라고 그에게 무기징역형을 선고하고, 형 집행 후 5년간 보호관찰도 명령했다. 김레아는 이에 불복, 항소했다.
전문가들은 흉악 범죄자로 전락한 김레아의 집착성향에 주목한다. 재판에서 김레아에 대한 정신감정을 의뢰받은 감정의는 “대인관계가 협소한 만큼 연인에게 몰두했던 것으로 보인다. (연인과의) 관계 단절에 대한 불안감과 두려움으로 상대방을 통제하고 집착하며 관계 단절이 예상되면 강력한 분노감을 경험하고, 공격적으로 행동했던 것으로 같다”고 진단했다. “자존감이 낮아 타인의 부정적인 언행에 대해 무가치함이나 분노감을 느낀다”고도 했다. 하지만 이런 비뚤어진 성향 자체가 범행 동기에 참작할 만한 사정이 되는 것은 아니라고 선을 그었다. 감정의는 “범행 당시 현실 검증력, 판단력이 건재해 심신미약 상태는 아니었다”고 판단했다.
그의 집착에 기반한 공격적 성향은 과거에도 드러났다. 판결문에 따르면 김레아는 이 사건 범행 전 수년간 교제했던 C씨에게도 과도하게 집착하며 폭행과 협박을 저질렀다. 그는 당시 C씨가 클럽에 가고 다른 남자를 만났다는 이유 등으로 화를 내며 C씨를 폭행하고 휴대폰을 부쉈고, 이별을 통보받자 “성관계 영상을 유포하겠다”고 협박했다.
사망에 이른 A씨에게 가했던 범행의 수법과 과정이 무섭게 닮아있다. 당시 김레아는 협박, 폭행, 재물손괴 혐의로 경찰에 입건됐으나 수사 개시 후 여자친구와 합의했다는 이유로 별다른 처벌을 받지 않았다. 협박과 폭행 혐의는 불송치 처분(공소권 없음)을, 재물손괴 혐의 역시 기소유예 처분을 받았다.
이수정 경기대 범죄심리학과 교수는 “편집증적인 집착이 강한 사람의 경우 자기 뜻대로 되지 않으면 즉각 격분해 폭력적인 성향을 드러낸다”며 “약점을 잡아 협박해도 혼자 해결하기보다는 경찰 등 공권력에 적극적으로 신고해 피해자 보호를 받는 게 최선의 방법”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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