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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의대 ‘무늬만 증원’ 500명 이상… 수련 맡을 서울 대형병원만 이득 보나

입력
2024.03.22 04:30
수정
2024.03.22 22:18
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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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산대·성대 등 '무늬만 지역의대'
주소지는 지역, 교육·실습은 서울
지역의대 완전한 지역화 선결돼야

21일 대구 한 대학병원에서 의료진이 이동하고 있다. 연합뉴스

21일 대구 한 대학병원에서 의료진이 이동하고 있다. 연합뉴스

정부가 내년부터 늘어나는 의대 신입생 정원 2,000명 중 82%(1,639명)를 비수도권 의대에 배정했지만, 정작 교육과 실습은 수도권 지역 부속ㆍ협력병원에서 하는 ‘무늬만 지역의대’들이 대거 혜택을 받아 지역의료 강화 취지에 어긋난다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수도권 병원에서 공부한 지역의대 졸업생이 지역으로 다시 돌아가 정착할 가능성은 매우 낮기 때문이다. 의대 증원이 지역의사 양성으로 이어지려면 지역에서 교육과 수련이 모두 이뤄질 수 있는 기반을 조성하고 ‘지역의대의 완전한 지역화’가 선결돼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21일 의료계에 따르면 비수도권 사립 의대 상당수가 수도권에 교육병원을 두고 있다. 경북 경주 동국대 의대(동국대일산병원), 충남 아산 순천향대 의대(순천향대서울병원, 순천향대부천병원), 강원 강릉 가톨릭관동대 의대(인천 국제성모병원), 대전 을지대 의대(노원을지대병원, 의정부을지대병원), 경기 포천 차의과대(분당차병원) 등이다. 경기 수원 성균관대 의대(삼성서울병원, 강북삼성병원)와 울산시 울산대 의대(서울아산병원), 충북 충주 건국대 의대(건대병원), 강원 춘천 한림대 의대(성심병원) 등은 병원이 서울에 있어 ‘서울 소재 의대 증원 0명’이라는 정부 설명과 달리 실상은 서울 지역 증원이나 다름없다는 해석도 있다.

이들 9개 의대에서 늘어나는 정원을 합치면 523명에 이른다. 전체 증원분의 26% 규모다. 특히 5대 상급종합병원(빅5 병원)에 속하는 서울아산병원과 삼성서울병원을 각각 교육병원으로 둔 울산대 의대와 성균관대 의대는 정원이 40명에서 120명으로 3배나 늘었다. 병원 입장에선 향후 의사 수급이 훨씬 수월해지는 셈이다. 정형준 보건의료단체연합 정책위원장은 “경증환자까지 빨아들여 ‘수도권 쏠림’을 유발한 책임이 있는 대형병원들만 결과적으로 배를 불리는 상황이 됐다”고 지적했다.

정부가 의과대학 증원 2,000명 배분 결과를 발표한 20일 오후 대구 한 의대 강의실이 학생들의 동맹 휴학 탓에 텅 비어 있다. 뉴스1

정부가 의과대학 증원 2,000명 배분 결과를 발표한 20일 오후 대구 한 의대 강의실이 학생들의 동맹 휴학 탓에 텅 비어 있다. 뉴스1

지역의대가 수도권 병원에서 실습을 하는 것은 규모, 시설, 의료진이 지역보다 우수하기 때문이다. 이들 의대 학생들은 6년 교육 과정 중 1~2년 정도만 본교에서 교양 강좌와 이론 수업을 듣고 대부분의 시간을 병원과 교육장이 있는 수도권에서 보낸다. 자연스럽게 졸업 이후 전공의 수련도 서울에서 하게 되는데 이렇게 되면 의사로 정착하는 곳도 서울이기 쉽다. 실제로 국회 교육위원회 서동용(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이 교육부 자료를 분석한 결과 2021년 의대 졸업생 가운데 가톨릭관동대 80%, 한림대 79.5%, 울산대 76.3%, 순천향대 75.9%가 수도권에 취업한 것으로 조사됐다. 지역의대가 완전히 지역화되지 않으면 더 많은 의대 졸업생이 수도권으로 향하는 부작용을 초래할 가능성이 크다.

정부도 지역 인재가 지역에서 공부하고 수련받은 뒤 지역 의료기관에서 일할 수 있는 유기적인 체계가 필요하다는 문제인식은 갖고 있다. 박민수 보건복지부 2차관은 이날 중앙사고수습본부 브리핑에서 “대학들로부터 증원 신청을 받을 때 지역에서 교육과 수련을 하기 위한 계획을 함께 요구했고 그 계획을 평가해 인원 배정을 했다”며 “향후 교육현장에서 계획이 제대로 이행되는지 점검ㆍ지도하고 정부도 필요한 지원을 해 나가겠다”고 설명했다.

의대 정원이 크게 증가한 만큼 전공의 정원도 그에 맞춰 늘릴 계획이다. 박 차관은 “내년도 입학생이 졸업하려면 6년 정도 걸리는 만큼 그때까지 현장 수련 여건을 감안하며 미리 준비하겠다”고 했다. 지역별 전공의 배분 비율도 수도권 60%, 비수도권 40%에서 올해 55% 대 45%로 조정한 데 이어 내년엔 50% 대 50%으로 재조정을 추진한다.

하지만 의사 확충은 지역의료 강화를 위한 필요조건이지 충분조건은 아니다. 의사들이 지역에 자리 잡을 수 있는 기반 마련이 뒤따라야 한다. 정부는 국립대병원 전임교원을 2027년까지 1,000명 이상 확대하기로 했지만, 사립대병원에 교원 충원을 강제할 수는 없다. 장학금과 수련비용, 교수 채용 등 경제적 지원을 조건으로 지역 의료기관에서 근무하는 계약형 필수의사제 도입도 추진되고 있지만 강제력이 없어 한계가 있다. 남은경 경제정의실천연합 사회정책국장은 “의료취약지 의료공백을 해소하려면 지역의대 졸업생을 지역에 어떻게 배치할지 더 세밀한 계획이 필요하다”며 “지역의대에서 학생을 선발할 때부터 의사면허 취득 후 일정 기간 지역에서 의무적으로 일하도록 하는 지역의사제를 도입하고 위반 시 면허 제한 같은 벌칙 규정을 마련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김표향 기자
손현성 기자
홍인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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