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보

단독

재취업, 여행, 아르바이트... 집단사직 한 달, 전공의들은 지금

입력
2024.03.20 04:30
10면
구독

복귀는 아직... 재충전하며 사태 추이 주시
취업전선 뛰어들기도, "정부엔 굴복 안 해"
부정적 여론 탓 취재 거부 등 폐쇄성 강화
정부, 업무개시명령 송달... 사법처리 시작

의대 교수들의 집단사직 움직임까지 거세지는 가운데 19일 대구의 한 대학병원 1층 로비에 '의사 선생님 환자 곁을 지켜주세요'라고 적힌 쪽지가 붙어 있다. 대구=뉴시스

의대 교수들의 집단사직 움직임까지 거세지는 가운데 19일 대구의 한 대학병원 1층 로비에 '의사 선생님 환자 곁을 지켜주세요'라고 적힌 쪽지가 붙어 있다. 대구=뉴시스

신앙생활, 과외, 아르바이트, 재취업.

정부의 의대 증원 정책에 반발해 전국 전공의들이 병원을 떠난 지 19일로 한 달이 됐다. 법적 처벌 시간표가 다가오는데도 대다수는 아직 복귀할 생각이 없다. 2,000명이란 증원 숫자를 두고 타협 지점이 전혀 보이지 않는 탓에 교수들까지 사직 행렬에 가세하는 등 의정 갈등은 외려 확산일로다.

이번 사태를 촉발한 전공의들은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 한 달이란 시간은 이들의 일상에도 많은 변화를 가져왔다. 투쟁 장기화를 각오하고 재충전의 시간을 보내거나 입대를 고려하는 전공의가 있는가 하면, 생계를 외면할 수 없어 재취업에 나선 이도 있다. 공통점은 있다. 압도적인 비판 여론을 의식한 탓인지 외부 접촉을 꺼리고 더욱더 그들끼리 뭉치는 모습이 엿보였다. 사태 해결이 점점 더 멀어지고 있다는 뜻이다.

오랜만에 휴식하지만... 생계 어쩌나

전공의 집단사직 한 달이 된 19일 오전 서울의 한 대형병원에서 의료 관계자와 환자 가족이 대화하고 있다. 연합뉴스

전공의 집단사직 한 달이 된 19일 오전 서울의 한 대형병원에서 의료 관계자와 환자 가족이 대화하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달 사직서를 제출한 지방의 한 대학병원 2년 차 내과 전공의 A씨는 간만에 편하게 쉬고 있다. 격무에서 벗어나 교회에 나가고 평일 예배에도 참석한다. 그에게는 신앙이 불안감을 상쇄하는 버팀목이다. 하지만 교회에서조차 다른 신도들의 마뜩잖은 눈빛이 느껴진다. A씨는 "주변에서 손가락질을 하는 것 같아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지 모르겠다"며 혼란스러워했다.

그처럼 병원을 떠난 전공의 다수는 휴식을 취하며 사태 추이를 지켜보는 중이다. 여행, 운동, 아르바이트 등 새로운 경험을 통해 파업 종료 이후를 대비하고 있다. 서울 한 대학병원 전공의 B씨는 "가끔은 젊은 교수나 전임의 선배들을 만나 조언을 듣기도 한다"며 "결국 내년에 입대를 택하지 않겠느냐는 말이 많이 나온다"고 했다. 류옥하다 전 가톨릭중앙의료원 인턴대표는 통화에서 "자신만의 시간을 보내며 지난 삶을 되돌아보는 전공의가 많다"면서 "정부와 의사, 환자 사이 신뢰관계가 완전히 무너져 환자를 살리겠다는 의욕도 사라졌을 것"이라고 말했다.

정부와 타협은 안 해도 눈앞에 닥친 생계는 이들도 어쩔 수 없다. 이달 초 개설된 서울시의사회 구인구직 게시판에는 일자리를 구한다는 글이 300건 가까이 올라왔다. 일하던 수련병원을 떠나 아예 진로를 틀겠다는 것이다. 병원 측이 게재한 구인 글도 속속 확인된다.

비판 여론에 장벽 더 높인 '그들만의 리그'

19일 서울의 한 대학병원을 찾은 시민이 의자에서 고개를 숙인 채 진료 순서를 기다리고 있다. 연합뉴스

19일 서울의 한 대학병원을 찾은 시민이 의자에서 고개를 숙인 채 진료 순서를 기다리고 있다. 연합뉴스

전공의들은 시간이 지날수록 폐쇄적으로 변하고 있다. 대한의사협회 등 의료계 수뇌부의 계속된 선전전에도 공감하는 여론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언론 인터뷰도 극도로 꺼린다. 실제 일부 전공의 단체 메신저 등에는 취재에 응하지 말라는 행동강령이 공유되고 있다. 전공의 C씨는 "여론이 좋지 않아 무슨 말을 해도 먹히지 않는다"면서도 "의사를 매도하는 포털 댓글을 보면 화가 치밀어 직접 반박하는 정도"라고 말했다.

스승이자 의료현장을 지키는 교수들과의 거리까지 멀어졌다. 서울의 한 의대 교수는 "전공의, 전임의 등 제자들이 일반병원에 취업하려 한다는 얘기를 많이 듣지만, 섣불리 접촉했다가 파업을 사주했다는 말이 나올까 봐 안부문자 하나 보내기도 힘들다"고 토로했다.

정부도 요지부동이다. 보건복지부는 전날 전공의 1,308명에게 업무개시명령을 공시 송달하면서 사법 처리의 시작을 알렸다. 퇴로 없는 전방위 압박에 의료계 반발이 더 거세진 건 물론이다. 김미나 울산대 의대 교수협의회 비대위원장은 "(정부의 강경 대응으로) 필수의료과 전공의일수록 돌아올 마음이 점점 더 사라지고 있다"며 "이런 상황이 지속되면 일말의 복귀 가능성마저 완전히 없애버릴 가능성이 큰 만큼 최소한의 중재안을 마련해 달라"고 호소했다.

김재현 기자
이서현 기자
이유진 기자
오세운 기자
서현정 기자

댓글 0

0 / 250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

기사가 저장 되었습니다.
기사 저장이 취소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