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대 증원에 묻힌 의협 회장 선거… 강경파 일색, 대정부 협상력 '의문'

입력
2024.03.19 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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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협 회장 선거에 5명 출마
강경파 4명 "의대 증원 저지"
투쟁 일변도에 의사도 염증
의협 개혁론 후퇴할라 우려

9일 오후 서울 용산구 대한의사협회 회관에서 열린 제42대 의협 회장선거 후보자 합동토론회에서 후보자들이 발언을 하고 있다. 박명하(왼쪽부터 기호순), 주수호, 임현택, 박인숙, 정운용 후보. 뉴시스

9일 오후 서울 용산구 대한의사협회 회관에서 열린 제42대 의협 회장선거 후보자 합동토론회에서 후보자들이 발언을 하고 있다. 박명하(왼쪽부터 기호순), 주수호, 임현택, 박인숙, 정운용 후보. 뉴시스

의대 증원에 반발하는 전공의 집단행동이 한 달째 이어지는 상황에서 대한의사협회(의협)가 새 수장을 뽑는다. 후보자 다수가 보수 성향 강경파라 누가 당선되든 대정부 투쟁 수위를 높일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다만 전공의들이 의협과 별개로 움직이는 데다 의협이 의사들 사이에서도 신뢰를 잃어 협상력을 확보할 수 있을지 의문부호가 붙는다.

18일 의료계에 따르면 의협은 20~22일 사흘간 전자투표 방식으로 42대 회장 선거를 치른다. 과반 득표자가 나오지 않으면 다득표자 2명을 놓고 25, 26일 결선투표를 진행해 당선자를 가린다. 후보는 △박명하 서울특별시의사회장 △주수호 미래의료포럼 대표(35대 의협 회장) △임현택 대한소아청소년과의사회장 △박인숙 업그레이드의협연구소 대표(전 국회의원) △정운용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 부산경남지부 대표 등 5명이다.

이들 가운데 의대 증원에 원칙적으로 찬성하는 사람은 온건·소수파인 정운용 후보뿐이다. 강경파로 분류되는 네 후보는 현재 의협 비상대책위원회에서 분과위원장으로 활동하면서 의대 증원 저지에 앞장서고 있다. 박명하, 주수호, 임현택 등 세 후보는 전공의 집단 사직 사태를 공모·방조한 혐의로 경찰 수사를 받는 중이다. 주 후보는 2016년 음주운전 사망사고를 낸 사실이 알려져 논란이 되기도 했다.

의협은 의사면허를 취득하면 자동으로 가입되는 법정단체다. 현재 신고 회원 수는 약 13만8,000명, 선거인은 그중 42%인 5만8,000명가량이다. 선거권은 최근 2년간 연회비를 납부한 회원에게 주어진다. 강제력이 없는 회비를 자발적으로 낼 만큼 의협에 우호적인 의사들이 투표를 하기 때문에 그동안 줄곧 강경파가 권력을 잡았다.

이번 선거도 마찬가지다. 15일 열린 마지막 합동 토론회에서 후보들은 “의료계 저항운동을 이끌겠다” “기필코 의대 증원을 막아내겠다”며 정부를 향해 칼끝을 겨눴다. 이날 경찰 출석으로 토론회에 불참한 임 후보도 경찰서를 나서며 “의협 회장에 당선되면 전국 의사 총파업을 주도하겠다”고 선언했다. 실제로 강경파 후보들이 당선 가능성도 높은 것으로 관측된다. 올 초 대한병원의사협의회가 실시한 예비후보 선호도 조사에선 임 후보가 43.4%, 주 후보가 21.6%로 1, 2위였다.

서울대 의대 교수들이 18일 오후 서울대 어린이병원에서 사직서 제출 논의를 위한 총회를 마치고 이동하고 있다. 뉴시스

서울대 의대 교수들이 18일 오후 서울대 어린이병원에서 사직서 제출 논의를 위한 총회를 마치고 이동하고 있다. 뉴시스

하지만 새 회장이 총파업을 강행한다 해도 의협 내 주류인 개원의들이 얼마나 참여할지는 불확실하다. 2020년 의사 파업 당시 개원의 참여율은 한 자릿수에 그쳤다. 더구나 의협이 국민 신뢰를 잃은 탓에 내부 지도력과 대정부 협상력을 제대로 발휘하기 힘들 것이란 회의적 시각도 적지 않다. 전공의들은 “자발적 사직”이라고 주장하며 의협이 개입할 여지를 사실상 차단했고, 의사들이 협상보다 투쟁만 부르짖는 의협에 염증을 느낀다는 얘기도 곳곳에서 들려온다.

일각에선 의협 회장 선거가 의대 증원 논쟁에 묻히고 있다는 점을 우려하기도 한다. 이번 사태를 계기로 의협이 전공의, 전임의, 전문의 등 다양한 직역을 두루 대변할 수 있는 단체로 변모해야 한다는 여론이 형성됐지만, 의사들 무관심에 의협 개혁론마저 후퇴할 수 있다는 것이다. 2003년부터 부산 노숙인 진료소 소장을 맡고 있는 정운용 후보는 “의료체계가 안정적으로 유지되려면 공공의료 강화, 수가 개선, 의료전달체계 개편, 의사 증원 등 일대 개혁이 불가피하다”며 “의사들이 의료 정책에 대해 목소리를 내고 국민을 설득할 수 있으려면 의협이 권익단체가 아니라 민주적인 전문가단체로 거듭나야 한다”고 지적했다.

김표향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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