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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황 '우크라 백기' 발언 여진… 서방 맹비난에 대사 초치도

입력
2024.03.12 15:22
수정
2024.03.12 15:30
1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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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황청 "대화 중요성 강조" 해명에도...
"교황에게 실망" "말도 안 된다" 비판

볼로디미르 젤렌스키(오른쪽)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지난해 5월 바티칸을 방문해 프란치스코 교황과 악수하고 있다. 바티칸=로이터 연합뉴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오른쪽)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지난해 5월 바티칸을 방문해 프란치스코 교황과 악수하고 있다. 바티칸=로이터 연합뉴스

프란치스코 교황이 9일(현지시간) 러시아와 전쟁 중인 우크라이나에 '백기 협상'을 권하는 듯한 발언을 한 뒤 여진이 계속되고 있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땅 일부를 점령한 채 전쟁을 멈춘다'는 구상은 러시아가 바라는 것이라는 지적 때문이다. 우크라이나는 물론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및 유럽 국가들은 교황 발언이 부적절하다며 연일 핏대를 세우고 있다.

우크라 "교황청 대사 초치... 교황에 실망"

우크라이나 외무부는 11일 성명을 통해 비스발다스 쿨보카스 우크라이나 주재 교황청 대사를 초치했다는 사실을 공개하면서 "백기를 드는 용기를 내 침략자(러시아)와 협상해야 할 필요성을 언급한 교황에게 실망했다는 뜻을 전했다"고 밝혔다.

앞서 교황은 전날 공개된 스위스 공영 방송 RTS 인터뷰에서 '우크라이나에서 일부 국민은 백기를 들고 항복할 용기를 요구하는데 어떻게 생각하나'라는 질문을 받고 "백기를 들 용기를 갖고 협상에 나서는 사람이 더 강한 사람이다"라고 답했다. 이 발언은 '우크라이나가 러시아에 항복해야 한다'는 뜻으로 해석돼 비판을 받았다. 교황청 공보실은 교황이 '백기'라는 용어를 사용한 것은 진행자의 발언을 그대로 이어받았기 때문이며 궁극적으로 강조하고 싶었던 부분은 '대화의 중요성'이라고 즉각 해명했지만 논란은 그치지 않고 있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10일 "살고자 하는 사람과 누군가를 죽이는 사람을 중재하려면 2,500㎞ 떨어진 곳에 있어서는 안 된다"고 지적했다. '전쟁의 비극을 직접 겪지 않는 사람이 함부로 발언해서는 안 된다'며 교황을 우회적으로 비판한 것이다. 드미트로 쿨레바 우크라이나 외무부 장관은 10일 사회관계망서비스(SNS) 엑스(X∙옛 트위터)에 우크라이나 국기를 올린 뒤 "우리는 다른 어떤 깃발도 올리지 않을 것"이라고 쏘아붙였다.

서방도 '분노'... 러시아는 '반색'

교황에 대한 항의는 우크라이나 바깥에서도 이어졌다. 옌스 스톨텐베르그 나토 사무총장은 11일 "우크라이나의 항복은 평화가 아니다"라며 "이 전쟁을 시작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오늘이라도 전쟁을 끝낼 수 있지만 우크라이나에는 그런 선택지가 없다"고 말했다. 라도슬라프 시코르스키 폴란드 외무부 장관은 "(교황은) 푸틴에게 자국군을 우크라이나에서 철수할 용기를 가지라고 독려하는 것이 어떤가"라고 비꼬았다. 독일 등에서도 "이해할 수 없는 발언"(아날레나 베어보크 독일 외무부 장관) 등의 비판이 나왔다.

서방이 일제히 흥분하자 러시아는 반색했다. 드미트리 페스코프 크렘린궁 대변인은 11일 "푸틴 대통령도 '협상을 통해 문제를 해결할 준비가 됐다'고 여러 번 말했지만 우크라이나로부터 거부당했다"고 말했다. 마리야 자하로바 러시아 외무부 대변인은 "교황이 서방에 야망을 버리고 잘못을 인정하라고 요구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베를린= 신은별 특파원
권영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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