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꼰대 같지 않은 꼰대를 기다리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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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보통은 남자)은 나이가 들면 '꼰대'가 되기 쉬운 것 같다. 말이 많아지고 특히 젊은 세대를 상대로 한 불평과 훈계조의 말이 늘어난다고 한다. 법조계에선 50대 남성 로펌 대표는 무소불위의 꼰대라는 말이 있기도 하다.
그러나 아래에 언급하는 꼰대의 어원에서도 알 수 있는 것처럼, 나이 든다고 다 꼰대가 될 수 있는 건 아닌 듯하다. 꼰대의 어원에 관해서는 여러 설이 있지만 프랑스 말 'comte'(꽁떼, 백작이라는 뜻)에서 유래했다는 견해가 유력하다. 식민지 시절 일제가 이완용 등에게 작위를 수여하자 그들이 이를 자랑스럽게 여겨 스스로 꽁떼라고 칭했고 사람들이 '뒷담화' 등에서 이를 비꼬며 일본식 발음 꼰대라고 불렀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꼰대는 지위든, 돈이든, 지식이든, 도덕적 감화력이든 상대로 하여금 적어도 면전에서는 자기 말을 듣도록 하는 사회적 영향력이 있어야 성립하는 것 같다. 그렇지 않다면 아무리 나이가 많고 말이 많더라도 무시하고 안 들으면 그만이고 특별히 꼰대라고 부를 리도 없을 테니까 말이다. 그렇다면 꼰대는 소수의 특권(?)이고 모름지기 이 특권을 피할 수 없는 위치에 있는 이들은 최대한 꼰대 같지 않은 꼰대가 되는 것이 최선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해본다.
꼰대와 비슷한 느낌의 말로 '나 때는 말이야'에서 유래한 '라떼'가 있다. 꼰대가 전통적인 다방커피 느낌이라면 라떼는 말 그대로 요즘 커피숍의 카페라떼 느낌이 난다. 다방커피나 카페라떼나 둘 다 본질은 커피인 것처럼, 꼰대나 라떼도 좀 더 직설적이고 노골적인지, 좀 더 연성이고 우회적인지의 차이만 있을 뿐 생의 시간과 경험의 차이에 기반한 갑질이라는 점에서는 별 차이가 없는 것 같다.
이처럼 우리 사회 젊은 세대의 입에서 꼰대, 라떼 같은 말이 거듭 회자되는 것은 역설적으로 어른다운 어른, 열린 시니어에 대한 갈망이 크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꼰대와 라떼 같은 말은 이러한 갈망을 에둘러 표현한 것 같기도 하다.
최근 인상적으로 읽은 책이 두 권 있는데, 손흥민 선수의 아버지 손웅정 감독의 '모든 것은 기본에서 시작한다'와 '최강야구'의 야신 김성근 감독의 '인생은 순간이다'가 그것이다. 뭐 달리 특별한 내용이 있는 것도 아니다. 인생에서 '기본'과 '순간'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자기계발서에서 흔히 봄직하고, 어찌 보면 매우 '꼰대스러운' 글로 가득 차 있다. 그런데 전혀 '꼰대스럽게' 읽히지 않는다. 왜 그럴까?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각각 축구와 야구에 미쳐 있고 그 외의 삶은 단순, 소박 그 자체이며, 재능 못지않게, 아니 어쩌면 재능보다도 더 태도와 자세를 중요시하고, 말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혼신을 다해 놀랍고 분명한 성취와 결과물을 만들어내지만 그 성취와 결과물에 대해 지극히 겸손하며, 시선은 늘 다음과 미래의 성장을 향하고 있는 두 사람의 담박한 삶의 모습과 철학이 어떤 울림을 만들어 내기 때문이 아닐까 한다.
고령화로 노인층의 절대적 인구 수나 상대적 인구비율은 갈수록 증가하는데, 홍수 때 정작 마실 물은 없다고, 꼰대 같지 않은 꼰대는 잘 찾아보기 어려운 것 같다. 아무쪼록 두 사람같이 자신의 과거에 갇히지 않고 미래지향적인 꼰대 같지 않은 꼰대가 여기저기에서 출현하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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