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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랭 들롱 보디가드의 의문사… 유명 배우·조폭·정계까지 연루 의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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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드케이스(cold case)’는 오랜 시간 미해결 상태로 남아 있는 범죄사건을 뜻하는 말로, 동명의 미국 드라마로도 잘 알려져 있습니다. <한국일보>는 격주 금요일 세계 각국의 미제사건과 진실을 쫓는 사람들의 노력을 소개합니다.
"알랭 들롱이 왔다!"
1969년 1월 23일 프랑스 파리의 한 경찰서 앞. 취재진과 행인들이 한순간에 뒤엉켰다. 프랑스 영화배우 알랭 들롱(당시 33세)이 모습을 드러낸 순간이었다. 쉴 새 없이 카메라 플래시가 터졌다. 영화 '태양은 가득히'(1960), '한밤의 살인자'(1967) 등으로 세계적 스타 반열에 오른 들롱은 취재진에게 "심한 감기에 걸렸지만, 출석해야겠다고 생각했다"는 말을 남기고 경찰서 안으로 들어갔다. 전날 12시간 동안 조사를 받은 데 이어, 이날도 꼬박 24시간 조사가 예정돼 있었다.
들롱을 강도 높은 경찰 조사로 몰고 간 건 한 줄의 메모였다. "내가 죽는다면, 그건 순전히 알랭 들롱과 프랑수아 마르칸토니 때문이다." 쓰레기 더미에서 싸늘한 주검으로 발견된 그의 경호원이 남긴 문장이다. 프랑스에서 가장 유명한 배우와 범죄 조직, 이후 프랑스 정계 인사들까지 줄줄이 연루됐다는 의혹이 불거졌으나, 살인 사건 발생 반세기가 넘도록 범인을 찾지 못한 '마르코비치 사건(The Markovic affair)'의 본격적인 시작이었다.
이때로부터 3개월여 전인 1968년 10월 1일, 프랑스 중북부 이블린주 베르사유 인근 마을의 한 공공 쓰레기장에 부패한 시신이 있다는 신고가 들어왔다. 낡은 자루에 몸이 묶인 시신은 건장한 체격의 남성이었다. 유고슬라비아(현 세르비아) 출신의 불법 이민자 스테판 마르코비치(사망 당시 31세), 불과 얼마 전까지 들롱의 개인 경호원으로 일했던 인물이었다. 뒤통수에는 38구경 권총에 의한 총상이 있었다. 크고 끝이 뭉툭한 둔기로 온 몸을 가격당한 흔적도 발견됐다.
사건 초기 프랑스 언론들은 마르코비치의 '난잡한' 사생활에 주목했다. 폭력과 절도 등으로 교도소를 드나들던 그는 이후 스턴트맨, 사진작가 등의 생활을 하며 영화계에 발을 내디뎠다. 우연한 기회로 들롱의 경호원 생활을 시작한 뒤에는 프랑스 정계를 비롯, 상류층 유명 인사들을 대상으로 한 유흥 파티를 조직했다는 게 당시 현지 매체들의 설명이다. 그들의 흐트러진 모습을 몰래 촬영해 돈을 요구하며 협박을 일삼는가 하면, 신문사에 사진을 팔아 넘기려고 했다는 내용의 보도가 잇따랐다. 그를 없애고 싶어한 적(敵)이 많았을 것이라는 추측이 가능한 대목이다.
마르코비치 시신이 발견된 지 며칠이 지났을까. 그의 형은 생전 동생이 남긴 편지 몇 장을 경찰에 제출했다. 그중 짤막한 메모 한 줄이 경찰의 눈을 사로잡았다. "내가 살해당한다면, 그건 100% 알랭 들롱과 그의 대부(代父)인 프랑수아 마르칸토니 때문이다." 자신의 죽음을 일찌감치 예감이라도 한 듯한 내용이었다. 프랑스 영화계를 대표하던 유명 배우 들롱의 이름이 언급되자 프랑스 사회가 발칵 뒤집혔다. 마르칸토니는 프랑스령 코르시카에서 마피아 생활을 하며 들롱과 인연을 맺고 있던 갱스터였다. 온갖 추측이 난무한 가운데, 경찰 수사망은 자연스럽게 두 사람을 향했다.
경찰은 들롱과 마르칸토니를 유력 용의자로 보고 고강도 수사에 착수했다. 당시 들롱의 부인 나탈리 들롱(1969년 2월 14일 이혼)까지 수차례 소환돼 조사를 받았다. 들롱은 시종일관 억울해했다. 마르코비치는 사망 당시 자신의 경호원 일을 그만둔 상태였다고 항변했다. 경찰이 사망 추정 날짜로 지목한 9월 22, 23일과 관련해선 "나는 그때 프랑스 남부 지중해 생트로페에서 영화 '수영장(La Piscine)'을 촬영하고 있었다"며 확실한 알리바이도 제시했다.
들롱은 1970년 미국 뉴욕타임스 인터뷰에서 "경찰로부터 심한 모욕을 받았다"며 "경찰이 나를 향해 '어떤 식으로든 처벌받을 것'이라는 협박까지 했다"고 토로했다. 마르코비치 사건에 대해 묻는 기자를 향해 "내가 알고 있는 건 경찰에 다 말했다. 이제 이 사건을 입에 올리는 것 자체가 지겹다"며 신경질적 반응을 보이기도 했다.
하지만 대중은 들롱과 마르코비치 사건의 연관성에 폭발적인 관심을 보였다. 데뷔 후 주로 범죄 영화에 출연한 데다, 학교를 중퇴하고 거리 깡패들과 어울리는 등 실제로도 불량하고 반항적인 삶을 살았던 탓이었을까. 머지않아 경찰에서 '무혐의' 처분을 받은 뒤에도 들롱을 향한 의심의 눈초리는 쉽게 거둬지지 않았다.
마르칸토니(2010년 사망) 역시 자신은 마르코비치의 죽음과 무관하다고 주장했다. 프랑스 레지스탕스였다가 갱스터가 된 마르칸토니는 들롱보다 열다섯 살 더 많았다. 그는 들롱과 끈끈한 우정을 유지하며 영화계 인사들과도 폭넓은 인연을 맺었다. 그러나 결국 마르코비치 살해 혐의로 1969년 1월 기소됐고, 1년 가까이 수감 생활까지 했다. 하지만 결론은 역시나 무죄였다. 들롱과 마르칸토니에게 화살을 겨눈 마르코비치의 메모 외에는, 이들이 범인임을 입증할 구체적 증거가 없었다.
별다른 수사 진전 없이 시간만 흐르던 중, 전혀 예상치 못한 인물이 마르코비치와 관련돼 있다는 소문이 프랑스 전역에 퍼지기 시작했다. 당시 프랑스 총리였던 조르주 퐁피두(1974년 사망)의 아내 클로드 퐁피두(2007년 사망)가 그 주인공이다. 일부 프랑스 언론과 호사가들 사이에서는 평소 사교계와 인연을 맺고 화려한 파티를 즐겼던 퐁피두 여사가 마르코비치의 유흥 파티에 참석했다는 말이 오갔다. 광란의 현장에서 찍힌 여사의 사진들이 훗날 마르코비치 차량에서 발견됐다는 소문도 잇따랐다. 한 남성의 피살 사건이 순식간에 프랑스 정치 스캔들로 비화해 버린 셈이다.
당시 프랑스는 극도의 정치적 혼란에 휩싸여 있었다. 학생과 노동자들이 벌인 사회변혁운동인 '68혁명(5월 혁명)' 이후 막 내린 샤를 드골 정권에 이어, 새 대통령을 뽑는 선거를 앞둔 시기였다. 대권에 도전한 퐁피두에게 아내 클로드를 둘러싼 각종 루머는 그야말로 날벼락이었다. 일각에서는 대선을 앞둔 퐁피두가 자신의 아내를 촬영해 협박했던 마르코비치를 '제거'하기로 마음먹고, 암살을 사주했다는 의혹까지 제기됐다. 퐁피두는 이 모든 의혹이 드골 정권 시절 자신과 척을 졌던 정치 세력에서 퍼뜨린 중상모략이라고 확신했다.
드골 정권에서 총리만 6년을 지낸 퐁피두는 노련한 정치인이었다. 대선을 앞두고 터진 대형 스캔들을 정면 돌파하기로 했다. 퐁피두는 자신과 아내가 과거 들롱의 저택에서 열린 파티에 참석했던 사실은 있다고 인정했다. 그러나 마르코비치가 찍었다는 사진 속 여성, 자신의 아내로 지목된 인물에 대해선 '조작을 위해 섭외된 다른 사람'이라고 반박했다. 실제로 '문제의 사진' 속 여성은 클로드 여사가 아니라, 한 외설 잡지에 등장하는 모델이라는 주장이 힘을 얻기 시작했다. 프랑스 정치사를 바꿀 수도 있었던 스캔들을 극복한 퐁피두는 1969년 6월 프랑스 제19대 대통령에 오르는 데 성공했다.
이후에도 온갖 의혹과 억측들이 쏟아졌다. 하지만 마르코비치를 죽인 범인은 밝혀지지 않았다. 진실에 한발 다가서 보려는 노력이 없진 않았으나, 이를 막으려는 움직임도 만만치 않았다. 프랑스 탐사보도 전문 기자 버나드 바이올렛은 1998년 알랭 들롱의 과거와 현재를 총망라한 전기 '들롱의 미스터리(Les Mystères Delon)' 발간을 계획했다. 바이올렛은 이 책을 위해 약 2년 동안 들롱 주변 인물 100여 명을 인터뷰하는가 하면, 관련 문서 수천 장을 참고했다고 한다.
하지만 들롱은 책의 출판을 금지해 달라는 가처분 신청을 제기했고, 법원은 이를 받아들였다. 들롱의 삶과 떼려야 뗄 수 없는 마르코비치 사건을 다뤘기 때문일 것이라는 추측이 지배적이었다. 그러나 이후 법원은 종전 판단을 뒤집었고, 2000년 '들롱의 미스터리'는 세상의 빛을 봤다.
물론 이 책이 마르코비치 사건을 해결할 결정적 단서를 제공한 건 아니었다. 하지만 책의 존재 자체를 불편해했던 들롱의 태도에 비춰, '그가 숨기고 싶어 하는 무언가가 있었을 것'이라는 추론이 잇따랐다. 마르코비치 사건에 연루된 인물 가운데 현재 유일한 생존자도 들롱뿐이다. 결국 밝혀진 것은 아무것도 없다. 마르코비치가 살해된 날로 추정되는 1968년 9월 22일 또는 23일, 그날의 진실은 여전히 쓰레기 더미 속에 파묻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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