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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상 속 의사, 현실의 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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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주 수요일과 금요일 선보이는 칼럼 '메아리'는 <한국일보> 논설위원과 편집국 데스크들의 울림 큰 생각을 담았습니다.
죽음으로 향하는 신체의 섭리를 거꾸로 돌린다는 점에서, 의사는 전능한 구세주의 현신(現身)처럼 보인다. 엘리트 직종과 재벌이 범람하는 한국 드라마 중에서도 ‘의사 드라마’는 이런 특성 때문에 ‘휴머니즘’을 담은 명작이 많다.
하지만 사실 나는 의사 드라마를 거의 안 본다. 그 유명한 ‘슬기로운 의사생활’도 안 봤다. 엘리트 직종을 ‘미화’하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것도 있지만, 기자생활을 하며 겪은 의사들 때문이 큰 것 같다. 마음에 들지 않는 기사를 쓴 기자에게 심한 악담을 하는 대표적인 직종이 의사들이었다. 대형병원 교수가 지적한 수가 불균형 문제를 확인해서 기사로 내보냈더니 “누가 그런 말 하나, 조작 말라”는 개원의들의 공격이 돌아왔다. 후배 기자는 “사진(얼굴) 보니 의사 부인 하고 싶은데 안 돼서 이런 기사나 쓰는구나”라는 메일을 받았다. 팩트에 대한 지적이 아니라 토론도 안 됐다.
특히 대한의사협회 간부들이 쓰는 언어는 사회적 성장 부족이 드러나 당황스러울 때가 많았다. 의견이 다르면 존중보다 멸시와 조롱을 앞세운다고 해야 할까. 의사 출신 기자에게 물어본 적이 있다. “의대에선 윤리나 사회 교육 같은 것을 전혀 안 하나요?”하고. 이과 직종을 문과 직종보다 더 생산적으로 여기고 존경했던 나는 의협 등을 취재하며 역설적으로 ‘인문학 교육’의 중요성을 절감했다.
이번 전공의 업무 거부 사태 와중에 제약사 직원, 간호사 직종에서도 의사 저격 증언들이 쏟아졌다. 대형병원 간호사들은 저연차 전공의들이 잘못된 처방(오더)을 내린 것을 걸러내고 다시 처방을 유도하는 게 관행인데, 그 과정에서 스트레스가 극심하다고 토로했다. 제약사 직원이 의사들에게 겪는 기가 막힌 ‘갑질’ 경험담은 상상을 초월한다.
물론 14만 명의 의사 중 일부일 뿐이며, 훌륭한 인품의 의사들도 많다. 그러나 의사 사회엔 스스로 잘못된 관행을 바로잡고 공동체와 조화를 이루는 목소리를 내는 대표집단이 너무 부재하다.
의협은 개원의 이익을 앞세우며 외과 등 필수과 수가를 낮춰온 주범으로 의료계 내부에서도 신뢰를 잃었다. 보건복지부는 의료 행위별 수가 책정의 근거가 되는 상대가치점수(업무량+진료비+위험도) 산출기준의 일부를 의협에 맡겨왔는데, 업무량 산출에서 개원의들에게 유리하게 산정하고 대형병원에서 실시하는 고난도 외과 수술은 평가절하했다는 비난이 높다. 지난해 외과계 학회가 의협을 비판하는 기자회견을 열고, 의협이 아닌 독립기구에 맡겨야 한다고 요구했을 정도다.
사실 수가는 총액보다 분배의 문제가 크다. 코로나19 과정에서 재택치료 환자관리를 신청한 병·의원은 간호사들을 시켜 하루 두 번 전화로 상태를 점검하면 8만 원씩을 받았는데, 100명을 관리하면 하루 800만 원을 벌었다. ‘하루 전화 두 통에 8만 원’으로 한 달 수억 원을 쓸어 담은 것이다. 그런데도 초고소득 그룹인 의사 사회가 “수가가 낮다”는 말만 반복하면 어떻게 신뢰를 얻을 수 있겠는가.
업무 거부가 장기화하며 의사들에 대한 국민 불신이 어느 때보다 깊다. 환자 곁을 지키며 상처받을 선량한 의사들을 생각하면 마음 아프다. 김정은 서울대 의대 학장은 “의사가 숭고한 직업으로 인정받으려면 경제적 수준이 높은 것이 아니라, 사회적 책무를 수행해야 한다”고 했고, 정영도 전남대 의대 학장은 “필수의료라든지 지역의료, 의사 수에 관해서 우리 의사 선배들이 선제적으로 대응했어야 했다”고 자책했다.
혼란과 상처에도 무엇인가 얻는다면, 의대에서 배우지 못한 어떤 교훈이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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